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근의 멘탈 투자 강의]투자 손실로 분노 치밀땐, 한템포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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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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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면 내탓 잘못되면 남탓’… 손해나면 모든것이 분노 대상
홧김에 더 위험한 투자 말고 냉철한 시각 되찾는게 중요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좋아. 어디까지 가나 보자.”,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지?”

주식을 매입하자마자 손해가 나니까 이렇게 혼잣말을 하며 당한 것을 되돌려 주겠다고 다짐하는 투자자를 최근 본 적이 있다. 이렇게 어떤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이나 개별 주식을 실제 눈앞에서 거래를 하는 상대방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시장이 좋아 수익을 많이 남기면 시장을 사랑하고 그 반대라면 경멸한다. 또 시황이 좋아지면 주식시장은 내 편이라 생각하고 갑자기 나빠지면 그것에 속았다고 생각한다. 이쯤 되면 주식시장에 대한 의인화의 함정(personification trap)에 깊이 빠져든 것이다.

의인화의 함정에 걸린 투자자는 투자를 하다가 손해를 보거나 주식을 팔고난 뒤 주가가 급등하면 자책을 하거나 스스로에게 화를 낸다. 그리고 이내 그 분노의 대상은 자연히 나 자신이 아닌 외부로 옮겨가게 된다. 그 대상은 상장기업, 외국인투자가, 기관투자가, 큰손, 증권회사 또는 그 담당직원, 애널리스트, 언론, 그리고 증권 유관기관이나 관료 혹은 정치인까지 실로 다양하다. 자기를 제외한 모든 것이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실제 다른 사람들의 책임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다시 수익이 나기만 하면 그들에 대한 분노를 쉽게 삭인다. 결국 이런 투자자들의 감정 이면에는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남 탓’이라는 식의 귀인편견(attribution bias)이 도사리고 있다.

주식시장에는 주가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도 있다. 일종의 음모론으로 우리가 매일 보는 주가의 움직임은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는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부류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투자자는 투자할 기업에 대해 알아보거나 경제를 연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대신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를 파악하든가 만일 파악이 되면 그 손의 움직임에만 신경을 쓰면 되기 때문이다. 있지도 않은 실체를 좇아서 말이다.

그러나 투자대상인 주식시장은 많은 사람들의 참여에 의해서 작동하는 것이고 별개의 주체일 뿐이다. 시장은 나의 생각은 전혀 개의치 않고,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일 뿐이다. 때론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가격대까지 오르기도 하고 절대로 내려갈 것 같지 않던 가격대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시장은 투자자들의 사정을 절대 봐주지 않고 간혹 깜짝쇼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주식시장을 특정 주체로 의인화하면 투자자가 냉정을 유지할 수가 없다. 투자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그것에 화를 내고 그 대상에게 분풀이라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화가 날 때 생각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인간의 심리다. 하지만 격한 분노의 상태에서 내리는 판단이 과연 올바를 수 있을까. 그런 즉각적인 반응은 응당 신중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이 복수극은 마치 상대가 없이 허공에 주먹을 마구 휘두르는 ‘섀도복싱’과 비슷하다. 나는 펀치를 날리지만 상대는 절대로 맞지 않는다. 실체가 없으니 맞을 수가 없다. 나의 수많은 펀치는 허공을 가르고 결국 나는 지쳐 버리고 만다. 실제 권투에서 섀도복싱은 선수를 육체적으로 지치게 하는 데 그치지만 투자자가 분노의 상태에서 마구 내는 주문은 심각한 금전적 손실을 남긴다. 또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면 왜 내가 그런 판단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상황이 일어난다.

이런 오류는 주로 투자 경험이 많지 않은 초보투자자들이 범한다. 분노를 느낄 때 저지르기 쉬운 판단의 오류는 여러 가지다. 정확한 시장에 대한 분석 없이 더 위험을 거는 투자를 한다든가, 즉흥적으로 매매를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 때 이를 없애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투자를 한 템포 쉬면서 시장에서 조금 떨어져 관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투자에 대해 냉철한 시각을 되찾으려 노력하는 것이 좋다. 투자를 처음 할 때 자신이 투자의 근거로 삼은 게 무엇이었는지를 짚어 보고 아직도 그 상황이 유효한가를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인생이 그렇듯 투자도 단기적으로는 운에 좌우된다. 하지만 한 번은 운이 나쁠 수 있더라도 연속적으로 운이 나쁘기는 쉽지 않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투자를 할 땐 평정심을 유지하는 배짱도 한번 키워보자.

송동근 대신증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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