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교’ 카타르의 역발상… 우유 수입 막히자 사막에 목장 조성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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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10개월… 개혁-개방의 기회로

카타르 알코르에 위치한 발라드나 목장. 목축업이 적합하지 않은 카타르의 사막기후를 감안해 실내에 세워졌다. 단교 사태 후 7000마리가 넘는 젖소를 수입해왔다. 도하·알코르=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카타르 알코르에 위치한 발라드나 목장. 목축업이 적합하지 않은 카타르의 사막기후를 감안해 실내에 세워졌다. 단교 사태 후 7000마리가 넘는 젖소를 수입해왔다. 도하·알코르=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목장이란 안내판이 없었다면 7000마리가 넘는 젖소가 살고 있는 대형 목장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지난달 12일 오후 고층 건물이 가득한 카타르 수도 도하 도심에서 북쪽으로 약 30분 사막의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알코르 지역의 ‘발라드나 목장’(현지 식품기업 발라드나가 운영)에는 푸른 목초지가 없었다. 끝이 안 보이는 사막 한가운데에 넓게 세워진 축사만 있었다.

축사 안에는 수많은 홀스타인종 젖소들이 보였다. 목장 내부는 선선했다. 발라드나 관계자는 “무덥고, 건조한 사막 기후에 적응하기 힘든 젖소들을 위해 온도와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며 “(섭씨 40∼50도로 기온이 오르는 한여름에도) 20도 안팎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단교 사태 이후 카타르, 식량 자급화 총력


지난해 9월 카타르 도하 남부에 개항한 ‘하마드 항구’. 기존 카타르 항구에서는 접안이 힘들던 초대형 선박도 정박이 가능한 시설을 갖췄다. 단교 사태 후 차질 없는 물류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카타르항만관리공사 제공
지난해 9월 카타르 도하 남부에 개항한 ‘하마드 항구’. 기존 카타르 항구에서는 접안이 힘들던 초대형 선박도 정박이 가능한 시설을 갖췄다. 단교 사태 후 차질 없는 물류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카타르항만관리공사 제공
지난해 6월 5일 이른바 ‘카타르 단교 사태’가 발생한 지 10개월이 지났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등 아랍권 주요국들이 △이란과의 관계 축소 △알자지라 방송 폐쇄 △무슬림 형제단(이슬람 운동단체) 등에 대한 지원 금지 등을 요구하며 카타르와의 외교관계를 끊어버리는 초유의 사태였다.

사태 초기에는 인구 약 240만 명(자국민 약 30만 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 카타르가 언제 백기를 드느냐에 관심이 모아졌다. 하지만 카타르는 세계 3위의 천연가스 보유국 지위에 걸맞은 막대한 ‘가스 머니’와 다양한 개혁·개방 조치로 맞서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발라드나 목장은 단교 사태 뒤 카타르가 진행 중인 개혁·개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 중 하나다. 신선 유제품(우유 치즈 버터 등), 육류, 설탕 등의 80% 이상을 사우디와 UAE를 통해 수입했던 카타르는 단교 사태 후 식품 부족 현상과 ‘사재기’ 현상을 겪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카타르 정부는 ‘유제품 등 주요 식품을 국내에서 생산하겠다’고 선언했고, 유럽과 미국에서 젖소를 대거 수입했다. 카타르 정부는 올해 라마단(이슬람 성월·올해 5월 15일∼6월 14일)이 시작되기 전까지 국내 유제품 수요를 100%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에는 중동의 금융 중심지로 도약하겠다는 비전도 세웠다. 카타르 증권거래소(QSE)는 지난달 중동지역 단일 국가 기준으로는 가장 큰 규모(1억2000만 달러)의 이슬람 상장지수펀드(ETF)를 개발했다. 카타르금융센터는 이란, 쿠웨이트, 오만, 이라크 진출에 관심 많은 금융사와 기업 유치에 초점을 맞춘 발전전략을 올해 2분기(4∼6월) 중 발표한다. 무함마드 빈 살레 알 사다 카타르 에너지·산업장관은 “카타르는 가스와 원유 외의 산업 육성에도 계속 공을 들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교 사태 후 카타르가 추진 중인 외국인에 대한 영주권 대폭 허용과 비자 면제 조치도 금융업에 필요한 전문인력 유치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지도자들의 잇단 방미로 단교 사태 해결 기대


하지만 카타르의 고민도 적지 않다. 특히 사우디와 이란 간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지역 패권 경쟁은 두 나라 사이에 위치한 카타르에 큰 외교적·안보적 부담이다.

카타르의 아라비아만(이란에서는 페르시아만) 가스전은 이란령 가스전과 맞붙어 있어 안정적인 관계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종교(이슬람 수니파), 문화, 인종적으로는 사우디, UAE, 바레인 등과 ‘형제’다. 1981년 이란의 부상을 우려해 아라비아반도 6개(사우디 UAE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 왕정 산유국들이 결성한 정치·경제·안보 등의 포괄적 지역협력기구인 걸프협력회의(GCC)의 일원이기도 하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최근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왕세자가 미국을 방문한 데 이어 조만간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 카타르 국왕이 방미에 나선다”며 “두 정상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카타르 단교 사태에 대한 해결책 마련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도하·알코르=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카타르#단교#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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