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산업 싹 키워라” 전략적 방치… 아이디어 팝콘처럼 터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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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새해 특집/3만 혁신기업이 3만달러 한국 이끈다]<2> 中 ‘사후 규제’로 창업 생태계 육성

지난해 12월 6일 방문한 중국 상하이(上海) 시내 곳곳은 자전거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스마트폰 앱으로 보증금을 모바일 결제하고 나서 자전거에 붙은 QR코드를 스캔해 자물쇠를 잠금 해제하면 이용할 수 있는 공유자전거다. 이용이 편리하다는 장점 덕분에 공유자전거 시장은 급성장했다. 2011년 전후로 시작된 공유자전거 시장은 한때 100여 개 업체가 경쟁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으로 2017년 말 기준 선두 사업자인 오포와 모바이크 정도만 남고 대부분 도산했다.

흥미로운 점은 문제가 불거졌을 때 정부의 대응 방식이었다. 자전거를 아무 곳에나 세워놓아도 되기 때문에 일부 자전거들은 뒤엉켜 있다시피 방치되어 있거나 고가도로 입구까지 자전거를 세워 두는 문제가 생겼다. 한동안 공유자전거 산업에 개입하지 않던 상하이 정부는 한참 지나서야 업체가 스스로 자전거를 관리하게 하는 등의 규제를 만들었다. 이윤식 상하이 KOTRA무역관 과장은 “중국은 창업 자체를 막기보다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사후(事後) 규제를 만들어 창업 생태계를 육성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이 새로운 사업 분야에 진출하자마자 불법 여부부터 가리는 한국 정부와 접근 방식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전날 방문한 중국 선전 공항 인근의 도로변 승강장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현지인들이 스마트폰으로 공유자동차 업체인 디디추싱(滴滴出行) 앱을 이용해 차량을 호출하고 있었다. 선전의 정보기술(IT) 업체에서 근무하다 최근 디디추싱의 운전기사로 일하는 류모 씨는 “디디추싱과 일반 택시 이용 고객이 다르기 때문에 사업 진입에 대한 반발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택시는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거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차를 타고 싶어 하는 외국인이나 노인 등이 이용하면 된다는 식이다. 한국에서는 정부 규제로 공유차량 사업 기회가 원천 봉쇄당하고 있다.

하루 평균 1만6000여 개의 신설법인이 설립될 정도로 중국에서 벤처생태계가 활성화되는 것은 이처럼 관대한 정부 정책과 함께 중국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창업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상하이 황푸(黃浦)의 사무실에서 만난 에너지 분야의 스타트업 에너고의 창업자인 니콜 양 씨(36)는 중국의 대표적인 인터넷기업인 텐센트에서 약 3년간 초기 벤처기업 투자를 담당했다. 양 씨는 “대학 시절부터 가상통화에 관심을 갖고 관련 분야의 창업을 꿈꿨다. 텐센트에 들어간 것 역시 창업을 위해 일을 배우러 간 것”이라고 말했다.

양 씨가 창업한 에너고는 개인 간의 모든 거래 내용을 디지털장부(블록)에 저장하고 이를 전체 참여자에게 전달해 거래의 신뢰를 높이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에너고는 개인이 태양광 등을 통해 생산한 에너지를 필요한 사람끼리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교환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회사가 만든 가상통화(TSL)는 개인이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이용할 때 사용된다. 개인 간 에너지 교환 방식의 사업과 가상통화를 연동한 독특한 사업모델이다.

중국 젊은이의 창업 열기는 벤처 창업으로 성공한 수많은 실제 인물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영향도 크다. 중국 선전과 상하이에서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있는 SV캐피털의 이현송 심사역은 “중국 청년들은 알리바바의 마윈(馬雲)이나 샤오미의 레이쥔(雷軍)처럼 창업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쥔 인물을 옆에서 보고 자라고 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이병철, 정주영 신화’를 바로 지켜보고 있으니 창업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창업에 실패한 젊은이를 패배자가 아닌 좋은 경험을 쌓아 한 단계 성장한 인재로 보는 사회의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실패 경험은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대학의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지원할 때 오히려 가점 대상이다. 창업기업에 투자할 때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푸단(復旦)대는 기존에 실패 경험이 있는 창업자에게 투자하는 것을 오히려 선호한다.

이미 성공한 대기업 반열에 오른 벤처가 적극적으로 벤처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점 역시 중국 창업생태계가 선순환할 수 있는 주요 요인이다.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두 등이 사내 벤처 육성에 적극적이고 외부 벤처 투자에도 나선다. 한국 대기업들이 외부 투자나 인수합병(M&A) 대신 사내에서 사업을 육성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상하이의 벤처투자기관인 LP공회의 쉐칭 공동조합원(조인트 파트너)은 “중국 정부가 벤처 시장에 투자하고 있지만 벤처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대기업을 포함한 민간자본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선전·상하이=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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