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한솔제지 권교택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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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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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삼경에 빠졌더니… ‘지식경영’ 혜안이 번쩍”

권교택 한솔제지 사장은 고전에 관심을 가진 이후 좋아하는 글귀를 옮겨 적으며 서예에 취미를 붙였다. 권 사장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솔제지 사무실에서 본인의 서예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권교택 한솔제지 사장은 고전에 관심을 가진 이후 좋아하는 글귀를 옮겨 적으며 서예에 취미를 붙였다. 권 사장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솔제지 사무실에서 본인의 서예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우리 회사의 모든 기술을 그것과 바꾸겠다.” 최근 세상을 떠난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남긴 유명한 이야기다. 세계적 정보기술(IT) 기업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경영의 귀재 잡스는 왜 2500년 전 철학자와의 만남을 원했을까.

권교택 한솔제지 사장(62)은 이렇게 설명한다. “고전(古典) 속에는 현대 경영학 원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정치인, 관료라면 고전을 읽어야 한다.”

○ 고전에서 배운 지식경영으로 흑자

권 사장은 2004년부터 올해 초까지 한솔케미칼 사장을 지내며 적자회사를 흑자로 돌려놓았다. 그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해 얻은 고전의 지혜가 지식경영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고 말했다.

권 사장은 “사서삼경 중 가장 먼저 공부해야 하는 대학(大學)에서 제시한 8조목 중 ‘격물(格物)’, ‘치지(致知)’가 바로 지식경영”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사물에 다가간다는 격물은 현상 속에 담긴 시스템에 다가간다는 뜻이며, 거기서 사물의 이치를 파악할 수 있다(치지)는 것이다. 그는 “열과 성을 다해서 바른 마음을 갖고 사물의 이치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지식경영”이라고 덧붙였다.

출렁이는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로 어려움을 겪었던 한솔케미칼에서 권 사장은 격물치지의 가르침을 ‘목표관리에 의한 지식경영’으로 구현했다. 그는 “적자를 내는 회사에는 ‘무엇을 해도 안 된다’는 냉소가 팽배하기 마련인데 그런 분위기를 바꾸려고 지식경영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각 부서 또는 개인이 ‘제조원가 10억 원 절감’, ‘생산성 5% 향상’ 등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부를 한 뒤 그 성과를 분기마다 발표하도록 했다. 우수한 성적을 낸 이들은 시상을 하고 해외연수를 보내주거나 승진인사 때 가산점을 주며 자연스레 회사 전체를 공부하는 분위기로 이끌었다. 스스로 매주 2, 3권씩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것은 임직원들에게 선물했다. 그 결과 권 사장이 취임 전 연간 200억 원 가까운 적자에 허덕였던 한솔케미칼은 이듬해인 2005년 100억 원의 흑자를 내며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2009년에는 185억 원, 지난해에는 창사 이래 최대인 203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 “CEO는 배, 직원은 물”

경북 예천에서 면장을 지낸 할아버지에게서 천자문과 유학(儒學)의 기초를 배운 권 사장이 고전에 푹 빠진 것은 한솔홈데코의 경영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던 1999년부터다. 심한 스트레스에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어딘가 정신을 쏟을 곳이 필요했다. 매일 오전 5시 반 기상해 사서삼경의 출발인 대학부터 내적 성숙을 가르치는 중용(中庸), 수사학 교본인 맹자(孟子), 윤리경영의 고전 논어(論語), 인생의 흥과 멋을 깨닫게 해준 시경(詩經)과 서경(書經)까지 차근차근 읽어 나갔다. 천지의 운행과 인간의 도리를 배우는 책인 주역(周易)은 2008년부터 2년 동안 서울 동숭동에 있는 동방문화진흥회를 찾아가 유학의 대가 청고 이응문 선생으로부터 강의도 들었다.

권 사장은 맹자가 왕도론(王道論)을 펼치며 남긴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하늘이 주는 때는 지리적 이로움만 못하고, 지리적 이로움은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라는 글귀를 가슴에 담고 산다. 그는 “최고경영자나 대통령이 배라면, 직원이나 국민은 물”이라며 “배는 물이 없으면 뜨지 못하고, 물은 배를 전복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2월 한솔제지 사장을 맡은 뒤 그가 힘 쏟고 있는 일은 친환경 재생용지 보급을 확대하는 것이다. 재생용지는 펄프로만 만들어진 일반 종이보다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탈묵(잉크 제거) 및 화학 공정을 거쳐야 해 값이 비싸 판매가 원활하지 못했다. 그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생용지 제조에 들어가는 재생원료의 비율을 30%에서 50%로 높여 품질과 가격을 동시에 낮추는 전략을 택했다.

권 사장은 “소비자들에게 재생용지는 비록 품질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친환경 제품이라는 점을 이해시켜 ‘재생용지를 쓰지 않으면 시대 변화에 뒤처진다’는 인식을 사회 전반에 퍼뜨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 권교택 한솔제지 사장은


▽1949년 출생
▽1977년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1976년 11월 삼성그룹 입사
▽1990년 한솔흥진 관리이사
▽1994년 한솔흥진 경영지원본부 상무
▽1999년 한솔홈데코 경영지원본부 상무
▽2002년 한솔케미칼 경영지원본부장
▽2004년 한솔케미칼 대표이사 사장
▽2011년 2월∼ 한솔제지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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