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유관문 캘빈클라인컬렉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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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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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치즈’ 다”

유관문 캘빈클라인컬렉션 대표가 2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인 이탈로니아에서 다양한 맛과 향을 가진 치즈들을 보여주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유관문 캘빈클라인컬렉션 대표가 2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인 이탈로니아에서 다양한 맛과 향을 가진 치즈들을 보여주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치즈였다. 패션사업이 고비를 맞으면서 힘겨워하던 그에게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 건 치즈였다. 사업을 정리하면서 틈틈이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치즈학교를 다니던 그는 텅 비었던 몸과 마음에 비로소 에너지를 채워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유관문 캘빈클라인컬렉션 대표(51)는 프랑스 유학 시절 접했던 치즈의 섬세한 맛과 그 안에 담긴 무궁무진한 스토리에 사로잡혔다. 그는 직원들과 치즈 파티를 열고 치즈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것을 즐긴다. 씨티은행 지점장들에게 치즈와 와인에 대해 강의도 했다. 》
○ 새로운 세상, 치즈

유 대표는 1983년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에서 유명한 기타리스트였던 친구와 친구의 여자친구는 지하철 생미셸역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공연 때마다 제법 많은 동전이 모였고 이들 셋은 저녁으로 와인과 빵, 그리고 치즈를 즐겨 먹었다.

치즈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큰딸이 파리의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였다.

“하루는 딸아이가 울면서 학교에서 돌아왔어요.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각자 아는 치즈 이름을 써 보라고 했는데, 딸이 가공치즈인 ‘라 바슈 키 리(미국 브랜드명 래핑카우)’ 단 하나만을 써 내자 선생님이 ‘그건 치즈가 아니야’라고 말했다더군요.”

이를 본 유 대표는 “프랑스에서 살고 있으니 치즈를 제대로 먹어보자”고 결심했다. 치즈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고 프랑스인 친구들에게 치즈에 대해 물어봤다. 발효식품인 치즈는 와인처럼 오묘하고 넓은 또 다른 세계였다.

“소의 품종에 따라 치즈 맛이 달라집니다. 같은 품종의 소라도 평지에서만 풀을 먹었을 때 짠 우유와 여름철 산에 올라가 풀을 먹고 짠 우유로 치즈를 만들면 맛은 물론이고 색깔까지 다르게 나오지요.”

치즈에는 스토리도 담겨 있다. 나폴레옹은 ‘에푸아스’라는 치즈를, 사랑했던 아내 조세핀의 냄새라고 여기며 먹었다고 한다.

○ 발효기간의 마술

치즈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프랑스 유명 식당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온 한국의 요리 전문가들을 안내하면서부터였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두 개 혹은 세 개를 받은 식당들을 다니면서 지역별로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치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통령의 요리사였던 폴 보퀴즈가 운영하는 리옹의 레스토랑에 갔는데, 디저트로 2층짜리 카트에 치즈를 종류별로 가득 담아 내오더군요. 리옹에서 가장 유명한 치즈가게에서 구입한 치즈였지요,”

프랑스에는 치즈만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가 많다. 치즈가게에서는 숙성 정도에 따라 날짜별로 먹기 좋은 치즈들을 권해 준다. 치즈 숙성을 담당하는 전문직인 아피뇌르(숙성사)란 직업까지 있다. 보퀴즈는 “치즈는 만드는 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숙성이 중요해 전문업체에서 만든 것을 가져와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는 치즈전문가의 개인지도도 받았다. 프랑스에는 치즈 종류만 600여 개에 이른다. 유 대표는 이 중 80% 정도를 맛봤다. 지금도 계속 새로운 치즈가 탄생하고 있다.

“치즈는 발효기간이 길수록 딱딱해지고 맛은 더 부드러워집니다. 발효기간이 짧은 치즈는 말랑말랑하고 냄새가 강하죠. 살균하지 않은 우유로 치즈를 만들어야 특유의 냄새가 살아납니다.”

○ “치즈와 패션은 닮은꼴”

1995년 한국에서 해외 유명 브랜드를 들여와 패션사업을 시작한 유 대표는 빠른 속도로 사업을 키워 나갔다. 파리 유학시절 패션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패션에 흥미를 느껴 사업에 나섰다. 하지만 2007년 사업이 휘청거리면서 유 대표는 고민에 휩싸였다. 머리를 비우기 위해 그해 프랑스와 스위스에 있는 치즈 전문학교를 다니면서 그는 정말 행복했다. 프랑스 학교에서는 단계별로 각각 3박 4일로 구성된 코스 4개를, 스위스 학교에서는 단계별로 하루짜리인 코스 5개를 모두 마쳤다. 수업기간은 길지 않지만 각각의 코스는 1년에 걸쳐 진행됐다.

유 대표는 치즈와 패션은 닮은 점이 많다고 말한다.

“치즈는 작은 요소 하나하나가 맛과 색깔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디테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감수성도 필요하고요. 패션과 통하는 점이 많습니다.”

패션에서 아이템을 어떻게 매치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 치즈도 어떤 종류를 함께 먹는지, 빵과 와인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풍미가 제각각이다. 유 대표는 “머릿속으로 각각의 조합이 빚어내는 느낌과 맛을 상상해보는 것도 즐겁고 실제로 이를 확인해 보면 짜릿하다”며 “치즈와 패션 모두 내가 원하는 대로 ‘나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캘빈클라인의 여러 브랜드 가운데 최고급인 캘빈클라인컬렉션을 키우기 위해 현재 7개인 매장을 2, 3년 내에 15개로 늘릴 계획이다. 그는 “캘빈클라인컬렉션을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유지하며 활동하기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제품을 늘려 실용성도 겸비한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유관문 대표는


△1960년 출생 △1983년 연세대 국문과 졸업 △1985년 파리5대학 언어학 석사 △1987∼1990년 해군사관학교에서 프랑스어 강의 △1993년 파리5대학 언어학 박사 수료 △1995년 회사 ‘유로인포커머스’를 설립해 사업 시작. 이탈리아 패션브랜드 ‘세루티 진’, 프랑스 패션브랜드 ‘세인트 제임스’ 론칭 △2005년 이탈리아 패션브랜드 ‘잔 프랑코 페레’ 론칭, 남성멀티숍 MSF 오픈 △2006년 남성 멀티숍 ‘르 메일’ 오픈 △2010년∼현재 캘빈클라인컬렉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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