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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이유종]스위스엔 왜 슈퍼리치들이 몰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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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이유종]스위스엔 왜 슈퍼리치들이 몰릴까?

이유종 국제부 차장 입력 2019-01-07 03:00수정 2019-01-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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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제네바 시내에 차량과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콜로니, 아니에르, 방되브르 등 이 일대 고급 주택 밀집 지역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슈퍼리치(초고액 자산가)’가 거주한다. 출처 픽사베이

이유종 국제부 차장
스위스 제네바 레만호 주변을 따라 동북쪽으로 걸으면 즐비한 고급 주택과 요트를 만날 수 있다. 경치가 빼어나 땅값도 꽤 비싸다. 제네바의 ‘비벌리힐스’로 불리는 콜로니, 아니에르, 방되브르…. 이런 고급 주택 밀집 지역에는 전 세계 ‘슈퍼리치(초고액 자산가)’들이 몰려 있다. 몇 년 만에 집값이 10배나 올랐다는 현지 보도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공주는 2013년 스위스 전직 대통령이 살던 저택을 5750만 스위스프랑(약 654억 원)에 구입했다.

스위스 부호 가운데에는 유독 해외 출신이 많다. ‘부자 톱 10’ 중 6명이 외국인이거나 귀화자다. 넘버 원 부호인 에르네스토 베르타렐리(54)는 이탈리아 로마 출신이다. 1977년 가족이 스위스로 이주했고 국적을 취득했다. 글로벌 제약회사 세로노의 대주주인 그의 재산은 86억 달러(약 9조6000억 원). 2위인 잔루이지 아폰테(79)의 국적은 이탈리아다. 남부 나폴리 뱃사람 집안 출신인 그는 1970년 중고 선박 한 척을 구입해 세계 2위의 컨테이너 해운회사 MSC를 일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다섯 번째 부자 이반 글라센베르크는 세계 1위 상품거래 기업인 글렌코어의 대표다.

부호들이 스위스로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금융, 물류, 인적자원 등 기업을 위한 인프라가 좋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상대적으로 낮은 세금 때문이다. 스위스 법인세는 16.55%, 소득세는 주에 따라 최대 22.5∼46%(평균 34%)에 이른다. 동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지만 독일, 프랑스, 북유럽 등 경쟁 국가보다는 낮다. 이탈리아의 소득세는 최대 45.83%, 스웨덴은 69.8%에 달한다. 지난해 타계한 스웨덴 출신 이케아 창업주 잉바르 캄프라드도 생전에 스위스의 1등 부자였다.

스위스가 세금을 낮게 책정한 목적은 부자들의 재산과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다. 칸톤(주) 정부들은 소득세 인하 경쟁까지 벌였다. 스위스 공영방송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등 부자 300명의 자산은 무려 6750억 스위스프랑(약 770조 원)에 달했다. 7000억 달러(약 786조 원) 규모의 스위스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규모다. 이들의 자산은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베르타렐리와 아폰테는 본사를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옮겼다.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이라도 부자들이 몰리면 더 많은 세금이 걷힌다. 정부는 복지, 일자리 창출에 쓸 재정적 여유를 갖게 된다.

이처럼 낮은 세율 책정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낮은 세금을 책정하면 저소득층이 크게 반발하는 게 상식에 해당한다. 실제 사회민주당 등 진보 정당은 부자 증세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세금을 덜 내고 부자들도 유치하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졌다.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되는 걸 알기 때문이다.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선 모든 국민에게 월 2500스위스프랑(약 284만 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법이 부결됐다. 같은 해 9월 국가연금 지급액을 10% 올리는 법안도 무산됐다. 영민한 스위스인은 받을 돈보다 추가로 낼 세금이 더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매번 투표에서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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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행보의 배경엔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튼실한 연금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국민연금 제도는 이웃 나라들보다 대략 반세기 정도 늦은 1947년 시작했지만 기업의 퇴직연금, 개인의 민간연금과 함께 국민 노후에 대비하는 3중망의 안전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노후엔 과거 소득의 80%가 연금으로 나온다.

그냥 가정해보자. 홍콩 최대 재벌인 리카싱(李嘉誠)이나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기업의 본사를 서울로 옮긴다고.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국내 경제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의 처지가 스위스와 똑같지는 않다. 연금제도를 더 보완해야 하며 무작정 감세도 정치적 바람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적어도 자수성가하고 국민경제에 도움을 주는 부자들을 보는 시각부터라도 달라져야 한다. 복지 등에 필요한 예산이 너무 빡빡한 고령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
 
이유종 국제부 차장 pen@donga.com
#스위스 제네바 레만호#슈퍼리치#고급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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