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딥포커스]스페인어 구사하며 반대세력 파고들어 독립 이끄는 30대 ‘카탈루냐의 록스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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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분리독립운동 리더 루피안

“프랑코주의는 1975년 11월 20일 마드리드 침대에서 죽은 게 아니라, 2017년 10월 1일 카탈루냐 투표함에서 죽을 것이다.”

스페인 중앙정부의 반대에도 10월 1일로 예정된 카탈루냐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이끌고 있는 ‘스페인 카탈루냐 공화주의좌파당(ERC)’의 리더격인 가브리엘 루피안(35·사진)은 기존의 민족주의자들과는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그는 “분리주의 운동이 국수주의로 흘러선 안 된다”며 스페인 내전 승리 후 36년간 민주주의를 탄압했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잔재 청산을 화두로 제시했다. 그는 자신을 “55년 전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에서 넘어온 안달루시아의 아들이자 손자”라고 강조하며 국수주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위해 카탈루냐 독립을 선택해 달라는 그의 논리는 2006년 14%에 그쳤던 분리독립 여론이 올해 40% 이상으로 늘어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의회 연설을 할 때 긴 침묵과 함께 느린 템포로 말한다. 좀 어눌해 보일 수도 있지만 짧은 문장으로 자신의 뜻을 전하는 그의 연설은 대히트를 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트위터를 정치 메시지 전달 창구로 자주 활용해 젊은층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카탈루냐 독립운동에 비판적인 일간지 엘파이스조차 “스타가 탄생했다”며 그를 조명했다. ‘카탈루냐의 록스타’라는 별명도 생겼다.

루피안의 가장 큰 장점은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카탈루냐 독립파라는 점이다. 그는 2013년부터 스페인어를 쓰는 카탈루냐 독립 지지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한 연구단체에 따르면 카탈루냐 주민 중 44%는 스페인어를, 40%는 카탈루냐어를 주로 사용한다. 두 언어를 모두 구사하는 주민은 15% 수준이다. 카탈루냐어를 주로 사용한다는 응답자 중 71%가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하고, 반대로 스페인어를 주로 쓴다는 응답자 중 17%만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한다고 답할 정도로 언어가 인식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 때문에 카탈루냐 독립파도 스페인어를 주로 쓰는 바르셀로나와 주변 해안가는 정복하지 못했었다.

그 틈을 루피안이 파고들고 있다. 마드리드에 있는 카를로스 3세 대학의 유이스 오리올스 교수는 “루피안은 카탈루냐식 이름을 쓰지 않는 계층과 카탈루냐 지역의 부르주아 계층에까지 독립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주 루피안은 의회에 프린터 한 대를 가지고 나와 부총리 앞에서 “나는 투표용지를 갖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나를 구금하지 않기 바란다”며 강단 있는 모습을 보였다. 스페인 정부가 국민투표 원천 봉쇄를 위해 1000만 장이 넘는 투표용지를 압수하고 관계자를 체포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열렬한 축구 애호가이기도 하다. 카탈루냐가 독립하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더 이상 리오넬 메시가 뛰는 FC 바르셀로나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모나코가 프랑스 리그에서 뛰고 있듯, 바르셀로나도 스페인 리그에서 뛸 수 있다”고 축구팬들을 안심시켰다.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이틀 앞두고 카탈루냐의 긴장감은 더 높아지고 있다. 중앙정부 경찰이 투표를 독려하는 카탈루냐 의회 홈페이지를 차단하자 카탈루냐 정부는 “정부가 북한, 중국, 터키가 하는 것처럼 주민투표를 막고 탄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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