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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남의 일 같지않은 ‘볼리비아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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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남의 일 같지않은 ‘볼리비아 포퓰리즘’

동아일보입력 2011-12-19 03:00수정 2011-12-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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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욱 주볼리비아 대사는 5일(현지 시간) 만찬에 볼리비아 광업자원부 장차관을 초청해 자원외교를 벌였다. 주볼리비아 한국대사관은 199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일시 폐쇄됐지만 남미의 자원 부국인 볼리비아와의 관계를 감안해 2008년 다시 개설된 곳이다.

거실과 식당 곳곳에 놓인 한국적인 도자기와 가구 등을 둘러보며 아름다움에 감탄하던 호세 피멘텔 볼리비아 광업자원부 장관이 만찬 도중 농담을 건넸다. “이 건물이 전 대통령 딸 소유지요? 국유화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고. 제가 있을 때는 하지 마세요.” 전 대사가 재치 있게 받아넘겨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식사를 마쳤지만 그저 웃고 넘어갈 만한 장면은 아니었다.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이 극성인 남미, 그중에서도 최선봉에 선 볼리비아가 재원(財源) 마련을 위해 얼마나 골치를 앓고 있는지 짐작하게 하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2005년 말 집권 이후 노동자, 노인의 천국을 만들겠다는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민간기업 국유화에 나섰지만 만성적인 재정난 탓에 복지정책에 제동이 걸렸다.

최근 다녀온 볼리비아 곳곳에서 포퓰리즘의 폐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50여 명의 현지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는 한 한국인 사업가는 몇 달 전 미혼 여직원이 병원의 임신 진단서를 떼어 별도 수당을 요구해 깜짝 놀랐다. 이 나라에서는 여성 근로자가 아이를 가지면 3개월째부터 최저임금 수준의 수당을 추가로 줘야 한다. 그래서 이 사업가는 요즘 웬만하면 가임기(可姙期) 여성을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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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업을 하는 또 다른 교포는 상습적으로 지각하는 종업원을 야단친 다음 날 볼리비아 노동부의 경고를 받았다. 종업원의 진정을 받은 노동부가 소명의 기회도 주지 않고 근로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소송을 당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이 교포는 이 나라를 떠날 기회를 엿보고 있다.

안데스 원주민으로, 코카인의 원료인 코카나무 재배 노동조합 출신인 모랄레스 대통령은 인디오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남미 최초의 인디언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그는 2006년 1월 22일 공식 취임하기 전날 티티카카 호수 주변의 한 마을에서 수십만 명의 원주민이 모인 가운데 가진 별도의 전통 취임식에서 “(전 정권이) 천연자원을 민영화하고 경매로 팔아넘기는 바람에 복지축소 등 양산된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외국인의 손에 넘어간 부(富)의 재탈환을 통해 가난과 싸우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전가의 보도’처럼 국유화의 칼을 휘둘렀고 실업수당, 노인수당을 강화했다.

정경준 산업부 차장
그러나 2009년 재선 때 64%까지 치솟았던 그에 대한 지지율은 최근 30%대로 급락했다. 약속했던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한 원주민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수당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시위대로 교통이 마비돼도 공권력은 아무런 통제를 못한다. 더는 국유화할 만한 대상도 마땅치 않고, ‘기업 하기 나쁜 나라’로 소문 나 외국인 투자도 조심스럽다.

내년 국회의원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온갖 포퓰리즘 정책을 준비하고 있을 우리 정치인들의 모습이 모랄레스 대통령의 얼굴에 겹쳐 보였다.

정경준 산업부 차장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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