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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빈 기자의 세상만車]지킬 것과 버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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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빈 기자의 세상만車]지킬 것과 버릴 것

석동빈 기자 입력 2017-06-01 03:00수정 2017-06-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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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회사들은 강한 인상을 풍기기 위해 경쟁적으로 전면부에 커다란 인테이크 그릴을 넣는다. 그러나 BMW는 가로 배치 ‘키드니 그릴’ 때문에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아우디 ‘A8’,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렉서스 ‘LS’, BMW ‘7시리즈’. 각 회사 제공
석동빈 기자
최근 미국의 싱크탱크인 리싱크X는 “13년 뒤인 2030년에 미국 내 자동차 등록대수가 82% 감소할 것”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공유형 자율주행 전기차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인 소유의 내연기관(엔진) 자동차가 도로 위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예언입니다.

이 보고서는 미국 내 자동차 등록대수가 2020년 2억4700만 대로 정점을 찍은 뒤 2030년 4400만 대로 감소하면서 130년의 역사를 가진 자동차·운송산업과 개인의 내연기관 자동차 소유 문화가 종말을 맞고, 그 과정에서 세계 에너지 경제가 재편된다고 내다봤습니다. 이로 인해 제조-판매-유지·보수-보험-정유회사 등으로 이어지는 자동차 산업 가치사슬이 재난적 수준으로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도 지난달 2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글로벌 자동차 공유 서비스가 2030년까지 현재의 8배(약 320조 원)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공유 자동차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용이 아무리 낮아진다고 해도 사람의 기본적인 소유욕과 유아시트 같은 개인 사물을 보관해두는 편의성 측면에서 자동차 산업이 입는 타격이 예상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10년 뒤 자동차 산업과 관련 서비스 생태계가 ‘전동화, 자율주행, 공유’라는 3대 변혁의 요인으로 크게 달라질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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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4차 산업혁명의 폭풍을 코앞에 두고 있는 현재 상황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두 자동차회사가 있습니다. 현대·기아자동차와 BMW입니다. 기아자동차가 최근에 내놓은 스포츠세단 ‘스팅어’는 깜짝 놀랄 정도로 잘 만들어졌습니다. 운전 재미와 안락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도록 동력 성능과 차체, 서스펜션 세팅이 역대 국산차 중 최고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됐습니다. 또 현대차는 지난달 28일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열린 24시간 내구레이스에 곧 출시될 ‘i30N’ 모델 2대를 출전시켜 완주했습니다. 특히 개발 엔지니어들이 레이서로 참여해 의미를 더했습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노력들이 조금 안쓰럽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이런 식의 자동차 만들기는 끝물이기 때문입니다. 기존 자동차 산업의 가치체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데 10년 전 일본이 졸업한 자동차 제조와 마케팅을 이제야 구현했습니다.

차라리 이런 단계를 건너뛰고 지금은 미래 비전을 보여줄 고출력 전기차나 사람보다 운전을 잘하는 자율주행차를 실험적으로 내놓아야 할 타이밍이 아닐까요. 곧 스마트폰 세상이 열리는데 열심히 성능 좋은 ‘삐삐’를 개발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현대·기아차의 시가총액은 이미 미국의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에 따라잡혔습니다.

BMW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례로 보입니다. BMW의 상징은 흰색과 파란색이 4등분돼 있는 동그란 엠블럼과 ‘키드니 그릴’로 불리는 자동차 전면의 공기흡입구 두 가지입니다. 특히 키드니 그릴은 멀리서 봐도 BMW임을 각인시키는 효과가 뛰어나서 그동안 회사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키드니 그릴이 이제는 BMW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2004년 아우디의 ‘싱글 프레임’을 시작으로 경쟁사들은 앞다퉈 커다란 인테이크 그릴(사진 참조)을 도입해 강한 인상과 럭셔리함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BMW는 긴 타원형 그릴 2개를 가로로 배치해야 하는 디자인의 한계 때문에 전면부를 납작한 스타일로 만들 수밖에 없었고 상대적으로 경쟁 그룹 내에서 디자인 존재감도 약화됐습니다. 첨단 기술로 무장시켜 야심작으로 내놓은 신형 7시리즈의 판매 부진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특히 전기차 시대로 넘어가면 엔진의 열을 식히는 기능적 역할을 했던 인테이크 그릴의 존재 의미는 퇴색됩니다. BMW 내에서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키드니 그릴을 바꾸자는 주장은 ‘역적모의’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오래전부터 충분히 검토하고 조금씩 변화의 시도를 해왔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과거에 성공했던 경험이나 위기관리 방식이 적용되지 않는 시대입니다. 만일 기존 성과와 경험이 생존을 보장해준다면 세계 1위 기업이 몰락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죠. 그러나 우리는 코닥, 모토로라, 노키아 등이 단숨에 곤두박질치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엔진과 변속기 전문가나 키드니 그릴 신봉자를 옆에 두고선 미래를 준비하기 힘들어 보이는 이유입니다.

이제 지켜야 할 것은 파괴적인 자기 혁신과 유연한 사고를 가진 조직과 인재밖에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싱크탱크#리싱크x#공유 자동차 서비스#4차 산업혁명#bm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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