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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장을 움직이는가]에넥스 디자인연구소 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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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장을 움직이는가]에넥스 디자인연구소 팀원들

동아일보입력 2009-12-19 03:00수정 2009-12-19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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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과 놀이의 공간, 주방에 예술을 담다

온돌부엌 등 아이디어 짜내… ‘M-키친’ ‘S-에디션’으로 실현
에넥스 디자인연구소는 ‘M-키친’ ‘S-에디션’으로 올해 지식경제부장관상과 정약용상 등 가구 디자인상을 휩쓸었다. 이용한 연구소장과 신종헌 선임연구원, 최경애 책임연구원(왼쪽부터)이 ‘M-키친’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제공 에넥스

“무슨 부엌가구가 이렇게 생겨가지고…. 설치할 때마다 번번이 문제가 생기네.”

에넥스 디자인연구소의 신종헌 선임연구원(32)은 입사 초기 매장 내 쇼룸에 자신의 디자인 제품을 설치하던 한 시공기사가 이렇게 투덜거리는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그는 기분이 상했지만 시공기사에게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를 물었다. 그와 한참 논쟁을 벌이는 동안 보완해야 할 점을 찾아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현장에서 신 연구원은 시공기사를 다시 만났다. 시공기사는 “제품이 보완된 후 설치가 너무 편해졌고 마감 품질도 높일 수 있게 됐다”며 고맙다고 했다.

신 연구원은 “신입사원 시절 이런 지적을 들으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옳은 지적이었다”며 “이제는 현장 얘기에 귀 기울이는 버릇이 생겼고 사소한 부분까지 배려하는 디자인이야말로 진정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에넥스는 한샘과 함께 국내 부엌가구의 양대 축을 이룬다. 에넥스 디자인연구소는 1971년 회사 설립 당시 제품개발팀으로 출발해 1993년 정부 공인 기업부설 연구소로 확대 개편됐다. 현재 이용한 소장(47)을 포함해 17명의 디자이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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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장은 신 연구원의 이런 경험을 소중히 여긴다. 이 소장에게 현장을 떠난 부엌가구 디자이너는 ‘반쪽’이다. 부엌은 단순히 가구가 아니라 주택 설비 중 일부분이기 때문에 주택의 구조를 모르면 일을 할 수 없단다.

이 소장 자신도 현장부터 뛴 경험이 있다. 1980년대 후반 당시로서는 최고의 설비를 갖춘 서울 송파구 문정동 올림픽훼미리아파트 부엌 설비 시공현장에서 시공기사들과 2년여간 함께 일을 했다. 아파트 벽면 내장재가 다른 아파트들과는 달라서 찬장을 걸어놓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독일에서 ‘네일 건(못 박는 총)’을 직접 사오는 등 ‘디자이너가 이런 일까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현장 밀착형으로 디자인 감각을 다져갔다는 것.

이 소장의 디자인 철학은 1970년대의 ‘오리표 싱크’를 지금의 ‘부엌가구 문화를 선도하는 에넥스’로 키워낸 원동력이 됐다. 그는 2006년 창업주 박유재 회장의 차남 진호 씨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기존 디자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부엌 개발을 주문하자 ‘콘셉트 부엌’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이후 한국인의 좌식문화를 적용한 온돌부엌, 벽이 필요 없고 360도 어느 방향에서도 사용 가능한 미래형 부엌, 엔터테인먼트 부엌 등 다양한 아이디어의 근간이 됐다. 올해 지식경제부의 우수산업디자인(GOOD DESIGN) 부엌가구 부문에서 지경부장관상을 받은 ‘M-키친’, 특허청의 디자인 부문 최고상 ‘정약용상’을 수상한 ‘S-에디션’은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최경애 책임연구원(39)이 만든 ‘M-키친’은 가구 모서리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마감해 안전성을 높이고 직선과 곡선의 아름다운 조화를 시도했다. 예전에 쓸모없던 모서리 부분을 수납장으로 이용하면서 공간을 살려내고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적용하여 은은하고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M-키친’이라는 이름은 디자인의 메카인 밀라노를 뛰어넘겠다는 의미로 지어졌다.

‘S-에디션’은 이동식 ‘아일랜드(보조 주방)’ 개념으로 만든 가구인데, 주방가구라기보다는 하나의 작품처럼 보인다. 앉아 있는 여성의 곡선을 본떠 지지대를 만들고 상판을 공중에 띄웠다. 벽면에는 작은 TV까지 설치돼 있다. ‘S-에디션’을 만든 신 연구원은 “곡선의 아름다움을 살리고 아이들이 올라갈 때도 넘어지지 않을 정도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며 “휴식과 놀이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주방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차세대 부엌의 이미지를 ‘가족들이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그린다. 밥 짓고 설거지하고 밥 먹는 기존 주방의 개념이 아니라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다. 또 허리가 굽어진 할머니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부엌의 기본 기능과 즐거움, 편리함 등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이 소장은 ‘UK-에디션’(이름 미정)의 개념을 살짝 소개했다. ‘UK-에디션’은 내년 출시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차세대 주방이다. 동선을 최대한 줄였고 찬장은 버튼을 누르면 아래로 내려와 키 작은 사람도 편하게 쓸 수 있다. 수납 캐비닛은 앉아서 쓸 수 있게 낮은 곳에 달려 있다. 주방 옆에는 보조 주방 겸 식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아일랜드가 있고 온돌 바닥을 연상시키는 긴 벤치 형태의 의자가 있다. 한국의 좌식문화를 입힌 주방이다. 이 소장은 “혼자 사는 어머니가 부엌을 쓰는 모습을 보며 구상한 디자인”이라고 소개했다.

우리나라에 입식 부엌을 처음 들여온 에넥스는 부뚜막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밥 짓고 설거지하던 주부들의 허리를 일으켜 세운 주역이었다. 그 중심에는 문화 창조자로서의 디자이너가 있다. 이 소장이 이끄는 에넥스 디자인 연구소가 우리나라 부엌 문화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된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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