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부터 언어까지 철저한 현지화… 단순합병 넘어 ‘문화 융합’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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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00년 맞이 기획 / New 아세안 실크로드]
<6> 금융영토 넓히는 M&A 전략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의 우리소다라은행 지점에서 직원이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자카르타=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의 우리소다라은행 지점에서 직원이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자카르타=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지난달 2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의 우리소다라은행 본점. 사무실 곳곳에서 인도네시아 전통 의상인 바틱 문양의 셔츠를 입은 한국인 직원들이 눈에 띄었다. 인도네시아 현지 직원 대부분이 정장을 착용한 것과 달리 한국 직원들은 인도네시아 전통 의상을 입고 일했다.

2014년 문을 연 우리소다라은행은 인도네시아에서 최초로 한국-인도네시아 금융사가 합병해 만든 법인이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두 회사가 하나로 합쳐진 뒤 우리소다라은행 한국 직원들은 의상부터 언어까지 인도네시아에 완벽히 동화되기로 했다.

이 은행의 오재호 사업지원부장은 “아세안에서 현지 회사와 인수합병(M&A)하는 한국 금융사는 직원들끼리 얼마나 잘 융합하는지가 업무 시너지를 내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며 “인도네시아 직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일상 대화뿐 아니라 회의도 인도네시아어로 진행하고 옷도 전통 복장을 입는다”고 했다.

○ M&A, 사업 확장의 지름길

우리소다라은행이 출범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은행이 소다라은행의 지분을 인수하기로 계약을 맺은 뒤 2년 6개월이 지난 2014년 말에야 은행 문을 열 수 있었다. 2012년 6월 주식양수도 계약을 맺고 당국의 지분인수 승인까지 1년 6개월, 합병 승인까지 또 1년이 걸린 것이다.

이처럼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인도네시아 금융당국이 금융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M&A 심사를 무척 깐깐하게 진행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합병을 준비한 실무자들은 “도무지 당국에서 진도가 안 나갔다”며 언제쯤이나 당국의 승인이 떨어질 수 있을지 노심초사했다고 전했다. 합병 승인은 본국에서 대통령이 나선 다음에야 풀렸다. 2013년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인도네시아 수교 40주년을 맞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며 우리소다라은행 건을 콕 집어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 후에야 당국은 인수 승인에 속도를 냈다.


우리은행이 이렇게 수년간 공을 들여 현지 은행의 합병에 나선 것은 M&A가 현지화를 빠른 시간 내에 마칠 수 있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은행 인도네시아법인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한 대출 영업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이런 영업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115개 상업은행과 1619개 지역은행이 각축전을 벌이는 인도네시아에선 현지 은행들과의 덩치 경쟁이 필수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50만 명의 고객을 가진 소다라은행을 품에 안는 것은 우리은행이 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이라는 판단이 섰다.

윤현성 우리은행 글로벌전략 부부장은 “해외에서 소매금융 사업에 바로 나서기엔 영업망도 부족하고 고객 신용도를 어떻게 확인할지에 대한 노하우도 부족했다”며 “우리같이 현지화를 처음 시도하는 상황에서는 M&A 전략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 베트남-인도네시아, 금융사 영토 확장 격전지

신한베트남은행은 지난해 1000억 원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냈다. 2017년 순이익인 470억 원의 배를 넘는 수준이다. 2018년 국내 은행이 베트남 점포에서 거둔 전체 순이익인 1500억 원의 60%를 차지한다.

신한베트남은행의 놀라운 성장도 성공적인 M&A에서 시작됐다. 1992년 국내 은행 중 처음으로 베트남사무소를 연 신한은행은 2017년 말 호주계 ANZ은행의 현지 리테일 부문을 인수했다. 이후 외국계 은행 중 자산 1위에 오르며 규모와 내실이 급성장했다.

KEB하나은행은 베트남의 ‘빅3’ 은행 중 하나인 베트남투자개발은행(BIDV) 지분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BIDV가 올 상반기 내 유상증자를 하면 지분 15%를 인수하는 형태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이를 위해 베트남중앙은행 총재 등 현지 금융계 고위 관계자를 만나며 높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은행도 베트남우체국보험과 손해보험부문 방카쉬랑스 업무제휴를 맺는 등 현지화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현재 가장 뜨겁게 떠오르고 있는 M&A의 전장이다. 인구 2억7000만 명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놓고 전 세계 금융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IBK기업은행은 지난해 말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으로부터 아그리스은행과 미트라니아가은행의 인수 승인을 동시에 얻었다. 기업은행은 두 은행과 합병해 회사 이름과 로고를 바꾼 뒤 올 상반기 내에 IBK인도네시아은행을 세울 방침이다.

KB국민은행은 부코핀은행의 지분 22%를 인수해 2대 주주가 됐고 NH농협은행도 인수합병을 위한 시장 조사를 하고 있다.

신한은행도 인도네시아에서 센트라타마내셔널은행과 뱅크메트로익스프레스를 동시에 인수해 신한인도네시아은행으로 영업하고 있다. 변상모 신한인도네시아은행장은 “기업 대출과 리테일 영업을 모두 강화하려는 금융사를 중심으로 M&A 수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한금융도 중금리 대출 중심의 소매금융 영업을 위해 전문 캐피털사 인수를 추진 중이다.

자카르타=송충현 balgun@donga.com / 하노이=조은아 기자
#문화 융합#아세안#베트남#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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