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1년/시련언제까지③]한 주부의 한숨 밴 가계부

  • 입력 1998년 11월 8일 19시 23분


주부 손모씨(37·경기 광명시 철산동)는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아등바등 저축하며 살아온 것이 기적 같기만 하다.

의료기회사 영업과장인 남편(39)은 작년 9월에는 특별상여금 50만원을 포함해 2백50만원을 건네주었지만 올 9월엔 월급만 달랑 1백40만원을 손에 쥐어주었다.

부도 직전에 다다른 가계를 꾸려나가는데는 아끼고 줄이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매월 30만원씩 8백만원이 넘게 부었던 적금 하나를 깼고 가족 이름으로 가입했던 보험 4개중 2개를 해약했다.

2년반동안 ‘내집 마련’ 일념으로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5∼6개월에 한차례씩 중도금을 냈던 용인 수지지구 아파트(32평형)에 입주할 수 없게 된 것이 무엇보다 가슴 아프다. 15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손씨 가족은 12월 입주와 동시에 지불해야 할 잔금이 모자라 수지 아파트를 전세놓아야 할 형편이다.

손씨의 가계부를 들여다보면 IMF 사태를 맞아 한국의 평균가정이 겪은 고통의 크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월 2백만원이던 남편의 월급이 30% 깎인 뒤로 손씨는 먹는 것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가위질했다.

옷값은 작년 9월 8만1천원에서 2만5천원으로, 외식비는 7만5천원에서 4만7천원으로 줄였다. 업무상 차가 꼭 필요했던 남편이 스스로 대중교통을 이용했기 때문에 신용카드로 매달 결제한 기름값 15만원을 줄일 수 있었다.

책값 등 교양오락비는 2만5천원에서 1만3백원으로 줄이고 교회 헌금과 신도들이 집에 왔을 때 내는 과일값은 10만1천원에서 6천5백원으로 무려 94%나 줄였다.

아들도 학원을 그만두게 해 4만원을 절약했다.

올해 개설한 마이너스통장 대출이자 6만5천6백22원이 가계에 새로운 부담이 됐다. 주택자금 2천만원에 대한 대출이자가 올라 지난해보다 8만여원이 많은 30만원을 이자로 냈다.

물가가 올라 반찬 가짓수를 줄여도 부식비는 지난해와 똑같이 38만원이 들었다. 수도나 전기도 악착같이 덜 썼지만 요금 인상으로 4만여원을 줄이는데 그쳤다.

손씨는 “얼마전부터 일당 만원이라도 받을 수 있는 부업 거리를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며 “이런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모르지만 요즘은 조금 지쳤다”고 말했다.

〈이병기·이 훈기자〉watch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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