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울지마 톤즈’ 빈민촌의 코리안]<8>탄자니아서 기술교육 박현석-오영금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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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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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로 삶의 희망 잃은 마을… 목공 가르쳐 다시 일으켰으면”

아무런 이유 없이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을 겪고 있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한다. 환하게 웃는 맨발의 야미지 양(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과 그 가족,
봉사단원 박현석 오영금 씨. 기아대책 제공
아무런 이유 없이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을 겪고 있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한다. 환하게 웃는 맨발의 야미지 양(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과 그 가족, 봉사단원 박현석 오영금 씨. 기아대책 제공
지난달 10일 아프리카 동부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자치령에 속하는 섬 은구자. 제주도보다 조금 작은 이 섬은 아름다운 산호 해안 덕에 세계 10대 휴양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19세기 아프리카 각지에서 끌려온 60여만 명이 이곳의 노예경매소에서 노예로 팔려나갔던 비운의 땅이기도 하다.

자치령의 주도인 잔지바르 시에서 자동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음부지 마을. 이곳에 기아대책의 어린이개발프로그램(CDP) 센터에 다니는 야미지 양(12)이 살고 있다. 길에서 봉사단원인 동갑내기 부부 박현석 오영금 씨(57)를 보자마자 야미지 양은 스와힐리어로 “잠보(Jambo·안녕)”라고 밝게 외쳤다.

야미지 양이 큰 눈에 어울리는 환한 웃음을 찾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친아버지는 2006년 에이즈로 사망했고 어머니 주마 씨(38)도 에이즈 환자다. 그 무렵 야미지 양도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져 주변 학생들로부터 심한 따돌림과 놀림을 당했다.

어머니는 남편의 죽음으로 생계가 막막해지자 역시 에이즈 환자인 파올라 씨(51)와 다시 가정을 꾸렸다. 둘 사이에 태어난 막내 셀레 군(4)도 에이즈 판정을 받아 8명의 가족 중 4명이 에이즈로 고통받고 있다.

도로 옆에 있는 33m²(10평) 남짓한 집은 세간이라고 할 것이 없다. 맨바닥에 얇은 천이 몇 장 깔려 있고 한쪽에 취사를 위한 그릇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주마 씨는 “야미지의 성적이 거의 바닥권이었는데 CDP 센터에 다니면서 55등에서 7등까지 올랐다”며 “공부하면 야미지가 아빠, 엄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수 있지 않겠느냐”며 눈물을 닦았다. 파올라 씨도 “야미지가 계속 공부하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마을의 다른 주민들처럼 야미지네 형편도 희망적이지 않다. 우기에 텃밭 농사라도 지을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 한다. 파올라 씨가 자전거를 수리하거나 주마 씨가 집 앞의 작은 좌판에서 과일과 야채를 파는 것이 수입의 전부다.

야미지의 꿈은 의사다. 그는 부끄러운 듯 작은 목소리로 “의사가 되고 싶어요. 빨리 커서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라고 했다. CDP 현지 코디네이터인 엘리야 씨(38)는 “정부 통계보다 에이즈 환자가 훨씬 많다”면서 “음부지 마을 2000여 명의 주민 중 약 30%가 에이즈 환자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400여 명이 살고 있는 인근 포포 마을의 사정도 비슷했다. 남편이 에이즈로 사망한 뒤 두 딸과 살고 있는 조이시 무샤 씨(40·여)도 에이즈 환자다.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농사일을 거들고 받는 품삯 2000원 정도로 세 명이 살아간다. 큰딸도 에이즈 환자이지만 본인은 모르고 있다. 희망이 무엇이냐고 묻자 무샤 씨는 “돈이 생기면 비가 새지 않는 벽돌집을 짓고 싶다”고 했다. 에이즈가 치료되기를 바란다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무샤 씨는 죽은 남편에 관해 이야기하다 눈물이 고이자 고개를 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미안하다고 하자 “빌라 사마하니(괜찮다)”라고 했다.

노예무역은 사라졌지만 빈곤과 질병으로 잔지바르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전체 주민의 대다수가 이슬람 신자로 20세 이전에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이유로 일찍 결혼하거나 성폭행으로 13, 14세에 출산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기아대책의 CDP 프로그램은 교육과 신체(급식, 보건과 위생, 신체검사), 정서활동(소풍, 견학) 등으로 짜여 있다. 잔지바르의 미래가 될 아이들을 위한 투자다.

이곳에서 활동 중인 박현석 오영금 씨는 2001년 잔지바르에 정착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1991년 보츠와나에서 시작해 이제는 잔지바르에서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우연하게 박 씨의 목공예 작품을 본 잔지바르 자치령 대통령 부인의 권유로 탄자니아 본토에서 이곳으로 건너오게 됐다. 박 씨는 현지 기술학교의 훈련센터에서 목공예를 가르치고 있고, 오 씨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 보건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훈련센터에서 만난 함다니 씨(27)는 2년 전부터 이곳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월 150달러 정도를 벌고 있다. 그 역시 다른 청년들처럼 중학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한 뒤 마약과 술에 빠져 지냈다. 친구들과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 하루 1000원 안팎을 버는 것이 수입의 전부였다.

박 씨는 자치령 정부로부터 토지를 기부받았지만 재정적으로 어려워 중단된 목공 학교 건립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그는 “이곳 사람들은 고통을 곧잘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잔지바르=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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