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재테크]라이프 플래너 실종 사건

  • 입력 2007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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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든 의문, 내 보장자산은 얼마일까.

종신보험에 가입한 기억은 나는데….

앗,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긴 보험 설계사.

어디로 행불된 걸까요. 알아보니 아뿔사!

담당 설계사가 바뀌어 난 이미 헌 고객으로 잊혀지고 있었다니…. 분했습니다.

당신의 금융주권, 제대로 행사하고 계신가요?》

반짝반짝 빛나는 서울 한강변의 밤 풍경은 매혹적입니다. 부드러운 음악을 틀어 놓고 홀로 드라이브하면 로맨틱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합니다. 그때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려옵니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 조수석 쪽을 더듬습니다. 차가 강변의 고가도로 위로 올라선 순간이었습니다.

아차, 몸의 중심이 오른쪽으로 쏠리면서 핸들이 크게 휘청합니다. 자칫하다간 강물 속으로 풍덩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자, 심야 운전 중 의문의 사망’과 같은 무시무시한 가상의 신문 헤드라인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문득 2003년 가입해 둔 종신보험이 생각나면서 담당 보험설계사(라이프 플래너)와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제 담당 라이프 플래너는 대관절 어디로 갔을까요. 바로 다음 날 동이 트자마자 기자는 언젠가부터 ‘실종해 버린’ 라이프 플래너를 찾아 나섰습니다.

○잃어버린 보험설계사를 찾아서

종신보험에 가입했던 때를 떠올립니다.

사무실 옆자리 선배는 “종신보험은 하루라도 빨리 드는 게 낫다”고 충고했습니다.

이 세상과 작별 인사할 때를 상상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은 제 영정 앞에서 슬퍼하겠죠.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돼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생겨났습니다.

마침 선배 친구의 여동생이 푸르덴셜생명의 라이프 플래너였습니다. 그녀는 꼼꼼한 상담으로 월 11만 원을 30년 동안 납입하도록 상품을 구성해 줬습니다. ‘이 몸이 다할 때까지’란 종신(終身)의 비장한 어감 때문이었을까요. 왠지 뿌듯했습니다. 담당 라이프 플래너는 계절이 바뀌거나 명절이 되면 꼬박꼬박 안부 전화도 걸어왔습니다. 영문도 모르게 그녀의 소식이 중단된 건 2005년이었습니다.

“담당 직원이 회사를 관둬서 오늘부터 제가 담당합니다.”

새 라이프 플래너는 기자가 정신없이 바쁜 시간에 불쑥 두어 번 전화해 시간 약속을 잡자고 하더니 여의치 않자 이날로 연락을 뚝 끊어 버렸습니다.

○잊고 살았던 보장자산을 찾다

기자는 매월 또박또박 보험료를 내면서도 종신보험으로 사망 시 받게 될 금액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 삼성생명의 광고 카피인 ‘당신의 보장자산은 얼마입니까’에 대답을 못하는 상황입니다.

‘라이프 플래너 실종사건’은 잊고 살았던 보장자산 찾기로 ‘수사’의 폭이 확대됐습니다.

새 라이프 플래너의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르기 때문에 일단 콜센터로 전화했죠. 콜센터 직원은 기자의 신원을 확인한 후 그동안 연락이 두절됐던 담당 라이프 플래너의 연락처를 알려줬습니다. 제 보장자산이 1억 원이란 것, 수술과 입원할 때 3000만 원을 받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라이프 플래너의 행방을 모르는 동안 수술도 했는데 보험 혜택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라이프 플래너에게 전화를 걸면서 격한 감정마저 들었습니다.

보험증권을 어디에 두었는지 가물가물한 저의 금융 불감증도 문제지만, 적어도 ‘인생을 계획해 주는’ 프로라면 고객이 아무리 바빠도 어떻게든 만났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새 라이프 플래너는 조곤조곤 따지고 드는 기자의 불편한 마음을 알아챘는지 이틀 후 찾아왔습니다. 하이힐 소리를 또박또박 내며 나타난 그녀, 첫 만남부터 기자를 아연실색하게 합니다.

“여기 이 서류에 서명해 주세요. 그동안 고객님을 만나지 못해 제 고객으로 완전히 이전이 안 됐거든요.”

저는 무려 2년 가까이 담당 보험 설계사가 없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던 겁니다.

○똑똑하게 찾아야 하는 ‘금융 주권’

보험설계사가 직장을 관두면 보험회사는 다른 설계사를 임의로 지정해 기존 고객을 맡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험설계사들은 자신이 가입시킨 고객에 대해 가입 첫해에 대부분의 수당을 챙기기 때문에 가입 후 몇 년이 지난 ‘헌 고객’, 특히 남이 관리하던 고객에게는 무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고객들은 어찌나 마음씨가 고운지 웬만해선 불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혹시 금융회사 앞에서는 왠지 작아지지 않았던가요.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를 높여 당당하게 ‘금융 주권’을 챙깁시다. 호환마마보다 고객이 가장 무섭다는 걸 보여 줘야 합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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