난치병 어린이 위해 희망 굽는 ‘쿠키소녀’

  • 입력 2009년 9월 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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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에서 ‘사랑의 파티시에’ 고은아 양이 자신이 만든 쿠키를 들고 웃고 있다. 고 양은 이 쿠키를 난치병 어린이 돕기 기부자들에게 나눠줬다. 김재명  기자
8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에서 ‘사랑의 파티시에’ 고은아 양이 자신이 만든 쿠키를 들고 웃고 있다. 고 양은 이 쿠키를 난치병 어린이 돕기 기부자들에게 나눠줬다. 김재명 기자
만성신부전증 고은아 양 기부행사… “파티시에가 꿈이에요”

“반죽을 너무 두껍게 밀면 안 돼요. 구울 때 타게 되니 얇게 반죽해요.”

8일 오후 2시 반.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내 학생회관 앞. 주방장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 소녀가 밀대로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고 있다. 소녀는 반죽을 별, 펭귄, 하트 모양으로 오려낸 후 오븐에 굽기 시작했다.

만성신부전증으로 12년째 투석치료 중인 고은아 양(16·서울 용산구 한강로)은 이날 쿠키를 만드는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고 양이 쿠키를 만든 이유는 자신과 같은 난치병 어린이를 돕기 위해서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 7일부터 9일까지 난치병어린이 기부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을 흘리며 쿠키를 만드는 고 양의 팔에는 바늘자국이 보였다.

“힘들지 않아요. 어려운 친구들에게 무언가 해줄 수 있어 존재한다는 게 행복해요(웃음).”

고 양은 생후 23개월 만에 신장이상을 진단받은 후 현재까지 주 3회 혈액 투석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몸이 아프다. 고 양은 “1회 투석 시 4∼5시간이 걸리는데 몸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안이 어려워 수술을 할 형편이 못된다. 고 양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한 후 현재 어머니 유성화 씨(37)와 단 둘이 살고 있다. 더구나 어머니 유 씨는 10년 전부터 시신경 뇌종양을 앓아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은 상태. 고 양이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왔다.

보통 소녀라면 삶의 무게를 버티기 힘들겠지만 고 양의 표정은 밝았다. 고 양은 “멋진 파티시에(케이크, 쿠키 등 제과류 제작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양은 요리책을 보며 혼자서 쿠키 만드는 법을 연습했다. 낡은 중고 소형 오븐도 구해 일주일에 2번씩 쿠키를 구웠다. 이날 오후 4시. 쿠키 100여 개가 다 만들어지자 고 양은 3개씩 투명포장지에 정성스럽게 담기 시작했다. 막 구워서 따끈한 쿠키는 기부하는 사람들에게 전달됐다.

“저보다 힘든 친구가 세상에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꿈이 파티시에라 다행인 것 같아요. 어려운 친구들에게 줄 희망의 쿠키를 계속 만들 수 있잖아요.”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동아일보 김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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