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경제뉴스] 정책 입안자들은 세제개편때 어떤 이론을 참고하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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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세제 개편안에 대해 이례적으로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세제 개편안을 발표한 뒤 논란이 커지자 나흘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일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서민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인데 서민과 중산층의 가벼운 지갑을 다시 얇아지게 하는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서민을 위한 경제정책 방향과 어긋난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Q. 최근 세제 개편안이 발표되며 증세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세 부담 기준선을 상향하는 등 대책을 찾고 있습니다. 정책을 만드는 건 참 힘든 작업이죠? 그래서 최근에는 정책에 대한 여론을 예견하고 정책이 합리적으로 선택되었는지 등을 판단하기 위해 행동경제학을 고려하기도 합니다. 행동경제학이 거론될 때마다 등장하는 ‘프로스펙트 이론’이 궁금해요.
○ 프로스펙트 이론이란?

장우애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장우애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전통 경제학에서 가정하고 있는 합리적인 인간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과 손실이 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 자신에게 돌아오는 순이익이 가장 높은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우리는 이렇게 합리적으로만 행동할까요?

사람들은 질병에 걸릴 확률만 높이는 술과 담배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또 계획하지도 않은 충동구매로 후회하기도 합니다.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이런 비합리적인 행동들을 분석하기 위해 탄생한 학문이 바로 ‘행동경제학’입니다.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은 사람들이 ‘변화’에 반응한다는 사실에 착안했습니다. 이 이론의 첫 번째 특성은 ‘준거점 의존성’입니다. 우리가 변화에 반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점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준거점’이라고 부릅니다. 준거점 의존성은 우리가 어떤 가치를 평가할 때 준거점으로부터 나타나는 변화로 평가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올해 3000만 원의 연봉을 받기로 한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작년보다 500만 원이 인상된 데 반해, 다른 한 사람은 200만 원이 깎여 3000만 원을 받기로 했습니다. 둘 다 연봉이 3000만 원이라는 절대적인 수준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작년 연봉을 준거점이라고 했을 때, 연봉이 오른 사람은 행복하겠지만 삭감된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겠죠?

두 번째 특성은 ‘민감도 체감성’입니다. 이익이든 손실이든 처음 작은 변화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그 변화 폭이 커질수록 체감되는 기쁨이나 슬픔은 둔화된다는 의미입니다. 주식투자자의 경우 투자 손실을 입으면 처음 100만 원은 매우 크게 느끼지만 손실이 100만 원 더 늘어나면 처음만큼 가슴 아프지는 않을 것입니다. 같은 100만 원이라도 체감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죠.

‘손실 회피성’도 있습니다. 이익보다는 손실에 더 민감하다는 것인데요, 1만 원을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 잃었을 때의 슬픔이 더 크다는 것이죠. 경우에 따라서 눈앞의 이익 앞에서는 지극히 신중해지는 데 반해 손실 앞에서는 오히려 더 과감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민감도 체감성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이해가 됩니다. 민감도 체감성 때문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한 번에 제공되는 이익보다 여러 번에 걸쳐 발생하는 이익을 더 크게 느낀다고 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큰 이득을 얻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적은 이익이라도 확실하게 실현하려는 경향이 생기고, 이 때문에 신중하게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손실은 어떨까요? 이와는 정확히 반대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번의 적은 손실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큰 손실은 둔감해져 오히려 과감한 행동을 취하기도 합니다.

○ 적은 손실에 민감한 국민에게 정책을 설득하려면

정책 입안자들은 어떤 정책을 만들 때 국민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국민들이 어떤 의사결정 기준에 따라 정책을 찬성하고 반대하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정책 입안자들은 사람들의 심리적 반응을 반영하고 있는 행동경제학의 이론들을 고려하기도 합니다.

보통 연금이나 복지를 위한 증세의 경우 고소득 납세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납세자가 증세된 금액보다 복지 혜택으로 받을 수 있는 이익이 훨씬 높음에도 정책에 반대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전통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증세가 있더라도 복지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많다면 이와 반대되는 결정을 하겠지만, 프로스펙트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익보다는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프로스펙트 이론은 정책 입안자에게 작은 팁을 주기도 합니다.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복수의 손실을 한 번의 큰 손실보다 더 크게 체감하기 때문에 벌금이나 세금 부과는 일시에 하는 편이 국민의 반감을 덜 삽니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50만 원씩 두 번에 나누어 세금이 부과되는 것보다 100만 원이 일시에 부과되는 게 기분이 덜 나쁠 테니까 말이죠. 하지만 이런 이론들은 어디까지나 정책 결정에 보조적인 자료일 뿐입니다. 정책 입안자들은 여론만 너무 의식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장우애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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