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과 너무나 달라진 청와대[청와대 풍향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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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 검증 부실 논란에 대해 사과하는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년 5월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 검증 부실 논란에 대해 사과하는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 청와대사진기자단
한상준 정치부 기자
한상준 정치부 기자
“잠시만요. 여기서부터는 (방송) 카메라 좀 꺼 주시면….”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6월 1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장관 인선 발표를 마친 박수현 당시 대변인은 단상에서 내려와 기자들에게 이같이 요청했다. 방송 카메라가 철수하자 박 대변인은 준비된 말을 이어갔다.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것으로 검증 과정에서 파악됐으며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주민등록법 위반이 있다.” 주민등록법 위반은 쉽게 말해 위장전입이다. 자랑거리는 아니니 영상 녹화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됐다는 점을 언론을 통해 미리 밝힌 것이다.

약 20일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해 5월 21일, 조현옥 당시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지명을 발표한 뒤 “검증 과정에서 2가지를 확인했다. 장녀의 이중국적과 위장전입”이라고 했다.

음주운전, 위장전입, 이중국적 등은 후보자의 인사청문 기초 자료만 보면 즉시 파악할 수 있는 항목들이다. 당시 이례적인 ‘자기 고백’에 대해 한 청와대 참모는 “우리가 감춘다고 감춰질 사안이 아니지 않나. 그럴 바에야 국민에게 미리 고백하고 ‘그 대신 장관으로서의 능력을 보고 발탁했으니 양해해 주시라’고 설득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동의 여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솔직하기라도 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포함한 개각 인선 발표가 끝난 후 기자들은 “오늘 발표한 후보자들은 다 7대 인사 원칙에 부합하느냐”고 물었다. 검증 과정에서 파악한 문제점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돌아온 답변은 “구체적인 사안들은 앞으로 인사청문회를 통해서 검증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였다. 일단 밝히지 않고 어물쩍 넘어간 것이다.

지금과는 달랐던 2년 전의 청와대를 보여주는 장면은 더 있다. 2017년 5월 첫 인사를 둘러싼 부실 검증 문제가 확산되자 청와대 2인자인 비서실장이 직접 나섰다. 임종석 당시 비서실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어려운 말씀을 드리려고 왔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선거 캠페인과 국정 운영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기계적으로 같을 수 없다는 점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가 내놓는 인사가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도 했다.

정권이 출범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이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80%를 넘나들던 때였다. 지지율만 믿고 버티겠다고 작정하면 그럴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사석에서 “사과해 봤자 더 두드려 맞는다는 내부 우려가 왜 없었겠나. 하지만 선출된 권력이 주권자인 국민에게 보여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는 의견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에 책임감과 합리적인 목소리가 있었던 때였다.

지금은 어떤가. 조 후보자의 동생, 전 제수씨, 딸 등과 관련한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올랐던 22일 브리핑에서 청와대 관계자는 “말씀드릴 수 없다”는 말만 다섯 차례 반복했다. 이번 개각의 검증을 총괄한 사람이 누구인지, 검증 과정에서 어떤 문제점이 나온 건지, 도대체 검증을 제대로 하긴 한 건지 국민은 알 길이 없다. 청와대는 “일부 언론은 사실과 전혀 다른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면서도 그 사실이 뭔지는 결코 밝히지 않는다.

당연히 청와대가 사과에 나서려는 기색도 없다. 참모들과의 통화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아 유감이라는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면 휴대전화 너머로 침묵만 흐른다.

청와대의 침묵은 결국 대학가에 다시 촛불을 소환했다. 청와대가 ‘촛불 정신’을 내세우며 호기롭게 출범한 지 2년 3개월여 만이다. 그 배경에는 이처럼 더 무책임해지고 공감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진 청와대가 있다.
 
한상준 정치부 기자 alwaysj@donga.com

#문재인 정부#인사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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