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택지개발촉진법 재검토할 때다

  • 입력 2009년 6월 1일 02시 53분


서울 개포동과 목동, 상계동, 경기 산본, 평촌, 중동, 일산, 분당…. 여기 거론한 지역들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묻는다면? 중산층이 거주한다, 주거환경이 쾌적하다, 아파트 밀집지역이다 등의 대답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이곳들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공통점이 따로 있다. 바로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라 조성된 주거지라는 점이다. 아마도 이 법이 없었다면 이 정도의 대규모 아파트촌은 생겨나지 않았으리라.

택지개발촉진법은 탄생부터 상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정 시점은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1980년의 마지막 날. 국회가 해산돼 국가보위입법회의라는 기구가 대신 법을 만들었다. 이보다 5개월 전에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주택 500만 호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주택보급률이 50%에도 못 미칠 때였으니 국민으로부터 큰 환영을 받을 방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500만 채를 새로 지으려면 엄청난 면적의 땅이 있어야 했다. 이에 신군부가 내놓은 수단이 바로 택지개발촉진법이었다.

이 법에는 ‘일사천리’ 또는 ‘속전속결’과 같은 속성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건설부(현 국토해양부) 장관이 택지개발예정지구를 지정하는 권한을 휘두른다. 택지지구로 묶이면 소유주들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용한다. ‘주민의 의견청취’라는 조항이 신설된 것은 법 제정으로부터 19년이 지난 1999년의 일이었다. 또 택지지구로 지정되면 그 전까지 적용되던 도시계획법이나 주택건설촉진법, 공유수면관리법 등 무려 19개 법률이 무력화된다. 19개 법률이 규정한 개별 인·허가를 한꺼번에 받은 것으로 간주한다. 지금은 택지지구가 무장 해제하는 법률이 22개로 늘어났다. 택지개발촉진법은 ‘법 위에 군림하는 법’이다.

택지지구 지정으로 제일 피해를 본 대상은 울창한 숲이었다. 택지개발촉진법이 눈독 들인 녹지는 뭉텅뭉텅 사라져 콘크리트 정글로 바뀌었다.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초빙교수는 “이 법률은…이 나라 대도시 중소도시 주변을 거침없이 활보하였으며 닿는 곳마다 아파트 숲을 이루게 했다”고 지적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2007년까지 택지지구로 지정된 면적은 서울 여의도의 907배에 이른다. 어느덧 수도권 인근에는 택지로 묶을 땅마저 바닥을 드러냈다.

이제 택지개발촉진법이라는 공룡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먹잇감으로 노리고 있다. 그린벨트 너머 기존 신도시 외곽은 도심에서 워낙 멀어 주거지로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린벨트는 지정 당시 5397km²에서 2009년 3월 현재 3938km²로 37% 줄어들었다. 택지 조성 등 이런저런 명목을 앞세운 개발이 갉아먹은 결과였다. 도시민을 숨쉬게 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녹색성장을 가능하게 할 여력도 함께 줄어들고 있다.

택지개발촉진법은 막대한 개발이익을 환수하고 서민을 위해 땅을 싸게 공급한다는 명분에 기대어 지금까지 연명해 왔다. 정부 계획대로 매년 20만 채의 공공주택을 지으려면 택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수도권 과밀화와 환경 훼손 등을 불러온 대규모 택지개발 방식은 재검토할 때가 됐다. 택지개발촉진법은 새로운 상황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화석화된 공룡이 될지도 모른다.

이 진 경제부 차장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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