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에트로’ 브랜드 수입하는 이충희 듀오 대표

  • Array
  • 입력 2011년 8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패션으로 번 돈 예술에 돌려주렵니다”

이충희 듀오 대표가 17일 자신의 일터인 서울 강남구 첨담동 백운갤러리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 대표가 들고 있는 그림은 그가 팬을 자처하는 화가 한미키 씨의 작품이다. 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이충희 듀오 대표가 17일 자신의 일터인 서울 강남구 첨담동 백운갤러리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 대표가 들고 있는 그림은 그가 팬을 자처하는 화가 한미키 씨의 작품이다. 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에트로(ETRO)’를 수입하는 듀오의 본사는 우리나라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다. 이 건물 입구에는 에트로 광고판보다 더 눈에 띄는 자리에 패션과는 어울리지 않게 ‘백운(白雲) 갤러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돈 버는 것 이상으로 미술을 사랑하는 이충희 대표(56) 때문이다.

○‘인사동 키드’, 갤러리 주인이 되다

듀오의 젊은 직원들이 “촌스러운 느낌이 든다”고 불평한다는 ‘백운’이라는 이름은 골동품 수집에 조예가 깊었던 이 대표 부친의 호다. 자수성가한 사업가인 이 대표가 굳이 아버지의 호를 딴 갤러리를 연 것은 자신에게 수집이라는 취미, 그리고 미술에 눈뜨게 해준 이가 바로 학교 윤리 선생님이었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초등학교를 다니던 1960년대 중반 아버지의 손을 잡고 골동품 가게와 화랑을 드나들던 ‘인사동 키드’다. 별전(別錢·노리개로 쓰이던 장식용 동전)과 동경(銅鏡·구리거울), 한국화를 모으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이 대표는 ‘어른이 되면 예쁜 물건을 수집해보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면 “월급을 타면 꼭 갚겠다”며 가게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아버지를 보며 사업의 기본인 ‘흥정’을 배운 곳도 바로 인사동이다.

하지만 부친이 1970년대 초 서울 풍문여중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하고 이렇다 할 벌이가 사라지자 어머니는 남편이 평생을 모은 별전 컬렉션을 내다팔아야 했다. 이 대표도 대학을 졸업하고 호텔신라에 입사해 면세점 매장관리 일을 하고, 이후 퇴사해 명품 브랜드 수입사업에 뛰어들어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면서 한동안 인사동은 잊혀졌다.

이 대표가 다시 인사동을 찾은 것은 듀오의 영업이 정상궤도에 오른 2001년경이었다. 급하게 돈이 필요했던 지인의 부탁으로 덜컥 그가 소장하고 있던 그림 몇 점을 사준 이 대표는 “내가 산 그림이 어떤 것인지,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화랑을 돌아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게 인사동에 다시 발을 들여놓으면서 능력은 있지만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아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 화가들이 이 대표의 눈에 들어왔다. 신진 작가의 전시회는 대개 수요일부터 그 다음 주 화요일까지 1주일간 열린다. 이 대표는 “처음 전시를 시작할 때는 자신만만하던 젊은 작가들이 월요일쯤 되면 어깨가 축 늘어져요. 작품이 안 팔리니 대관료 걱정에 힘이 빠지는 거죠”라고 말했다. 그가 미술품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런 젊은 작가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어서였다.

듀오가 전국에 40곳의 직영 에트로 매장을 열 정도로 사업이 커지자 이 대표는 젊은 화가를 돕는 일에 더 욕심을 내기로 했다. 연간 6000만 원가량의 적지 않은 임대 수입이 나오는 사옥 5층을 지난해 초 갤러리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그는 백운갤러리라 이름 붙인 이곳에서 젊은 인사동 화가들에게 무료로 전시공간을 제공하고 작품도 보관해 주고 있다.

○“번 돈의 80%는 돌려줄 것”

이 대표의 또 다른 직함은 백운장학재단 이사장이다. 그는 2002년 장학재단을 설립해 매년 90여 명의 중고교생에게 250만 원씩 장학금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900명 이상이 20여억 원을 받았다. 지난해 매출 1000억 원, 영업이익 24억 원을 낸 듀오의 회사 규모를 감안하면 꽤 큰 돈이다. 이 대표는 “학창시절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일곱 번이나 장학금을 받았는데 그때 진 빚을 갚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돈을 더 벌면 작은 학교를 짓고 싶다는 꿈도 갖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원을 기부하기로 하고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이 됐다. 공동모금회의 비리가 불거지면서 성금이 줄어 평소 이 단체로부터 후원을 받던 복지시설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나서였다. 이 대표는 “혼자서 큰돈 갖고 있어봤자 다 쓰지도 못한다”며 “좋은 일에 돈을 쓰는 것만큼 큰 행복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언젠가는 유산의 80%를 사회에 환원할 생각”이라며 “(돈을 덜 물려줘야) 두 자녀가 돈 버는 재미를 느껴보지 않겠느냐”며 활짝 웃었다.

이 대표의 메세나(문화·예술·스포츠 등에 대한 기업의 후원활동)와 사회공헌은 에트로의 고향 이탈리아에서도 인정받았다. 이 대표는 2008년 4월 조르조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코멘다토레(Commendatore) 문화훈장을 받았다. 마시모 안드레아 레제리 주한 이탈리아 대사가 듀오의 활발한 나눔 실천이 이탈리아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줬다고 추천한 것이다.

이 대표의 요즘 관심사는 본업인 패션사업에 미술 사랑을 접목하는 일이다. 그는 듀오를 설립한 지 20년째 되는 내년 3월 15일 미술과 음악, 패션이 어우러진 패션쇼를 열 계획이다. 패션쇼의 미술감독은 이 대표가 아너소사이어티 모임에서 만난 재프랑스 화가 한미키 씨(65·여)가 맡았다. 평소 한 씨를 좋아한다는 이 대표는 최근에는 한 씨의 전시기획부터 작품 판매까지 모든 일을 책임지는 ‘매니저’ 일도 자청해 돕고 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 이충희 대표는


△1955년 서울 출생
△1977년 경기대 관광경영과 졸업(1986년 같은 대학원 졸업)
△1979∼1991년 호텔신라 면세점 영업점장
△1991∼1993년 유로통상 이사
△1993년∼ ㈜듀오 대표
△2002년∼ 백운장학재단 이사장
△2008년 이탈리아 코멘다토레 문화훈장 수훈
△2010년∼백운갤러리 대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