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둥둥 떠다니게 하라[Monday DBR]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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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변혁 운동은 선언문으로 시작됐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반성과 변혁은 1848년 ‘공산당 선언’으로 시작됐고, 1919년의 3·1만세운동은 ‘기미독립선언문’으로 시작됐다. 최근에 기업계에서 유행하는 경영 패러다임의 변혁운동인 애자일(Agile)도 2001년 ‘애자일 선언문’으로 시작됐다.

모든 선언문은 지향점을 갖고 있다. ‘민첩함’이라는 뜻을 가진 애자일 선언문이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는 소통이다. 칸반(Kanban) 보드, 포스트잇, 스크럼, 스프린트 등으로 대표되는 애자일의 전략적 도구들은 원활한 소통이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우선 칸반 보드와 포스트잇라는 도구를 통해 직원들은 간단명료하게 요약된 동료의 메시지를 읽는다. 업무 지시나 전달사항을 받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하는 것이다. 스크럼이라는 이름의 팀을 짜는 이유도 서로 소통을 더 잘하기 위해서다. 스크럼은 원래 럭비 용어다. 어깨에 어깨를 맞대고 공통된 목표를 응시하다 보면 상대의 숨소리, 생각에 효율적으로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먼저, 조직 내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경계를 허물어야 민첩한 소통, 애자일 조직이 가능해진다. 경계에는 눈에 보이는 유형적 경계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적 경계도 있다. 이 무형적 경계를 허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무실 내 칸막이를 치운다고 경계가 저절로 허물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중요한 건 마음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직급 간 경계, 팀 간 경계가 없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 돼서는 안 된다. 긴급한 의사결정이나 피드백이 필요할 경우 상하좌우 어느 쪽으로든지 자유롭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엊그제 입사한 주제에 감히” “대리 따위가 부장한테 대들겠다는 거야, 뭐야” 하면서 근무 연수, 직급 등으로 경계를 지으면 애자일이 성공할 수 없다.

문서 작업보다는 현장을 중시하는 마인드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두툼한 보고서로 능력을 측정하던 시대는 지났다. 잘나가는 글로벌 기업들 가운데는 연중 계획, 연차보고서와 같은 서류 자체를 없애는 곳이 늘고 있다.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애자일 조직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물음표 던지기’다. 쉽게 말해, 질문이 자유롭게 둥둥 떠다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1909∼2005)는 “과거의 리더는 지시하는 리더였고 미래의 리더는 질문하는 리더”라고 말했다. 애자일 조직의 핵심은 소통이고, 소통을 위해 특히 중요한 것은 바로 자유롭게 질문을 허(許)하는 것이다.

스탠퍼드대에 다니던 래리 페이지는 어느 날 밤 기숙사에서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난다. 그 순간 질문 하나가 그의 뇌리를 스친다. ‘만약 내가 모든 인터넷 웹을 다운로드하고 이것들을 잘 링크할 수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페이지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알고리즘)을 메모지에 써 내려갔다. 그리고 세르게이 브린을 만나 자신의 구상을 밝힌 후 공동으로 창업에 나선다. 이렇게 탄생한 기업이 구글이다.

“말이 많아.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하고 질문을 봉쇄하면 애자일 경영이 성공할 수 없다. 기업 환경이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계획을 실천하는 것보다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물음표는 변화에 대한 모멘텀을 제공한다. 질문이 있어야 변화가 촉발된다. 물음표가 막히면 조직 내 소통이 막히게 되고 소통이 막힌 조직은 정체와 퇴보를 거듭하다 결국 소멸에 이르게 된다.

물음표를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을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 한마디로 압축하면 ‘Q-매니지먼트(Question Management·질문 경영)’로 표현할 수 있다. 미심쩍은 게 있으면 반드시 물음표를 던져야 하며(Query), 물음표를 던진 후에는 그것을 묵혀두지 말고 즉각(Quick) 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 답을 찾는 과정에서는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말고 기발한(Quaint) 아이디어를 동원해야 한다. 그리고 답을 찾았으면 과거와는 깨끗이 단절(Quit)하고 미래적 가치를 찾아 나서야 한다. 명마(名馬)는 자신이 밟고 지나온 풀을 먹지 않는다.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94호에 실린 ‘애자일 조직 위해선 질문을 許하라’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애자일#물음표 던지기#질문하는 리더#질문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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