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날개 단 사천, 불황의 바다 위를 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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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도시의 미래다]<12> ‘항공우주산업 메카’ 경남 사천

경남 사천시 사남면 공단1로에 위치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생산라인에서 직원들이 국내 최초의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을 만들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 제공
경남 사천시 사남면 공단1로에 위치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생산라인에서 직원들이 국내 최초의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을 만들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 제공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항공제조사 3곳인 현대우주항공, 삼성항공, 대우중공업이 합병을 선언했다. 구조조정을 통해 3사가 시너지를 내지 못하면 모두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결국 1999년 3사는 민간 항공기 부품과 군용 항공기를 생산하는 방위산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으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충남 서산시, 경남 창원시와 사천시 등에 흩어져 있던 각사의 공장 중 어느 곳을 주력 생산지로 정할지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당시 KAI가 고심 끝에 사천시를 선택했던 건 항공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군 공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입사했던 직원들은 사천에 처음 왔을 때 택시에서 내렸더니 소가 지나가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지금도 한다. 김준명 KAI 커뮤니케이션실장은 “비행장이 있다는 것을 빼고는 논밭밖에 없던 곳이다 보니 과연 이곳에서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당시로서는 지방에 터를 잡는다는 건 그야말로 도박이었다”고 말했다.

이랬던 KAI 본사를 최근 방문했다. 사천 사남면 공단1로에 위치한 KAI 본사 입구에는 화물 트럭이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공장으로 가는 길에는 KAI의 협력업체들이 즐비했다. 근처에는 아파트도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사천이 고향인 KAI의 박효원 과장은 “서울에서 일하다 고향으로 다시 왔는데 개구리 잡으러 다니던 동네에 유명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서서 놀랐다”며 “맥도날드와 올리브영이 들어왔을 땐 만세를 부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2005년엔 서울에 있던 KAI 본사도 아예 사천으로 이전했다. 사천을 항공우주산업의 메카로 키우겠다는 KAI의 비전을 사천시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특히 KAI는 각지에 있던 공장도 사천으로 통합하면서 사천을 이른바 ‘원 사이트(One Site)’화했다. 항공 관련 협력업체들도 사천으로 몰려들면서 국내 유일의 항공산업 특화단지가 조성된 것이다.

창립 초기 2700명이던 KAI의 임직원 수는 현재 4700명으로 늘었다. 사천엔 현재 약 60개의 항공업체가 있다. 국내 항공업체가 약 100개인 점에 비춰보면 절반 이상이 사천에 몰려 있는 것이다. 이 지역의 항공산업 종사자도 1만 명에 이른다. 지난해 7월 설립된 KAI의 자회사이자 항공정비 특화업체인 한국항공서비스(KAMES)가 올 2월에 항공기 정비를 시작했다. 2026년까지 항공정비 분야에서 직간접 일자리가 약 1만5000개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 활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경남지역에서 KAI는 지난해 매출이 약 2조8000억 원을 일궈내 지역 경제의 위기 확산을 막는 방파제 역할도 했다. 2010년부터 시작된 조선업 침체로 사천에 있던 SPP조선소는 꾸준히 인력을 줄였다. 협력업체도 나날이 문을 닫으면서 최근 몇 년간 이 지역에는 대량 실직이 발생했다. 이들 실직자를 KAI와 항공업체들이 흡수하면서 지역 경제가 버틸 수 있었다. 오성근 KAI 차장은 ”KAI 직원들은 이 지역에서 배우자감 1순위다. 아이들도 아빠가 KAI 다닌다며 자랑까지 할 정도”라고 말했다.

정태현 사천시 우주항공국 국장은 “조선소가 있던 다른 지역은 지금도 고용이 파탄 나고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지만 사천은 항공산업단지를 조성한 덕분에 충격이 덜했다”며 “사천시청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우주항공국’이 만들어질 정도로 항공산업이 지역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천=변종국 기자 bjk@donga.com
#kai#항공우주산업#기업이 도시의 미래다#경남 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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