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풍향계]戰士 김현종은 이번에도 승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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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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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풍향계]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14일 춘추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14일 춘추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한상준 정치부 기자
한상준 정치부 기자
“축하합니다. 어쩜 이렇게 좋은 타이밍에 나가십니까.”

지난달 말 각각 주오스트리아 대사, 주이탈리아 대사로 부임한 신재현 대통령외교정책비서관과 권희석 안보전략비서관은 떠나기 전 청와대 동료들에게 ‘농반진반’으로 이런 축하를 숱하게 받았다. 표면적으로는 고된 청와대 근무를 마치게 됐다는 것이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 참모는 “국가안보실 김현종 2차장 체제에서 벗어나게 되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만큼 김 차장은 2월 28일 부임한 직후부터 안보실 직원들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부처에서 만든 보고서를 그대로 올렸다가 “제대로 읽어 본 거 맞느냐”는 질책을 받은 직원이 한둘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미국 핵심 인사 발언은 한글 번역본이 아닌 영어 원문으로 직접 확인하라”는 지침도 내렸다. 청와대에서 북핵 업무를 실무 총괄하고 있는 김 차장은 11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사전 협상을 위해 백악관에 다녀왔고, 언론 브리핑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전임자인 남관표 주일 대사보다 활동 폭이 훨씬 넓어졌다.

통상교섭본부장을 두 번이나 맡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이끈 김 차장의 전공은 통상.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김 차장에게 청와대의 외교, 통일 정책은 물론이고 북핵 이슈까지 맡겼다. 왜 그랬을까.

가장 큰 이유는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그의 소신이다. 김 차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각국과의 FTA 협상에서 “개성공단에서 만든 상품은 한국 원산지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여기에 남북 FTA 아이디어도 냈다. 노 전 대통령조차 “그게 가능하냐”고 되물을 정도로 파격적인 아이디어였다.

김 차장은 2010년에 쓴 저서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에서 “지금까지 남북 경협이 ‘퍼주기’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남북 FTA를 체결하면) 기존 관행을 공식화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남북 경협을 어떻게든 성사시키려고 하는 문 대통령의 뜻에 200% 부합하는 것이다.

대부분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한미 FTA를 관철시켰던 그의 추진력도 문 대통령이 김 차장을 안보실로 불러들인 또 다른 이유다. 김 차장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전례가 없다’는 말”이라고 했다. 비핵화 협상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문 대통령의 의중과 같다.

하지만 통상 협상과 비핵화 협상은 성격이 판이하다. 김 차장은 FTA 협상의 성공 이유로 “동시다발적 추진 전략”을 꼽는다. 한국 시장을 놓고 유럽연합(EU), 캐나다와 경쟁하는 미국에 “EU나 캐나다와 먼저 FTA를 하겠다”고 응수해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식이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북-미밖에 없는 비핵화 협상에서 이 전략을 똑같이 쓰기란 쉽지 않다.

‘전사(戰士) 김현종’의 특기 중 하나는 벼랑끝 전술. 협상이 빡빡해지면 주저 없이 “없던 일로 하자”며 윽박지른다. 그는 2007년 마지막 한미 FTA 서울 협상 당시 마감시한 하루를 앞두고 카란 바티아 미 협상단장에게 “짐 싸서 워싱턴으로 돌아가라. 그만두자”고 통보해 반전을 이끌어 냈다. 한일 FTA 협상에서는 아예 판을 깼다. 하지만 이런 전술은 북한이 각종 비핵화 협상에서 이미 숱하게 사용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차장과 가까운 한 여권 인사는 “노련한 협상가인 김 차장이 비핵화 협상은 FTA 협상처럼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백악관 관료들의 협상 스타일을 꿰뚫고 있는 사람은 현재로서는 김 차장밖에 없다”고 전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김 차장이 직원들을 강하게 다그치는 것도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고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미 FTA에 이어 또다시 국가의 명운이 걸린 협상에 참전한 김 차장은 앞서 언급한 책의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외교를 잘못해서 나라를 뺏긴 뼈아픈 경험이 있는 대한민국은 세부 사항까지 꼼꼼히 챙기면서도 깊고 넓게 또 멀리 보고 통합할 줄 아는 관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김 차장 스스로 그 관료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한상준 정치부 기자 alwaysj@donga.com
#신재현#권희석#김현종#국가안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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