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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감시-사상검증… 창문 가린 버스로 숙소-일터 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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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감시-사상검증… 창문 가린 버스로 숙소-일터 오가

동정민 특파원 입력 2016-12-23 03:00수정 2019-01-1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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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노예’ 北해외노동자]<3> 폴란드 공사장-토마토농장 르포
북한 여성 노동자 60명이 일하는 폴란드 서남쪽 마을 사르노프의 토마토 농장(위쪽 사진). 사진 뒤쪽에 보이는 비닐하우스에서 시작해 48만 ㎡의 농장이 펼쳐져 있는데, 북한 여성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사실상 감금돼 생활한다. 아래쪽 사진은 올해 9월까지 북한 남성 노동자 50여 명이 근무했던 바르샤바 빌라노프 건설 현장이다. 이들의 임금이 북한 핵실험의 돈줄이 되고 있다는 국제 사회의 비판이 쏟아지자 북한 노동자들은 바르샤바에서 쫓겨나 폴란드 전역에 뿔뿔이 흩어져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사르노프·바르샤바=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이곳 주민들은 모두 그 버스를 기억하고 있었다. 빨간색 버스였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신도시 빌라노프 주택가엔 매일 아침 7시 45인승보다 조금 작은 버스 한 대가 나타났다. 버스가 정차한 집에서는 20명이 넘는 남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빨간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버스 창문은 늘 가려져 있었다. 안에서는 밖을,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었다. 한 30대 남자 주민은 “40대 북한 남자 20여 명이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단체로 집에서 나오고 들어갔다”라며 “워낙 보기 드문 장면이라 주민들 모두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매일 보이던 빨간 버스가 올 9월 갑자기 사라졌다. 그 버스는 어디로 갔을까.

○ 바르샤바에서 쫓겨난 북한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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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버스가 사라지기 전 북한 노동자들이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향했던 곳은 10분 거리의 건설 현장이다. 신도시 건설로 한창 바쁜 이곳에서 노동자들은 고급 주상복합 3개 동 건설 현장으로 흩어졌다. 벽돌 쌓기와 초기 마감 작업까지 고된 일을 맡았다. 당시 북한 노동자를 감독했던 폴란드인 관리자는 “북한 노동자의 기술 수준이 상당히 뛰어났다”라며 “폴란드인들은 불만이 많은데 북한 노동자는 훨씬 열심히 일하면서도 군소리가 없으니 관리인도, 채용한 기업도 좋아했다”라고 전했다.

 북한 노동자들도 바르샤바 입성을 원했다. 건설 현장이 많아 일자리가 풍부하고 도심 지역이어서 생활하기도 편했다. 북한은 빌라노프 건설 현장에 노동자들을 넣기 위해 올해 평양에 직접 북한 노동자 송출 회사도 세웠다.

 사실상 감금 생활이라고는 해도 20여 명이 방 9개를 나눠 쓸 수 있는 빌라노프 숙소는 북한 노동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다른 곳에서는 한 방에서 10명이 함께 먹고 잤다. 주말에는 4, 5명이 함께 동네 슈퍼마켓에 들르기도 했다.

 그러나 꿈같은 바르샤바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북한이 1월 4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북한 해외 노동자들의 월급이 북핵 개발 비용으로 들어간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이 쏟아졌다. 국제 인권단체와 대학 연구소들은 해외 북한 노동자의 처참한 생활상을 폭로했다. 그 화살은 유럽에서 유일하게 북한 노동자를 받아들이고 있는 폴란드 정부로 향했다. 유럽연합(EU)이 직접 폴란드 북한 노동자 인권 문제를 다루겠다고 압박하자 폴란드 정부는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사에 나섰다.

 결국 9월 초 북한 노동자들은 모두 바르샤바를 떠났다. 폴란드에서 가장 많은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던 북쪽 그단스크 그디니아 조선소에서도 지난여름 이후 대부분 쫓겨난 것으로 전해졌다. 발주 선박회사들이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강제 노역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 북한 노동자가 계속 근무하면 선박을 발주하지 않겠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것이다.

○ 휴대전화도 못 쓰고 숙소에는 감시용 CCTV까지


 폴란드의 북한 노동자들은 이후 지방 곳곳으로 흩어졌다. 현재 약 15개 폴란드 회사에서 북한 노동자 41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대부분 바르샤바에서 300km 떨어진 지역에서 일한다. 도심에서 멀어지자 생활은 더욱 비참해졌다.

 바르샤바에서 만난 헬싱키인권재단의 야체크 비알라스 난민 연구원은 “여권을 모두 뺏긴 폴란드 북한 노동자들은 최악의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라며 갖가지 사례를 들려줬다. 북한 노동자들 곁에는 늘 감시원이 붙어 다닌다. 이들은 노동자들의 여권을 압수해 보관한다. 여권이 없는 노동자들은 도망은커녕 주변을 자유롭게 다니기도 어렵다. 그디니아와 그단스크에서는 북한 노동자들이 집단 거주하는 집 밖에 이들을 감시하는 폐쇄회로(CC)TV가 발견됐다. 북한 고위층의 탈북 소식이 전해진 이후에는 외부와의 접촉도 더욱 차단되는 분위기다. 네덜란드 레이던대의 조사에 따르면 EU 내 북한 노동자들은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모두 휴대전화를 지닐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로는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됐다.

 근무시간은 하루 평균 10∼12시간, 주 6일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월급은 800달러가 넘지만 노동자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건 100∼150달러에 불과하다. 북한 감독관들은 “너희들은 임금이 싸기 때문에 해외 기업들이 고용하는 것”이라고 윽박지르면서 100∼150달러에서도 숙박비 가스비 전기료 명목으로 일정액을 떼어 간다. 주말에도 쉴 수가 없다. 자아비판과 생활 총화 등 ‘세포 리더’에게 사상 검증을 받는다. 대사관 직원이나 폴란드 전역을 순회하는 감시관의 불시 사상 검문도 있다.

 북한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고립 생활을 하는 건 언어장벽 탓도 크다. 약 6개월 동안 빌라노프 건설 현장에서 일한 북한 노동자 50여 명 중 폴란드 말을 할 수 있는 이는 단 3명뿐이었다. 이들은 함께 일하는 다른 국적의 노동자들과 일절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고 한다. 불만이 없는 게 아니라 표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들은 일을 마치고 늘 오후 7시쯤 집에 도착했다. 창문이 가려진 버스에서 내리면 곧장 그들만이 사는 고립된 공간으로 들어갔다.

바르샤바=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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