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글로벌 인터뷰]<1> “아베 이해 못하겠다… 주변국 상처 줘 지도자 자질 의심”
더보기

[글로벌 인터뷰]<1> “아베 이해 못하겠다… 주변국 상처 줘 지도자 자질 의심”

동아일보입력 2014-01-01 03:00수정 2014-02-06 11:23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하토야마 前 日총리에게 듣는 한일-동북아 정세
지난해 12월 5일 일본 도쿄 미나토 구 ‘동아시아공동체연구소’에서 만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인터뷰 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도 일본의 우경화와 아베 신조 내각에 대해서는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하며 단호한 자세로 답변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
《 미국과 중국의 주요 2개국(G2) 경쟁, 동북아에서의 중국과 일본 간 영토 갈등, 불확실한 세계 경제 전망 등 2014년에도 협력과 대립이 뒤섞여 전개될 지구촌 현안의 향방을 미국과 일본, 국제기구의 전현직 고위 지도자를 연속 인터뷰해 짚어본다. 》

‘우주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에게 늘 따라다니는 별칭이다. 톡톡 튀는 그의 언행 때문이다.

2009년 8·30총선에서 54년 만에 자민당 일당 지배 체제를 끝내고 민주당의 초대 총리에 올랐던 그는 2012년 여름 자신이 머물렀던 총리 관저를 포위한 원전 반대 시위에 참가해 ‘탈(脫)원전’을 외쳤다.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을 둘러싸고 중-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지난해 초에는 중국을 방문해 “일본이 섬을 훔쳤다고 중국이 생각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발언했다. 지난해 11월 홍콩에서는 일본의 과거사 왜곡을 비판하며 난징(南京) 대학살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잔학 행위에 대해 거듭 사과했다. 일본에서 그는 이제 ‘국적(國賊)’으로까지 불리고 있다.

관련기사

그는 과연 ‘우주인’일까. 하토야마 총리는 지난해 12월 5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우주인은 지구인보다 강하다”며 미소를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의 수구 세력으로부터는 비판을 받는 게 오히려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는 ‘우주인’이 아니라 ‘신념의 정치인’이었다. 인터뷰는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도쿄(東京) 중심가의 ‘동아시아공동체연구소’에서 진행됐다.

―현재의 동아시아 정세를 어떻게 보나.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 등으로 동아시아 전체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서로 좀 더 협조해야 할 나라들이 과거 역사 문제로 대립하고 아직 미해결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은 유감스럽다. 이런 문제에 대해 각 나라가 내셔널리즘(국가주의)을 부추기지 않고 냉정하게 행동해 나가는 게 매우 중요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미일동맹과 안보 강화로 현 정세에 대처하고 있다.

“서로 군사적 위협을 높여 가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이런 때야말로 대화의 실마리를 찾아 서로 이야기하면서 해결의 방향을 찾아 가는 소위 ‘외교 노력’이 요구된다. 군사적 힘을 강화해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아시아의 일원으로서 과거사 문제도 깨끗이 해결하고 신뢰감을 높여 가는 외교 노력을 하면 절대로 ‘방위력을 높여야 안전하다’는 식으로는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일반 국민도 우경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전후 일본은 평화를 추구하면서 경제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노력해 왔다. 하지만 최근 20년간 노력해도 좀처럼 잘 안 됐다. 그런 초조함이랄까, 마음의 불안정이 뭔가 강한 것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 왔다. 현 정권은 그런 분위기를 이용해 정권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이는 어떤 나라에서나 어느 정도는 있는 일이지만 이를 얼마나 통제하느냐가 외교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현 정부와 국민이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은 우려할 사태라고 생각한다.”

―한일 관계가 최악이다. 이대로 좋은가.

“좋을 리가 없다. 한일 정상이 이야기할 기회가 전혀 없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고 서글픈 일이다. 나도 대통령이 되기 전의 박근혜 의원을 만나 한 시간 정도 회담한 적이 있다. 경청하는 자세가 뛰어나고 훌륭한 대통령의 자질을 가진 분으로 존경하고 있다. 따라서 뭔가 이야기를 나눌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에 대한 인식은 나라마다 다를지 모르지만 사실은 한가지다. 이 역사적 사실을 서로 냉정히 바라보고 어디선가 그 문제를 풀어 나갈 열쇠를 찾아야 한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역시 상처를 준 쪽은 잊기 쉽지만 상처를 받은 분들은 그 아픔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 때 대화의 실마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처를 준 쪽이 더 노력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어 민간의 기부금을 재원으로 한 보상금을 적으나마 당시 총리의 사죄 편지를 동봉해 전달하려 한 바 있다. 일본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지만 한국의 많은 위안부 할머니는 이를 거부했다. 국가 차원의 제대로 된 사죄가 아니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받는 쪽이 만족하지 않는다면 일본이 뭔가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만 국가 보상의 색채를 지닌 해결 방안을 생각해 내는 게 중요하다. 이미 많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있는 만큼 서둘러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1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다. 이때까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전문가 회의라도 만들어야 한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이 질문과 답변은 지난해 12월 30일 e메일로 추가 진행됐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서 ‘중국과 한국인의 마음에 상처를 줄 생각은 없다’는 등의 말을 했는데 이해하지 못할 말들이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이후로 천황(일왕)도 참배를 중지했다.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는 것은 책무이자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신뢰의 징표다.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의심된다. 일본과 중국, 한국 간에는 역사인식과 영토 문제로 인한 정치 문제와 경제, 문화를 나눠 생각하자는 움직임이 다소 있었다. 하지만 이번 참배로 상대의 신뢰를 크게 잃어 다방면에 그 영향이 파급될 것이다. 현 정권의 한 각료는 나를 ‘국적’이라고 야유했는데 아베 총리처럼 개인 생각만으로 외교적 불신감을 초래해 일본의 국익을 훼손하는 행위야말로 국가에 대한 배신행위 아닌가.”

―총리 재직 때 아쉬운 점은…. 다시 총리가 되면 무엇부터 하겠는가.

“아쉬운 점은 많다. 나는 우애(友愛) 정신으로 이 나라를 바꿔 나가고 싶었다. 너무도 미국과 관료에 의존해 온 나라에서 좀 더 자주적으로 판단하는 나라, 아시아의 일원으로서 존엄을 가진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이를 충분히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하차해 결과적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결과 일본의 아시아에 대한 대응이 확 바뀌고 말았다. 내가 좀 더 총리직에 머물러 이른바 역사문제 해결에 마침표를 찍었다면 (아시아와의 관계가) 이런 상태는 안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쉬울 따름이다.”

―10년 후 일본은 어떤 나라가 될까.

“국민의 선택에 달렸다. 나는 이 상태로 가면 예컨대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도 반드시 순조롭지만은 않을 때가 온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전후에 늘 경제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살아오다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으로 경제적 가치보다 인명, 공생, 연대라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다시 경제 중심주의로 돌아갔다. 이를 다시 각성하는 때가 10년 내에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젊은 세대일수록 우경화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는데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늘면 일촉즉발 상황에서 더 파멸적인 길로 이 나라가 달려갈 수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우리 세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2009년 방한했을 때 부인 미유키 여사와 이명박 당시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김치를 담그는 사진을 한일 관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라며 보여주고 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한국과의 교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역시 아내가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와 김치를 담그는 등의 교류를 한 게 제일 큰 추억이다. 나도 나중에 김치를 담근 적이 있다. 또 서울 인사동 거리를 걸었을 때 한국 국민이 열렬히 환영해 줬다. 과거에는 일본의 현직 총리가 그렇게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정말 기뻤다.”

이날 인터뷰를 위해 연구소로 들어서자 마침 응접실에 앉아 있던 부인 미유키(幸) 여사가 유창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에게 부인의 한국어 발음이 유창하다고 했더니 한류 붐 때문이라며 웃었다. 그는 “아내가 지금은 한류 드라마 ‘복수초’(원제는 ‘노란 복수초’)를 보고 있다. 한국말도 제법 한다”고 소개했다. 부부의 한국 사랑은 여전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약력>

1947년 2월 도쿄 출생
1965년 도쿄대 공대 입학
1976년 미국 스탠퍼드대 공학박사 학위 취득
1981년 일본 센슈(專修)대 경영학부 조교수
1986년 중의원 선거 첫 당선(자민당)
1993년 자민당 탈당
1996년 옛 민주당 창당, 대표 취임
1998년 야당 연합 통해 현 민주당 창당
1999년 대표 취임
2009년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 총리 취임
2010년 총리 퇴임
2012년 정계 은퇴, 동아시아공동체연구소 이사장

도쿄=배극인 bae2150@donga.com·박형준 특파원
#아베#하토야마#일본#동북아 정세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