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울지마 톤즈’ 빈민촌의 코리안]<1>가나의 ‘빵 아저씨’ 구승회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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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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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벗은 땅… 굶주린 아이들… 빵과 글, 희망으로 감싸다

보코 마을의 유치원 마당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구승회 씨(뒤에서 세 번째 줄 가운데)와 부인 이은미 씨. 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두 딸을 입양시킨 구 씨는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에서 아프리카의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볼가탕가=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보코 마을의 유치원 마당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구승회 씨(뒤에서 세 번째 줄 가운데)와 부인 이은미 씨. 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두 딸을 입양시킨 구 씨는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에서 아프리카의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볼가탕가=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 수단 남부 톤즈에서 불꽃같은 삶을 살다 48세에 암으로 선종한 이태석 신부는 큰 울림을 주었다. 끝없이 욕망만을 좇던 사람들은 그의 고귀한 희생을 담은 영화 ‘울지 마 톤즈’를 보며 스스로를 돌아봤다.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의 오지에는 지금도 제2, 제3의 이태석 신부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땀과 마음을 쏟고 있다. 동아일보는 새해를 맞아 국제구호 비정부기구(NGO) 기아대책과 함께 ‘울지 마 톤즈’의 또 다른 주인공들을 찾아 나섰다. 》
사하라사막이 뿜어낸 하마탄(모래폭풍)이 붉은 대지를 뿌연 먼지로 채웠다. 현지 푸라푸라 부족 말로 ‘작은 돌과 큰 돌’을 뜻하는 지명이 나타내듯이 이 지역은 사바나 기후의 척박한 땅이다.

하마탄의 기습과 함께 건기가 시작되면 메마른 대기는 사람과 가축의 몸에서 수분을 빨아낸다. 땅은 거북 등처럼 갈라지고 사람들은 바싹 말라간다. 가마솥에 수수 한 줌을 넣고 끊인 미음 한 그릇으로 하루를 버티는 아이들은 볼록한 배와 큰 머리통만 보인다. 지난해 말 찾아간 아프리카 가나의 북쪽 도시 볼가탕가의 풍경이다.

○ “두 딸 입양시키고 더 많은 아이 얻어”

볼가탕가에서도 가장 낙후된 보코와 삼볼고 마을에서 빵 급식과 말라리아 퇴치사업을 하며 무료 유치원을 운영하는 구승회 씨(49). 그가 나타나면 아이들은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며 환호한다.

구 씨가 가나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 재학 중이던 1991년. 남부 지역에서 현지의 봉사활동가를 도우며 6개월간 머물렀다. 국내로 돌아와 금형, 직물 공장 등의 사업을 하면서도 그는 검은 얼굴에 하얀 콩처럼 박힌 아이들의 맑은 눈을 잊을 수 없었다.

2002년 아내 이은미 씨와 두 딸을 데리고 가나에 정착했다. 수도 아크라에서 차로 약 1시간 떨어진 맨사만의 밀림 지역에 ‘소리농업훈련센터’를 열었다. 낙후된 농업 기술을 끌어올리면 이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밀림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여자 비명 같은 소리를 내는 새가 밤새 울어대면 아이들과 아내도 따라 울었다. 작은딸은 말라리아에 걸려 8일간 밥을 못 먹고 생사의 기로에 섰다. “모든 걸 포기한 순간 아이가 기적적으로 살아났죠.”

현지 아이 4명도 입양해 키웠다. 아이들은 모두 장성해 큰아들은 아버지를 이어 봉사활동가로, 둘째는 택시 운전사로 일한다. 셋째는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으며 막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건축 설계를 배우고 있다.

맨사만은 열대우림 기후에 토양이 비옥해 열심히 일하면 굶지는 않는다. 하지만 북쪽의 사정은 암담했다. 하루 한 끼로 연명하는 아이들이 있는 볼가탕가로 가기로 결심했다. 2008년 잠시 귀국해 두 딸을 경기 양평군의 한 가정에 입양시켰다. “고교생이었던 두 딸은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지만 현지의 배고픈 아이들은 당장 내일이 없었어요. 두 딸을 보내고 더 많은 아이들을 얻었죠.”

이제 19, 20세가 된 두 딸은 당시엔 “아빠가 우릴 버렸다”고 서운해했다. 아내 이 씨도 그때 얘기가 나오자 눈물을 흘렸다. “가나에서 어렵게 살던 아이들이 입양 가정에서 난생처음 자기 방이 생겼다며 좋아하더라고요. 그걸 보고는 두 애들을 두고 떠나올 수 있었어요.”

○ 불모의 땅에서 소명을 위해

굶주린 아이들에겐 빵 한 조각이 가장 급했다. 구 씨는 직접 빵을 구워 매주 3번씩 아이들 600명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2시간씩 걸어 빵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파리가 20∼30마리씩 붙어 있다. 구 씨는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파리를 삼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웃었다.

진흙으로 빚은 원형 전통가옥에는 가축과 사람이 뒤엉켜 산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닥에 배설물이 가득한 축사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야만 방으로 갈 수 있다. 푸라푸라 부족에게 가축은 가장 중요한 재산이다. 물이 귀해 씻는 것도 힘들다. 위생 상태가 좋을 리 없다. 아이들은 말라리아, 황열 등 숱한 질병에 노출돼 있다. 한국의 한 단체의 기부로 말라리아약 1000상자를 보코 보건소에 기부한 구 씨는 아이들에게 약 먹이기를 꺼리는 부모들을 설득했다. 이곳에서 말라리아에 걸리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하거나 집에서 그냥 지내다 숨지는 경우도 흔하다.

유치원에는 4, 5세 반과 6, 7세 반을 합쳐 195명이 다닌다. 하루 한 끼도 먹기 힘들던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두 끼를 먹고 영어와 수학 등을 배운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야 하는 아이들은 대접에 한 가득 밥을 먹고는 더 달라고 한다.

구 씨는 요즘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시내에서 마을의 빵 굽는 시설로 밀가루반죽을 나르던 낡은 트럭이 고장 났다. 아이들은 흙먼지를 내며 비포장 길을 달려오던 ‘희망의 빵 차’를 기다린다.
▼ 3세부터 집안일…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 50%도 안돼 ▼

■ 삼볼고-보코 마을 아이들


빵 한 조각 얻기 위해 2시간 걸어와 보코 마을의 한 어린이는 구승회 씨가 나눠주는 빵을 받기 위해 어린 동생을 업고 2시간을 걸어왔다.
빵 한 조각 얻기 위해 2시간 걸어와 보코 마을의 한 어린이는 구승회 씨가 나눠주는 빵을 받기 위해 어린 동생을 업고 2시간을 걸어왔다.
가나의 삼볼고와 보코 마을에서는 부모 없는 아이들의 비율이 30%가 넘는다. 아이들의 보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다.

원인은 현지의 전근대적 결혼제도에 있다. 일부다처제가 만연한 이곳에선 한 집에 아이가 70명이 넘는 경우도 있다. 80대인 삼볼고 마을 추장은 얼마 전 소 한 마리를 처가에 주고 24세 처녀를 네 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15세 처녀는 소 2마리, 20세는 양 4마리를 받는다. 하지만 남편이 죽으면 젊은 부인들은 아이를 버리고 소와 양을 많이 가진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난다.

이런 식으로 남겨진 아이들은 3, 4세만 되면 땔감을 줍고 물을 긷는다. 6세면 수십 마리 소를 모는 목동 일을 시작한다. 이곳에선 당나귀가 끄는 수레에 땔감을 가득 싣고 가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얼마 전 이 마을에 생긴 초등학교의 출석률은 50%에도 못 미친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지만 일을 해야 하는 아이들은 학교에 오지 않는다. 중학교 진학률은 40% 정도이고, 대부분 기숙학교인 고교에 진학하는 비율은 10% 미만이다. 인구 3000명이 넘는 삼볼고 마을은 지난해 고교 진학생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어른들은 거의가 문맹이다.

구승회 씨의 유치원이 있는 보코 마을에서는 지난해 6명이 고교에 진학했다. 모두 중학교를 나와 구 씨의 유치원 교사로 일하던 학생들이다. 구 씨가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해 진학의 꿈을 이룬 것이다. 구 씨는 “여기 아이들은 머리가 좋다. 하지만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다. 이것만 풀어주면 이들의 지적 능력이 날개를 달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볼가탕가=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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