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가 “잘 썼다”며 토씨만 고쳐준 자소서, 서류전형서 탈락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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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확성기]<6> 도움 안되는 정부 취업컨설팅

“아무리 공짜라도 너무한 것 아닌가요?”

최근 정부의 취업지원프로그램 중 하나인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 중인 김경덕(가명·27) 씨는 자기소개서 첨삭 서비스를 받고 이렇게 토로했다. 자소서를 다 뜯어고쳐 달라는 게 아니었다. 단지 기업이 입사지원자에게 궁금해 하는 점을 제대로 답했는지 객관적으로 조언해주길 바랐지만 도움이 안 되는 무성의한 답만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취업컨설팅은 주로 대학창조일자리센터나 취업성공패키지에서 이뤄진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와 일자리TF 취재 결과 청년들은 컨설팅의 수준이 낮거나 상담사가 자주 바뀌는 문제로 취업프로그램의 실효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 뻔한 자소서 컨설팅에 서류전형 탈락

본보는 김경덕 씨가 공공기관에 지원하기 전 취업상담사에게 첨삭받은 자소서 원본을 분석했다. 질문에 답하는 방식인 이 자소서에 김 씨는 총 2500자를 적어 담당 상담사에게 건넸다. 상담사는 8줄짜리 답변에서 뻔한 지적과 오자 수정, 어색한 칭찬만 나열했다.

예를 들어 ‘교내 팀별 활동 경험을 소개해 보라’는 항목에 대해 김 씨는 ‘팀장으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고 썼지만 근거가 부족했다. 본인의 ‘적극성’을 보여주는 사례, 적극적으로 행동한 이유와 결과를 보강해야 했다. 하지만 상담사가 보내온 답변에는 ‘팀원들이 이렇게 이렇게 해서, 뭐 본인의 신뢰도가 더 높아졌다고 넣어주면 좋겠다’는 암호 같은 설명뿐이었다. ‘일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는지 기술하라’는 항목에 대한 김 씨의 답은 시간과 보상수준에 따라 정한다는 것이었다. 추상적인 데다 김 씨가 지원하는 공공기관 면접관으로선 동의하기 힘든 논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상담사는 ‘잘 썼다’며 토씨만 고쳤다.

김 씨는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상담사에게 자소서를 다시 봐달라고 요청했지만 열흘이 넘도록 아무런 답도 없었다. 김 씨는 “전문성 없는 컨설팅이라면 안 받는 것보다 못한 것 아니냐”며 “믿고 따랐다가 계속 탈락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박주민(가명·24) 씨는 컨설팅을 받을 때마다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사는 박 씨를 만나면 항상 ‘희망직군이 무엇이냐’ ‘어느 회사를 지원했느냐’부터 시작했다. 불과 일주일 전 나눈 이야기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상담 결과를 축적하지 않고 그때그때 일회성 상담을 하는 것이다.

○ 취업 분야 지식 없이 컨설팅

청년들은 “친절하고 최선을 다하는 컨설턴트도 많다”면서도 컨설팅 정보가 취업준비생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정보기술(IT) 업계 취업을 준비하던 서정은 씨(29·여)는 취업성공패키지에서 몇 차례 상담을 받았다. 같은 IT 분야라도 희망 직무에 따라 배워야 할 과정이 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모르는 상담사는 진로와 무관하게 컴퓨터 교육과정을 추천해줬다.

국내 기업에 대한 상담도 부실하지만 외국계 기업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상담도 받기 어려운 형편이다. 최근 경쟁이 치열한 국내 대기업 대신 국내외의 외국계 강소기업에 들어가려는 청년이 많아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서울 A대학 창조일자리센터에서 상담받은 조모 씨(22·여)는 “한국 기업과는 전혀 다른 외국계 회사의 채용 방식에 궁금증이 많았지만 컨설턴트가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 수시로 고용센터 옮겨 다니는 상담사

운 좋게 전문성 있는 컨설턴트를 만나도 금방 담당자가 바뀌는 만큼 지속적인 상담이 어렵다.

“헬스케어 업계 취업을 준비하면서 이 분야를 잘 아는 컨설턴트를 만났어요. 취업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분이 사라졌죠. 당황해서 취업준비 커뮤니티에 ‘○○○ 선생님 어디 가셨나요?’라는 글을 올렸어요.”(대학창조일자리센터에서 취업상담을 받은 학생 A 씨)

2월 정부가 주최한 일자리대책 청년간담회에서도 이런 내용이 지적됐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당시 한 참석자는 상담의 질을 높이기 위해 상담사 처우 개선과 상담 과정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상담사 중에는 월급이 200만 원도 안 되는 계약직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고용센터 내부 관계자는 “상담사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선발되고 있어 서비스의 지속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수연 sykim@donga.com·구특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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