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지상현 교수의 디자인 읽기]당신의 회사는 무슨색?
더보기

[지상현 교수의 디자인 읽기]당신의 회사는 무슨색?

입력 2009-09-26 02:56수정 2009-10-10 16:17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통일된 이미지 주는 ‘고유색’…

기업들은 저마다 고유색을 갖고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짙은 청색이고 동아일보는 청록색이다. 고유색은 기업의 통일된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에게 고민을 안겨주기도 한다. 고유색과 잘 어울리지 않는 색채를 써야 할 경우라든가 경쟁사와 색채가 비슷해 차별화하기 어려울 때 등이 그러하다. 그래서인지 고유색은 광고나 인쇄물 귀퉁이에 조금 쓰이는 정도이고 유명무실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고유색을 브랜드 이미지 형성에 적절히 이용하는 기업도 있다. 예컨대 유명한 전동공구 메이커 보쉬는 제품에까지 고유색인 녹색을 적용한다. 보쉬보다 더 적극적으로 고유색을 활용하는 기업이 독일의 청소기 제조업체 카처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럽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청소기 업체인데, 1935년 발명가 알프레트 카처가 세운 기업이다. 카처의 고유색은 밝은 노랑이다.

이 회사는 사옥의 내외장은 물론이고 유니폼, 차량, 간판이 모두 노란색이고 100여 종에 이르는 제품도 전부 노란색과 검은색의 조합으로 되어 있다.

노란색 덕분에 카처는 강렬하면서도 통일된 이미지를 준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 같은 세계문화유산을 청소하는 등 기업의 홍보활동도 활발하고 독창적이지만 유럽에서 노란색 하면 카처를 떠올릴 정도로 브랜드 이미지 형성에 고유색이 차지하는 몫은 컸다.

그러나 사실 고유색을 제품에까지 적용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다. 우선 한 제품의 다양한 배리에이션을 내놓기 어렵게 된다. 그뿐 아니라 노란색을 싫어하는 고객들에게는 외면당하기 쉽다. 통일된 이미지를 얻는 대신 목표시장이 축소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러나 카처는 오랜 역사와 정직성을 바탕으로 유럽시장에서 쌓아올린 실력 있는 기업이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있었다. 그래서 싫어하는 소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노란색을 고집하고 있다. 청소기기가 가정이나 산업현장에 설치해 놓고 사용하는 제품이 아니라는 것도 이런 색채계획이 가능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카처의 예에서 한 가지 간과하기 쉬운 것은 노란색과 검은색의 조합이 갖는 심리적 힘이다. 노란색은 시인성이 매우 높아 어린이들의 우비나 구난장비 등에 사용된다. 여기에 검은색이 더해지면 시인성은 더 높아진다. 여기에는 생태학적인 이유가 있다. 노란색과 검은색의 무늬가 있는 동물은 대개 강한 독을 갖고 있어 이 무늬를 본 동물들은 눈이 번쩍 뜨이고 경계를 하게 돼 있다. 도로안전 표지판이나 스쿨버스에 이 배색이 많이 쓰이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노란색은 농도가 진하다는 암시도 준다. 그 때문인지 강한 세척제의 용기는 노란색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같은 성분의 세제를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용기에 각기 넣어 주부들에게 쓰게 한 뒤 세척력을 물어보면 파란색은 좀 약한 듯하고 노란색은 너무 강해 실크와 같은 제품이 상할 것 같다고 답하는 경향이 학계에 보고된 적도 있다.

생태학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노랑과 같은 장파장의 색채를 밝기대비가 크게 배색하면 시인성이 높아진다. 붉은색도 자연에서 경고의 색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노랑보다 어두워 검정과 배색해도 밝기대비가 크지 않고 그만큼 경고의 정도도 약하다.

노랑과 검정 조합이 갖는 또 다른 심리적 특성이 있다. 2배색의 경우 밝기대비가 약간 크면 경쾌한 느낌을, 노랑과 검정처럼 매우 크면 딱딱하고 기계적이지만 강한 느낌을 준다. 기계식 청소기처럼 출력이 중요한 제품에서 브랜드 이미지나 제품 이미지에 강한 힘을 연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반면 강한 밝기대비 배색의 단점인 기계적이고 딱딱한 느낌은 노란색이 갖고 있는 따듯함, 여린 느낌이 상쇄해 소비자들이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이미지를 준다.

임의적 약속으로 결정된 사색(社色) 하나가 이렇게 강한 브랜딩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색채에서 보조 그래픽 요소에 이르기까지 소홀함 없이 신중하게 선택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디자인 자체의 좋고 나쁨이나 상징적 의미만 따질 것이 아니라 그 디자인이 사용될 다양한 상황을 빠짐없이 확인하고 그 맥락에서 디자인을 판단하는 거시적 관점이 필요하다. 아울러 모든 디자인 요소가 나름의 브랜딩 효과를 가질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지상현 한성대 교수·미디어디자인콘텐츠학부psyjee@hansung.ac.kr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