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글로벌 인사이더] 민주적 소통의 정점, 백악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6일 14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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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전경
백악관 전경

백악관이 있는 미국 워싱턴 펜실베이니아 대로(大路)는 미국의 정치 일번지이자 관광객의 거리다. 언제나 인파로 북적거리는 공간이다. 대로 앞쪽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샛길이 있다. 이 곳을 따라 걷다보면 더 많은 관광객을 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투어리스트 스팟(여행객들이 많이 몰리는 장소)'이다. 사진을 찍으면 백악관 전경이 근사하게 나온다.

세계의 심장부 백악관. 워싱턴 특파원 시절 3,4번 백악관에 들어가 봤다. 생각만큼 들어가기 힘든 곳은 아니었다. 미국 연방정부 건물 대부분이 그렇듯 사전에 신상 정보 제출 후 승인을 받으면 백악관 검문검색을 통과하면 된다. 다만 검문검색이 더 까다롭다.

백악관에 들어간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규모가 작다는 것이다. 백악관의 총면적은 7만3000m²(약 2만2000평)으로 청와대(25만3504m²)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다.

백악관 브리핑룸
백악관 브리핑룸


TV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브리핑룸은 덩치 큰 미국 기자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다닥다닥 의자가 배열돼 있다. 백악관 담당 기자들이 모여 일하는 기자실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웨스트윙 지하에 있는데 보일러실 분위기다. 미로처럼 연결된 데다 퀴퀴한 냄새까지 나서 '이곳에 미국 최고의 기자들이 모이는 곳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난 달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기자실을 없애고 브리핑도 안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불편한 환경 속에서 일하던 백악관 기자들이 화가 날 만도 하다.

백악관 전체 규모가 작으니 '오벌 오피스'로 불리는 대통령 집무실도 작다. 세계를 움직이는 결정들이 이뤄지는 미국 대통령 집무실이지만 면적은 76m²(약 23평)에 불과하다.

백악관 집무실
백악관 집무실


백악관 집무실 중앙에는 소파가 두개가 양쪽으로 배치돼 있는데 회의 때마다 소파 쟁탈전이 벌어지기로 유명하다. 소파에 앉을 수 있는 적정 인원수보다 회의 참석자가 않으니 회의 때마다 소파 쟁탈전이 벌어진다. 자리를 잡지 못한 참석자는 소파 손잡이에 걸터앉는다. 격식은 찾아볼 수 없다.

소파에서 서로 코앞에 마주보고 앉아 정책 논의를 하다 보면 회의 집중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백악관 집무실이 개방형이자 소통형으로 불리는 이유다.

우리는 청와대 국무회의 때마다 각료들이 큰 책상에 일렬로 앉아 고개를 숙이고 대통령 말씀을 열심히 받아쓰기를 하고 있는 모습에 익숙하다. 대통령은 잘 받아쓰고 있는지 각료들에게 확인도 한다고 한다. 활발한 토론이 아닌 톱다운 방식의 일방적 의견 전달 체제에서 어떻게 각료들이 용감하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겠는가.

백악관 집무실이 소통형 구조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출입문 숫자로도 알 수 있다. 집무실은 외부로 통하는 문이 네 개나 된다. 동서남북 방향으로 비서실, 서재, 복도, 로즈가든으로 나가는 문들이다. 복도로 나가면 양쪽으로 부통령실 선임고문실 비서실장실 국토안보보좌관실 대변인실 등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집무실과 가장 가까운 선임고문실의 경우 대통령이 서재를 사이에 두고 소리쳐 부르면 대답할 수 있는 거리다. 

백악관 집무실 놀고 있는 아이들
백악관 집무실 놀고 있는 아이들

대통령은 복도로 자주 나와 부통령실에 들르고 비서실장실 책상에 걸터앉아 정책을 토론한다. 기자회견이나 백악관 행사가 자주 열리는 정원인 로즈가든도 문 하나만 열면 바로 연결된다.

집무실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외국 정상들은 미국 대통령이 "자, 이제 기자회견을 하러 가시죠" 하면 놀라곤 한다.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집무실에서 로즈가든으로 향하는 문을 나서면 바로 야외에 기자회견장이 마련돼 있다. 로즈가든은 수상자와 가족을 함께 초청해 훈장 수여식을 여는 국민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1999~2006년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백악관을 무대로 한 TV드라마 '웨스트윙'에서 대통령이 말단 직원들의 방에 들르거나 복도에서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과연 이 같은 일이 정말 백악관에서 일어날까.' 우리 한국인 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미국인들의 궁금증이기도 했다. 이 드라마를 쓴 유명 작가 애런 소킨은 작품 취재를 위해 직접 백악관에 가서 이런 장면들을 보고 그대로 쓴 것이라고 한다. 드라마에서 그려진 격식 없는 대통령의 모습은 당시 별로 인기가 높지 못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을 올리는 데 한몫하기도 했다.

미국은 대통령 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의 리더의 사무실은 문이 열려 있는 경우가 많다. 리더가 '의견을 경청하겠다'는 메시지를 부하들에게 주는 것이다. 우리는 문을 꽉 닫고 일하는 방식에 익숙하다. 그러면 집중은 잘 되겠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는 힘들다.

백악관의 개방형 소통 구조는 우리들이 보기에는 질서 없어 보이고 생산성이 낮아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곳에서 민주적인 의견 개진이 가능하고 수평적 토론도 가능하다.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 구조 속에서는 소통도, 의견 경청도 힘들다. 어쩌면 비선이 등장하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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