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데이터 비키니]체르노빌 사람들, 왜 “그래도 원전 필요하다” 할까?
더보기

[데이터 비키니]체르노빌 사람들, 왜 “그래도 원전 필요하다” 할까?

황규인 기자 입력 2017-10-24 17:10수정 2017-10-24 17:31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1986년 폭발 사고가 일어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체르노빌=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에타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25주년을 맞은 2011년 우크라이나를 찾았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저 말 원래 뜻은 그냥 ‘여기는 우크라이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우크라이나는 원래 문제가 많은 곳”이라는 의미로 저 말을 썼습니다.

처음 이 말을 들은 건 도착 이튿날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숙소로 정한 호텔에서 저녁밥을 먹는데 전기가 나갔습니다. 그 뒤로 나흘 동안 이 식당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면 초를 켜고 밥을 먹었죠. 그러자 한국인 식당 주인이 “체르노빌 원전에서 전기 생산이 중단된 뒤 잠깐씩 전기가 끊어질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오래 간다”며 저 표현을 알려줬습니다.


●우크라이나 전기 54%, 원자력 발전으로 충당

주요기사

이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더 나빠졌을지 모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발전량이 더 줄어들거든요. 2011년에는 전체 발전량이 19만4337GWh(기가와트시)였는데 가장 최신 자료인 2015년에는 16만3682GWh로 19.1%가 줄었습니다.


현대 사회에 전기가 없으면 살기 힘든 건 어디나 마찬가지.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해법을 찾으려 했겠죠? 네, 그래서 선택한 수단이 바로 ‘원자력’이었습니다. 네, 제대로 읽으신 거 맞습니다.

우크라이나는 2015년 전체 발전량 중 53.5%(8만7627GWh)를 원자력 발전으로 만들었습니다. IEA 홈페이지에 남아 있는 가장 옛날 자료(1990년 25.5%)와 비교하면 2배 넘게 올라간 비율이죠. 참고로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를 경험한 일본의 지난해 원자력 발전 비중은 2.2%입니다.


이렇게 변했다는 건 원자력 발전량 자체도 늘었다는 뜻이겠죠? 물론 발전량 전체가 줄어든 걸 감당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1990년과 2000년 사이에 원자력 발전량 자체도 15% 늘었습니다.


사실 체르노빌 원전 4호기는 1986년 폭발했지만 1~3호기에서 완전히 발전을 멈춘 건 2000년이었습니다. 네, 인류 최악의 원전 사고를 경험한 그 발전소에서 14년 동안 더 전기를 만들었던 겁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현재도 원전 4곳에서 원자로 15기를 통해 전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체르노빌 사고가 있기 전에 지은 거라 어쩔 수 없이 쓰고 있는 걸까요? 아닙니다. 우크라이나는 2000년대 들어 원자로 2기를 추가했습니다. 흐멜니츠키 발전소는 현재 원자로 2기를 추가 건설 중에 있죠. 건설 기간을 계산에서 빼면 원자로 15기 중 60%(9)가 체르노빌 사고 이후에 발전을 시작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또 국토 중앙에 위치한 치히린에 새 원자력 발전소를 새로 짓는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체르노빌 사람들 “그래도 원전 필요하다.”

이런 정책이 체르노빌 피해자들에게 큰 상처가 되고 있을까요?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원자력이 없으면 전기가 없다는 뜻”이라는 걸 이들도 받아들이고 있으니까요.

사고 발생 25년이 지나도록 ‘피폭’ 후유증으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던 신카렌코 한나 씨. 키예프=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이 발전소 직원용으로 지은 계획도시 프리퍄티에 살던 신카렌코 한나 씨. 그는 그때까지 줄곧 국립 원자력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다녔습니다. 한나 씨는 “사람들은 25년이 지난 아직도 아픈 곳이 있냐고 묻는데 거꾸로 아프지 않은 곳이 있냐고 물었으면 좋겠다”면서도 “전기가 없으면 지금 나도 치료를 받고 있지 못할 거다. 원전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직접 구조에 참여했던 재향 군인들. 키예프=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사고 당시 현장을 수습하러 발전소에 들어갔던 재향 군인들(위 사진)도 한 목소리였습니다. 한 달 동안 헬기를 타고 냉각 작업을 벌였다는 나이도노프 볼리디미르 씨는 “한 과학자가 엉뚱한 실험을 하려다 너무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이 사고는 원전 자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실수였다”고 말하기도 했죠.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있는 국립 체르노빌 박물관에서 기념촬영 중인 우크라이나 소년들. 키예프=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젊은 친구들 생각도 비슷했습니다. 국립 체르노빌 박물관은 체르노빌 사태 수습에 썼던 탱크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 탱크 위에 올라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던 올가 군(위 사진 가운데) 역시 “이 박물관은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고 경고를 주는 곳이지 원전을 포기하라고 만든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에너지 믹스’가 중요하다

취재한 지 6년도 더 지난 수첩을 꺼내 이 글을 쓰면서 “아몰랑, 원전은 꼭 필요해”라고 말하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저 역시 ‘장기적으로는’ 원전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대신 탈원전에 앞서 발전 연료를 다양하게 갖추는 ‘에너지 믹스’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IEA 홈페이지에 올라온 가장 최신 시점인 2015년 기준으로 우크라이나가 실제 발전에 사용한 연료별 비율은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우크라이나 에너지 비중 그래프

원자력과 석탄이 전체 발전에서 87.8%를 차지하고 있죠. 풍력(0.7%)이나 태양열(0.3%), 바이오연료(0.1%) 같은 소위 신재생에너지는 보기 힘든 수준. 볼로디미리 흐로이스만 우크라이나 총리(39)도 최근 신 재생에너지 분야 투자를 약속했지만 당장 원자력 의존도를 크게 줄이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면 탈원전을 선언한 2011년 독일은 어떤 비율로 전기를 생산하고 있었을까요? 이번에도 IEA 홈페이지 자료를 토대로 그린 자료입니다.

독일 에너지 비중 그래프

풍력(8.0%), 바이오연료(5.4%), 태양열(3.2%)만 더해도 16.6%로 원자력(17.6%)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준비된’ 상태에서 탈원전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겁니다. 2015년이 되면 독일에서는 이 세 가지가 전체 전력 중 25.1%를 생산하게 됩니다. 독일은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전기 ‘순수출국’이 되기도 했으니 탈핵이 자리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 이제 한국을 볼 차례. 역시 IEA 홈페이지 자료 기준입니다. 작아서 잘 보이지 않으실 테니 태양열(0.7%), 바이오연료(0.4%), 풍력(0.2%)입니다. 쓰레기를 태워서 얻는 전기와 민물과 썰물이 만드는 힘을 뜻하는 조력(潮力)으로 만드는 전기도 각 0.1%입니다.

한국 에너지 비중 그래프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탈원전을 선택하는 건 시기상조 아닐까요? 이런 사정을 잘 아셨을 테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도 “진행 중인 원전 건설을 중단하는 급격한 탈원전은 안 된다. 우선 원전 안전성을 높이고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에 힘쓰자. 그 뒤에 차분히 탈원전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셨을 겁니다. 탈원전에도 확실히 준비가 필요합니다.

● 석기시대는 왜 끝났을까

“석기시대는 돌멩이가 부족해서 끝난 게 아니다.”
셰이크 아흐메드 자키 야마니 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은 “석유가 부족해서 석유시대가 끝나진 않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학 기술 발전이 석기시대를 끝냈듯 석유도 마찬가지 운명을 맞이할 거라는 뜻이죠. 전기 자동차에 이어 전기 비행기 연구가 활발한 데서 알 수 있듯 이미 석유를 전기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전기를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원자력입니다. 그게 어떤 기술이나 변화일지 모르지만 저는 “원자력이 위험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원자력 시대도 막을 내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언젠가 원자력 발전을 비효율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과학 기술이 등장할지도 모르니까요.


아니, 꼭 그런 기술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동아시아는 정말 원자력발전소가 빽빽하게 들어선 지역이라 위험하다면 정말 위험하거든요. 한국에서만 원전이 사라진다고 안전을 보장받기 힘든 이유도 이 그림에 나타납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