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경제학의 지적 파산

  • 입력 2009년 4월 27일 02시 58분


2010년 7월 17일. 경제학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 사망 220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때쯤이면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의 비밀회합이 열리지 않을까. ‘경제학 무용론(無用論)’이 확산되고 “경제학이 점성술과 뭐가 다르냐”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오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비상대책회의를 열어야 할 처지다. 회의가 열리면 이들은 어떤 말을 주고받을까.

“경제학이 과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중에게 고백할까요?” 노구를 이끌고 사회자로 단상에 오른 폴 새뮤얼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좌교수의 발언에 회의장은 순간 정적에 빠져든다. 40년 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고 현대 경제학을 확립한 그의 말이기에 더욱 울림이 크다.

“하이에크, 프리드먼으로 이어지는 시장근본주의자들 때문에 위기가 온 건데 왜 모든 경제학자가 비난을 받아야 합니까?” 미 컬럼비아대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가 반발하고 나선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는 1930년 대공황 이후 유지해 온 은행에 대한 규제를 다 풀어주는 바람에 터진 일이라는 게 그의 주장. 신자유주의의 본산(本山)인 시카고대 출신들이 이번 위기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돈을 너무 많이 풀어 발생한 전형적인 ‘정부 실패’라고 반격한다. 사람들은 그린스펀을 찾지만 이런 비판을 예상한 듯 그는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마저 180도 다른 해법을 제시하며 충돌하다 보니 대중이 경제학을 불신하는 것 아닙니까. 대중 앞에서는 논쟁을 자제하고 수학으로 포장된 논문으로 토론합시다”라고 중재를 시도하지만 불발로 그친다.

이때 물리학 박사 출신으로 골드만삭스 간부로 일했던 이매뉴얼 더먼이 일어선다. 그는 수학과 컴퓨터로 무장하고 금융공학을 발전시킨 퀀트(Quant)의 대부. “경제학에 모티브를 제공한 물리학도 뉴턴 역학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경제학도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꽤 있지만 한 은행가의 발언에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흥, 냉전이 끝난 후 쓸모없어진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에게 경제학을 가르쳐 월가에 취직시켰더니 누구를 훈계하는 거요? 자신도 이해 못하는 파생상품을 만들어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건 바로 당신들 퀀트이니 조용히 하시오.”

논쟁에 끼지 못하던 한국의 한 학자가 일어서 “스승들마저 이렇게 싸우면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란 말입니까. 학자들이 동의하는 공통분모를 찾아 교과서를 다시 써주십시오”라고 호소한다. 심리학과 경제학을 접목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도 “경제학도 진화생물학, 복잡계론, 뇌과학 등 인접 학문들이 이룩한 성과를 받아들여 열린 경제학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거든다. 모임은 어느덧 새로운 교과서를 쓰기 위한 1박 2일간의 토론회로 이어진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경제학자들이 동의하는 이론은 찾지 못했고 결국 교과서를 만들지 못한다.

반성문 한 줄 없이 선진국 경제학자들이 금융위기를 넘어가고 있다. 그들을 스승으로 모셔온 한국인에게는 허망함, 억울함, 전망의 부재 등 복잡한 느낌을 준다. 열린 경제학의 시대가 오기를 기대하며 가상의 상황을 적어 봤다.

이병기 경제부 차장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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