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IMF졸업 도취해 20년 제자리… 獨 개혁 내달려 실업률 최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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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20년, 기회의 문 넓히자]<2>한국-독일, 개혁 따라 엇갈린 운명
[2017 새해 특집]

《 “독일은 일할 사람이 부족해 고통을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 기업들이 겪고 있는 인력난을 소개했다. 29년간 경력 단절을 겪은 50대 전직 여성 은행원이 약간의 직업훈련을 거쳐 곧장 업무에 투입될 정도로 요즘 구인난을 겪고 있다는 분석도 곁들였다. 독일은 취업자가 늘면서 세수가 증가했고 사회복지 부담이 줄었다. 실업으로 훼손될 사회 안정성도 지켜내고 있다. 20년 전 외환위기로 고통받던 한국과 통일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던 독일은 각기 다른 길을 걸었다. 한국에선 미완성에 그친 구조개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향한 ‘기회의 문’이 닫히고 있다. 한때 ‘유럽의 병자(病者)’라는 한탄이 흘러나왔던 독일은 위기를 극복하고 노동시장 개혁의 토대 위에 ‘4차 산업혁명’의 새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
○ 독일보다 높아진 한국의 청년실업

 
동아일보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12월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일자리 기회가 적다’고 응답한 비율이 67.6%를 차지했다. 앞으로 일자리 구하기가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도 56.6%를 차지했다. 일자리를 통해 중산층으로 나아갈 기회의 문이 좁아져 구직자들의 절망감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회의 문이 좁아져 청년층의 좌절과 분노도 누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한국과 독일은 각각 외환위기와 통독 이후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후 구조개혁의 성과는 달랐다. 1997년 청년 실업률은 독일이 10.2%, 한국은 5.7%였다. 하지만 2013년 한국(8%)과 독일(7.8%)의 상황이 역전됐다. 이후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독일이 고용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중장기 개혁 정책을 실행에 옮긴 반면에 한국은 미완의 개혁에 그친 게 원인으로 꼽힌다. 독일은 2002년 ‘하르츠 개혁’을 통해 기간제, 파견제, ‘미니 잡’(월급 400유로 이하) 등 임시 일자리를 늘려 ‘일자리 기근’에 대응했다.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2005년 실업률이 11.2%까지 치솟았고, 실업자는 530만 명을 넘어섰다.

 시간이 흐르자 개혁의 약발이 듣기 시작했다. 일자리가 늘고 실업률이 극적으로 떨어졌다. 2015년 독일의 실업률은 통일 이후 사상 최저 수준인 4.6%로 하락했다. 2016년 11월 현재 독일 기업들이 인력을 구하지 못한 일자리만 70만 개에 이른다. 청년 실업률은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낮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질 일자리를 양산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실업률을 잡겠다는 목표는 확실히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 독일 미국 중국은 4차 산업혁명 새 일자리 창출

 독일은 하르츠 개혁으로 일자리 기회가 양적으로 늘었지만 질적으로는 하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독일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2011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는 ‘인더스트리 4.0’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독일 내에 자동화되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스마트 공장’을 만들어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와 미국, 중국 등의 추격을 뿌리치겠다는 것이다. 권준화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독일은 국가적으로 직업 재교육에 적극 나서면서 일자리 감소 없는 산업혁명에 한층 다가서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중국 등 경쟁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스타트업 아메리카 이니셔티브’(미국), ‘인터넷 플러스’(중국) 전략을 통해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창업을 지원해 일자리 늘리기에 나섰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해외로 떠난 대기업 공장을 자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법인세를 더 내리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 미완의 개혁으로 날아간 일자리 기회 

 한국은 노동개혁부터 발이 묶였다. 2015년 노사정위원회는 ‘9·15 협약’을 통해 고임금 근로자 임금 인상 자제, 임금체계 개편을 통한 고용유연성 확충 등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입법이 이뤄지지 않았다.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박근혜 정부가 리더십을 상실하면서 노동개혁은 사실상 방치 상태에 놓여 있다.

 청년층이 선호하는 ‘괜찮은 일자리’도 제자리걸음이다. 안정적인 대기업 일자리는 해외로 떠났고, 국내에 남아 있는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대기업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2015년 말 현재 중소기업 종사자의 평균 급여는 대기업의 62.0% 수준에 불과하다. 1997년에는 이 비율이 77.3%였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미국과 중국의 창업 육성 전략처럼 기업가 정신을 자극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창조경제’는 결실도 보기 전에 좌초될 위기에 직면했다.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펴낸 공동 저서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에서 “2001년 한국의 외환위기가 끝났다고 선언했는데 그게 참 아쉬웠다. 위기 분위기를 좀 더 연장해서 구조개혁을 더 강도 있게 밀고 나갔어야 했다”고 고백했다. 기업 투자와 창업을 활성화해 청년과 서민들이 더 나은 일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구조개혁의 새 틀을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하르츠 개혁 ::


2002년 독일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하고 장기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한 노동개혁 정책. 임시직 등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했다는 비판과 실업을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찬사를 동시에 받고 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동아일보-KDI 공동기획
#실업률#취업#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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