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근의 멘탈 투자 강의]‘대표성 오류’의 함정… 과거 수익률 맹신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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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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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률 상위 25% 34개 펀드
11개만 이듬해 상위권 유지
이전 성과-향후 투자성 별개
과거와 똑같은 미래는 없어

지난달 말 마침내 두바이에서 우려하던 소식(두바이월드의 채무상환유예)이 날아왔다. 투자자들은 ‘이 사태가 혹시 또 다른 파장의 시작이 아닌가’ 하며 불안해했다. 다행히 세계 증시는 단기적으로 급락했다가 빠르게 회복했다. 하지만 과거의 예를 봐도 이런 ‘메이저급’ 악재는 곧잘 시장에 장기적인 여파를 동반했다. 1997년 태국, 인도네시아의 외환위기는 아시아 전반의 금융위기를 몰고 왔다.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인한 부동산 시장 폭락도 영국, 스페인 등 여타 유럽국가로 이어졌다. 사건들이 꼭 연결돼 있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거꾸로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부인하기도 어렵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일일이 다 이해하고 속속들이 인지하며 살 수는 없다. 인간이 그렇게 완벽한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대략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간략히 이해하고 판단하려는 속성을 갖는다.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을 하던 도중 생긴 일이다. 어느 날 대왕은 소아시아의 한 신전 기둥에 단단히 묶인 짐수레를 봤다. 그리고 그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지배한다는 전설을 듣게 된다. 진작부터 많은 사람이 이 매듭을 풀려 했지만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어 모두 실패한 뒤였다. 알렉산더는 이 매듭을 어떻게 풀었을까. 그는 지체 없이 칼을 휘둘러 그 매듭을 끊어 버리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보통 ‘과감한 결단으로 난제를 푼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반대로 ‘어떤 현상을 보고 너무 간단하게 결론을 내린다’는 부정적 의미도 동시에 갖고 있다. 예를 들어 키가 큰 흑인은 다 농구를 잘할 것으로 짐작하고 한국 남성이 외국에 나가면 모두 태권도 유단자처럼 인식되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대표성 오류(representative bias) 때문이다.

언젠가 필자는 일본의 한 공항에서 어떤 백인 남성에게 영어로 길을 물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노 스피크 잉글리시(No Speak English)!”라고 퉁명스럽게 답하고는 가던 길을 가버렸다. 필자는 백인인 그가 설마 영어를 못할 것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것도 바로 대표성 오류에 걸려든 사례다.

이 오류는 통계에 대한 몰이해에서 기인하는 수가 많다. 선거 때 소수의 표본으로 결과를 빨리 알아내고자 출구조사를 한다. 이 조사의 성패는 잘 구성된 완벽한 표본에 달려 있다. 하지만 만약 대통령선거 같은 전국단위 선거에서 서울 강남구 등 특정 지역에서만 출구조사를 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 대표성 오류는 이처럼 표본이 전체를 반영하지 못하든가 그 규모가 충분치 않을 때 주로 발생한다.

데이트레이딩을 하는 투자자들 중에도 차트를 맹신하는 사람이 꽤 많다. 비록 차트가 주가의 과거 움직임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미래의 주가 움직임을 알려준다고 보긴 힘들다. 차트로만 주식을 판단하기엔 거기엔 너무나도 많은 정보가 빠져 있다. 이렇게 차트를 통해 미래를 예단하는 것 역시 대표성 오류의 일종일 뿐이다.

펀드투자자들이 새로 투자대상을 물색할 때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투자자들은 주로 최근 성과가 좋은 펀드를 찾는다. 과거 수익률이 좋았던 펀드들은 이미 검증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평가기간을 아주 길게 놓고 봤을 때는 수익률이나 변동성 차원에서 검증된 펀드가 많다. 하지만 짧은 기간, 예를 들어 지난 1년간의 수익률이 미래의 수익을 보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 지난해 한 컨설팅회사가 국내 주식형 펀드 130여 개를 조사한 결과 1차 연도 수익률이 상위 25% 안에 든 34개 펀드 중 이듬해에도 수익률 상위 25%를 유지한 펀드는 11개에 불과했다. 또 상위권에 있다가 하위 25%로 추락한 펀드도 마찬가지로 11개나 됐다. 과거 수익률과 미래 투자성과 사이에 연관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두바이 사태의 충격은 끝난 듯하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이 사태가 큰 파장을 일으킬지, 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과거의 유사한 상황에 의존해 예상 시나리오를 그린 뒤 이를 맹신하는 것은 투자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과거와 똑같은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송동근 대신증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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