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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전망대]불타는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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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전망대]불타는 달러

입력 2009-03-23 02:56수정 2009-09-2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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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현지 시간) 미국의 금융전문 케이블 방송인 CNBC에서는 극적인 장면이 있었다. ‘The Call’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진행자인 래리 커들로는 라이터를 꺼내 1달러짜리로 보이는 지폐를 태웠다. 그는 불타는 지폐를 흔들며 “이것이 달러의 가치”라고 격앙된 음성으로 전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달러를 찍어내 3000억 달러의 국채를 매입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전해진 직후였다.

이날 달러 값은 떨어지고 금, 은, 원유, 구리 등 달러의 대체재가 될 실물자산들이 큰 폭으로 뛰었다.

기자는 작년 7월 ‘퍼펙트 스톰’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미증유의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고, 불행히도 현실화됐다. 더욱이 작년 9월 리먼브러더스 붕괴 이후 전개되는 상황은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로 확산되는 단계를 넘어 기축통화의 위기로 옮아가기 직전이다.

달러의 위기는 ‘퍼펙트 스톰 2’라고 부를 만한 재앙을 한국에 가져올 수 있다.

달러 폭락은 원유 등 원자재 값의 폭등을 부르기 쉽다. 가장 타격을 받는 나라는 자급자족이 어려운 곳이다. 원천기술이나 확고한 브랜드 가치를 확보하지 못한 한국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의 폭등을 수출품 가격에 전가하기도 어렵다. 결국 기업 이익은 줄고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기 어렵다.

잠깐이지만 우리는 이런 상황을 이미 체험했다. 작년 초 달러 약세와 더불어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하면서 경상수지는 11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고 원화가치는 폭락했다.

2조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가진 중국은 이런 상황을 염려해서 원유 가격이 고점 대비 3분의 1 이상 떨어진 상황에서도 유전 등 원자재 확보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중국 최고위 관료가 최근 한국 금융회사 관계자에게 “휴지가 될 달러를 뭐하러 들고 있느냐. 부지런히 원자재를 사두라”고 충고할 정도다.

폭락은 아니더라도 1985년 ‘플라자 합의’와 비슷한 정도의 달러 약세가 와도 한국에는 큰 부담이다. 미국은 이번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 중 하나인 ‘글로벌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수입을 줄일 가능성이 크고 그 피해가 가장 큰 나라는 한국이다. 세계의 엔진인 미국이 소비를 줄일 경우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4%대에서 2∼3%대로 떨어질 수 있다. 잠재성장률이 이 정도로 떨어지면 한국은 만성적인 경제위기와 실업대란,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

세계 경제의 혼란이 지속되면 각국은 서바이벌 모드로 돌입해 전략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나라들끼리 블록을 형성해서 위기를 헤쳐 나가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나 중국, 일본이 한국에 손을 내밀어줄지는 미지수다.

끔찍한 시나리오를 열거하는 것은 비관론을 전파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가올 글로벌 자본주의의 흐름에 지금 한국 경제의 포지션이나 체질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작년 9월 이후 경제위기 뉴스가 지겹도록 계속되다 보니 모두의 시야가 단기적인 위기 수습책이나 금융시장에만 갇혀 있는 느낌이다. 국가적 어젠다에 ‘위기 그 이후’를 추가해야 할 시점이다.

이병기 경제부 차장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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