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경제뉴스]금융실명제 도입후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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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 20주년… 전문가 설문조사 동아일보 2013년 8월 5일자 B1면
금융실명제 20주년… 전문가 설문조사 동아일보 2013년 8월 5일자 B1면
《 1993년 8월 12일 오후 7시 45분. 임시 국무회의를 마친 김영삼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금융실명제 실시를 전격 발표했다. ‘진정한 경제정의 구현’이라는 목표를 내세우며 시작한 금융실명제가 실시 20년을 맞는다. 은행에 갈 때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 될 만큼 실명제는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차명거래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실명제 본래 취지인 지하경제 양성화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

Q.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지 20주년을 맞아 제도 보완에 대한 논의가 뜨겁습니다. 금융실명제가 어떻게 도입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 생활의 어떤 면이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금융실명제가 어떻게 발전되어 나갈지 알고 싶습니다.

○ 세 번의 시도

금융시장 투명성과 관련하여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을 지낸 루이스 브랜다이스는 “햇빛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방부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늦은 밤 으슥한 골목길은 우범지대가 되기 십상이고 그런 곳에 가로등을 달면 범죄가 줄어들게 되지요. 어두운 곳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들에 햇빛을 비추어 부정부패와 부조리를 줄이고자 시행된 제도가 금융실명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융실명제를 시행하기 위한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1982년 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을 계기로 첫 번째 시도가 있었지만, 비실명거래로 이익을 얻는 집단의 반발로 사실상 무기한 유보되었습니다. 1988년 노태우 정부의 시도 역시 시기상조론과 여러 정치적 요인에 의해 좌절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재정경제 명령’으로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되었습니다.

○ 다른 나라의 금융실명제


금융실명제 실시 첫날인 1993년 8월 13일 고객들이 은행 창구 앞에서 실명을 확인하기 위해 통장과 함께 주민등록증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금융실명제는 우리 삶 곳곳을 바꿔 놨다. 동아일보DB
금융실명제 실시 첫날인 1993년 8월 13일 고객들이 은행 창구 앞에서 실명을 확인하기 위해 통장과 함께 주민등록증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금융실명제는 우리 삶 곳곳을 바꿔 놨다. 동아일보DB
우리나라의 예에서 보듯이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는 것은 음성적 거래를 통해 이익을 얻는 집단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일본과 대만은 아직까지도 금융실명제를 실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1984년 금융실명제의 일종인 그린카드제도를 도입했지만 정치권과 기득권의 반발로 1985년 폐지했고, 현재는 행정지도를 통해 실명거래 관행의 정착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반면 유럽과 미국은 비실명거래로 인한 불이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실명거래 관행이 정착되어 있어서 굳이 법률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최근에는 자금세탁 방지 측면에서 금융실명제를 다루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36개 국가와 지역조직이 가입되어 있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서는 금융회사들에 고객 확인 의무를 부여할 것을 각국에 권고하고 있습니다.

○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금융실명제 실시 당시 기사들에서는 예명을 쓰던 연예인이 금융실명제 때문에 본명이 드러나서 난감해지거나, 집주인이 전세금을 모두 현금으로 받으면서 수천만 원을 일일이 세느라 힘들었던 사연들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기 이전에도 대부분의 일반 국민은 이미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특별히 큰 변화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금융실명제 실시 1년 후에 한 삼성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뒷돈 거래가 감소함으로써 소비자들의 현금 보유 성향이 다소 높아지고 내구재, 외식, 여행 등에 대한 지출이 다소 늘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명계좌에 입금해 뒷돈 거래가 드러나느니 차라리 소비지출에 써 버리려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채 같은 사금융 시장이 위축되면서 서민들과 중소기업이 은행과 같은 공식적인 경로를 통한 금융거래를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다양한 금융상품이 개발됨에 따라 우리나라 금융이 선진화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한편 금융실명제로 인해 금융계좌를 개설할 때 번거로운 실명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늘어났습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기 전에 어린 시절을 보낸 분들은 혼자 돼지저금통을 들고 동네 은행에 저금하러 간 기억들이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부모님이 따라가지도, 복잡한 서류가 없어도 쉽게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미성년자가 혼자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동행하거나 실명을 증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서류를 지참해야 합니다. 엄격한 실명확인 절차로 인해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나 유학생들이 국내에 계좌를 만들기가 더 번거로워진 측면도 있습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경제 전체적으로는 금융실명제가 종합소득과세를 통해 공평한 과세의 기틀을 마련하고, 지하경제 양성화, 정치자금의 투명화, 공직자 재산 공개를 가능하게 하는 등 다양한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 앞으로 금융실명제는 어떻게 바뀔까요?

강맹수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강맹수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최근 금융실명제를 둘러싸고 차명계좌를 규제하는 한편 지나치게 엄격한 규정들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차명계좌는 실명확인을 받았지만 실제 소유주는 다른 사람인 계좌를 말합니다. 차명계좌는 금융실명제를 회피하여 비자금을 형성하고 불법자금을 세탁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또 엄격한 규정들로 인해 온라인 금융을 도입하거나 세계화 시대에 외국과 다양한 금융거래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시행 20주년을 맞은 금융실명제가 차명계좌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고, 새로운 금융 환경에 부합하도록 보완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강맹수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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