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비키니] 가을에는 정말 말이 살찔까? 왜 하필 말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8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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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사회 제주 경주마목장에서 질주하고 있는 말들. 제주=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한국마사회 제주 경주마목장에서 질주하고 있는 말들. 제주=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어느덧 올해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도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인 천고마비는 가을을 대표하는 수식어. 하늘이 높은 건 누구나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직접 말을 키우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정말 말이 가을에 살이 찌는지는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일단 정답은 ‘네, 그렇습니다’입니다. 적어도 ‘렌츠런파크 서울’에서 경마에 참가하는 말(서울 경주마)은 확실히 가을에 몸무게가 늘어납니다.

경주마는 경주에 출전할 때마다 체중 검사를 받고, 한국마사회는 이 체중 검사 결과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두고 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파이선’을 가지고 마사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서울 경주마 1757마리 가운데 미검마(未檢馬) 245마리를 제외한 1512마리의 몸무게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경주마는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 경주에 출전하고, 이 1512마리는 총 1만9988번(평균 13.2번) 체중 검사를 받았습니다. 이 정도 데이터면 표본 숫자가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겠죠?

실제 결과를 보면 8월에 472.5㎏이던 평균 몸무게는 가을이 시작되는 9월에는 473.7㎏로 1.2㎏ 늘어나고, 10월에는 다시 474.3㎏까지 올라갑니다. 11월이 되면 473.1㎏으로 내려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름보다는 살이 찐 상태입니다.



위에 있는 그래프를 보면 가늠할 수 있는 것처럼 계절별 몸무게 역시 가을이 제일 높습니다. 아예 3월부터 석 달씩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구분해 보면 가을 평균 몸무게가 473.7㎏으로 가장 많이 나갑니다.



이전 계절보다 몸무게가 늘어난 비율을 살펴봐도 마찬가지. 전체 서울 경주마 가운데 63.1%가 여름 석 달보다 가을 석 달 평균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갔습니다. 요컨대 가을은 가장 많은 말이 가장 많이 살찌는 계절입니다.



사실 가을에는 말만 살이 찌는 건 아닙니다. 가을에는 식욕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식욕은 포만감을 느끼는 ‘포만중추’와 배고픔을 느끼는 ‘섭식중추’에서 조절합니다. 포만중추를 자극하는 요인 중 하나가 기온입니다. 체온이 일정 수준이 도달하면 포만중추가 우리 몸에 ‘그만 먹어도 된다’고 사인을 보내는 겁니다. 가을에는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더 많이 먹어야 포만중추가 자극을 받게 됩니다.

이건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인데 왜 하필 많고 많은 동물 중에 말이 살찐다고 하게 된 걸까요?

이 말을 처음 쓴 건 당나라 때 시인 두심언(?~708)이었습니다. 이 두심언의 손자가 바로 시성(詩聖) 두보(712~770)입니다.

유목민족이라 겨울이면 먹거리가 떨어지던 흉노는 가을걷이를 끝낸 중국 남쪽 지방을 침략해 물자를 빼앗아가기 일쑤였습니다. 두심언은 흉노의 침략을 막으러 북방으로 떠나던 친구 소미도에게 시를 지어 선물했습니다. 아래는 그 시 가운에 일부를 옮긴 것.



여기서 두 번째 행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가 바뀐 말이 천고마비입니다. 구름이 걷히고 요사스런 별이 떨어졌다는 것 흉노를 물리쳤다는 뜻. 그렇게 흉노를 몰아내고 나면 전쟁에 지친 말도 다시 살이 오를 겁니다.

두시언은 이렇게 승리하고 돌아오라는 바람을 담아 친구에게 시를 선물했습니다. 이 시는 ‘수레를 타고 도읍으로 돌아오니, 같이 놀던 벗들 모두 나와 반기네(輿駕還京邑 朋遊滿帝畿·여가환경읍 붕유만제기), 개선하기로 한 약속 지키니, 봄 아침 햇살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네(方期來獻凱 歌舞共春輝(방기래헌개 가무공춘휘)’로 끝이 납니다.

천고마비와 함께 가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하나 더 꼽으라면 등화가친(燈火可親)일 터. 이 말을 21세기 식으로 번역하면 스마트폰 등불을 가까이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껏 1900자 가까이 읽으셨으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 8% 정도는 PC 모니터로 읽고 계시겠지만) 스마트폰에서 눈 떼시고 가을 공기 한번 힘껏 들이켜 보세요. 그러면 가을 기운으로 우리 마음도 살이 찌지 않을까요?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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