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청년 발언대]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내야 할 민주주의 국가의 자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0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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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방한한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민간 차원의 대북지원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미국 국민에 대한 북한 여행 금지 조치를 재검토 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 흐름이 이어져 올해 여름 이후 교착(gridlock) 국면을 지속해 온 북한 비핵화 협상이 다시 속도를 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북미 간의 협상의 교착 원인에 대해 ‘두 나라가 원하는 것과 줄 수 있는 것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왔다. 북한은 비핵화 조치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 측이 체제안정보장과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길 원한다. 그래서 미국의 보상안을 자신이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의 신고와 검증에 임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야 비로소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는 자세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이와 같은 협상 조건의 문제이고 협상에 임하는 국가들의 내부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국제정치는 국내정치를 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한 외교학과 교수님 말씀이 떠오른다. 사실 국익이라는 말에서 상정하는 국가란 왈츠(K. Waltz)가 말한 것처럼 단일한 행위자(unilateral actor)가 아니다. 국가는 실체적으로는 협상의 주체인 정부이며 실질적으로는 그것이 대리하는 온 국민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약화시킨 국내정치의 역학을 보기 위해 각 국가의 암실(black box)을 열어보는 시도는 유의미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북미협상이 지난 가을 유독 답보 상태에 놓인 원인 중에는 주요 당사국인 한국과 미국의 국내정치가 다른 현안에 압도되어 비핵화 의제에 대해 ‘협의’하기 어려웠고 의회 양극화로 인해 정부의 정책 노선에 대한 정치권의 ‘합의’ 또한 불가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선 요 근래 의회정치에서 비핵화 문제에 대한 ‘협의’의 공간이 부족했다. 한국과 미국은 대의민주주의 국가다. 즉, 피대리인인 국민은 정당성(legitimacy)의 원천이자 위임(delegation)의 기초인 선거행위를 통해 대리인인 정부와 국회에 권한을 부여하며 선출된 정부와 국회 대표자는 정책 결정을 위해 설정된 의제에 대해 ‘협의’하고 ‘합의’한다. 그런데 지난 가을 협상의 당사자인 미국과 그 중재자인 한국의 내부정치에서 그 두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한국은 지난 10-11월 정기 국정감사 기간을 맞이해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립유치원의 비리, 최저임금 및 52시간 근무제, 경제부총리 교체 등 건이 의제에 오르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정치적 관심은 크게 줄었다. 정기국회가 종료된 시점에서도 정개특위와 사개특위를 중심으로 굵직한 국내 현안이 대두되면서 비핵화 문제에 대한 의제설정이 쉽지 않다.

미국의 경우 11월 중간선거가 국민의 관심을 국외에서 국내로 전환한 분수령이었다. 실제로 지난 10월 9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일정을 조율하기에는 선거유세가 너무 바쁘기 때문에 2차북미정상회담은 중간선거 이후에 열리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선거 결과 트럼프 행정부가 상원을 수성하고 하원을 빼앗긴 반쪽짜리 성적표를 받아 들면서 내년 출범할 의회의 구성을 두고 힘싸움이 여전히 한창이다. 그렇게 국내정치 현안이 만들어낸 블랙홀 속에서 비핵화 문제는 충분히 공론화되지 못한 채 한국과 미국 국민의 관심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갔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흔들릴 당시에도 국내정치가 국제정치를 압도한 바 있다. 미국은 그 해 치렀던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혁명’을 통해 야당이 약진함으로써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동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를 맞이해 대내 안정을 추구하기 위한 선군정치의 일색화 작업에 여력이 없었다. 국내적으로 특정 문제에 대한 공론화 노력이 실패해 그 의제에 대한 정치적 협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 국민은 피로감을 느끼며 정부의 대외정책 동력은 필연적으로 약화된다. 그러한 맥락에서 얼마 전 남북정상회담 합의이행에 대한 전망을 물은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부정응답(45%)이 긍정응답(38%) 비율을 다시 앞지른 것은 그리 낯설지 않다.

이런 상황에 더해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국내정치의 정치양극화는 정부의 비핵화 정책에 대한 당파간 ‘합의’ 또한 어렵게 한다. 지난 10월 서울대에서 강연한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퍼트남(R. Putnam) 교수는 1970년대 이후 미국 의회의 초당적 협력(cross-party collaboration)은 끊임없이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바 실제 미국 상하원의 법안통과 수는 해당 시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한국 또한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은데 이내영 국회입법조사처장에 따르면 한국 국회의 양극화는 지난 17대 국회 이후 지속적으로 심화되었으며 이는 정당의 이념 스펙트럼이 보다 폐쇄화된 데 기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안에 대한 의제설정이 이루어져 협의를 거쳤다 하더라도 종국적으로 정치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으면 정부의 대외정책 동력이 역시 약화됨은 자명하다. 의회가 마비되어 합의 불능 상태에 빠졌을 때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는 종종 대의제의 한계를 보완하는 효과적 대안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 문제에 관한 정부의 정책은 숙의에 부칠 사안은 결코 아니다. 제도권 정치를 경유하지 않은 채 국민의 직접 참여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여하튼 대의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내적 정합성이 떨어지는 의결방식이며 비핵화 협상은 최종적으로 이행입법을 통해 기대가 안정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교섭은 여전히 전통적인 상위정치(high politics)의 외연 속에서 실현되고 있으므로 정보공개가 아닌 정보비공개를 기본으로 한다.

현재의 교착을 타개하고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지도자 간의 의지배열(volition arrangement)에 더하여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정치권의 초당적인 합의가 절실하다. 1970년대 서독에서 사민당 빌리 브란트 총리에 의해 제창된 ‘신동방정책’은 1980-90년대 기민당 헬무트 콜 총리에 의해 지속적이고 일관적으로 계승되어 독일 통일의 기반이 되었다. 독일의 사례는 전형적이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선례이다. 한국의 경우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범야권 보수세력은 집권여당의 정책노선 가운데 무엇을 밀어줄 수 있고 무엇을 밀어줄 수 없는지에 대한 치열한 내부 논의를 거쳐야 한다. 이는 내년 제1당으로 출범할 미국의 민주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요구된다. 대승적 차원에서 지지해줄 수 있는 정책은 향후 대정부 협상에서 레버리지로 사용될 수 있는 반면 용인이 불가해 지지해줄 수 없는 정책은 오히려 그 제동 기능이 강화된다는 점에서 야권이 누릴 수 있는 정치적 이익 또한 적지 않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이상과 같은 국내 정치적 제약으로 인한 정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속도’와 ‘소통’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 조급할 이유는 없으나 협상의 ‘속도’는 중요하다. 민주주의 정치과정은 끊임없는 의제설정 및 공론화 노력을 통해 지속적으로 국민을 설득하고 그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따라서 협상이 장기화되는 것은 그 자체 국민에게 피로감을 주며 국민적 지지를 갱신하는 데도 도움이 안 된다. 또한 고정임기를 갖는 정치인의 시폭(time span)을 고려할 때도 속도는 중요하다. 북미 간 협상안이 도출된다 하더라도 관련국의 제도권 정치에서 승인을 받고 의회의 이행입법으로 이어져 최종적으로 기대가 안정화되는 데는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5년 미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 조치는 결국 오바마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로 교체되면서 유의미한 후속합의로 나아가는 데 실패했다. 이미 임기의 반환점을 돈 트럼프 행정부와 단임제에서 3년 반의 잔여임기를 남긴 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그리 여유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정책속도를 높이기 위해 국내문제와 외교문제를 투트랙으로 분리해 봄으로써 국제 문제에 대한 국내 정치적 제약을 완화하고자 하는 듯 하다. 가령 지난 1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이후 전용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은 외교 문제에 국한해 기자들이 질문을 던져주길 당부했으나 청와대는 의도했던 소정의 결과를 얻지 못했다. 우리나라 국민과 언론에게는 양자를 엄격히 분리해보는 시도가 마냥 익숙지만은 않으며 이론적으로도 양자는 엄격히 구분되는 성격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시도가 정착된다면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한 정치적 ‘협의’가 그 자체 독립된 사안으로서 속도감 있게 진전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둘째, 컨센서스 구축의 기초가 되는 정부의 대내외 ‘소통’이 중요하다. 정치 양극화 시대에 정부가 긴 호흡을 가지고 주변 행위자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주장은 원론적이나 동시에 더없이 시의적이다. 대내적인 대국민 홍보는 국민의 미시적 시각에 알맞아야 주권자의 정치효능감(political efficacy)을 제고하고 정책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가령, 한반도 평화 구축이 어떻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내 삶을 풍요롭게 바꾸고 나아가 이 땅의 번영에 기여하는지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가 제시되어야 한다.

대외적으로 미국 정계의 정보불완전성을 해소하기 위해 한미 간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크다. 지난달 미국 상하원 관계자들을 면담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워싱턴 외교가의 부족한 현안 이해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동일한 협상 국면에서 남북미가 서로 다른 정보를 토대로 교섭에 임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중재자로서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한반도로부터 7,000마일 떨어진 워싱턴 관계자에게 알아서 한반도 관련 뉴스를 빠짐없이 청취하라고 주문할 수는 없는 노릇이거니와 그들에게 그런 의무가 있다고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당국은 기존의 미국 백악관 및 내각 책임자에 더하여 의회와 씽크탱크를 상대로 한 ‘트랙 1.5’ 공공외교로까지 소통의 외연을 확장해야 할 것이다.

물론 북한의 내부정치도 중요한 변수다. 권위주의 독재 레짐을 채택하고 있으므로 암실(black box)에서 이뤄지는 정책결정 과정을 들여다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평양의 지배엘리트 사이에 비핵화의 진퇴를 놓고 치열한 노선투쟁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북한에게 비핵화는 체제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중대한 결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종석 전 장관은 이전 김정일 시기의 유일사상체제와 견주어 김정은 정권을 단일지배체제로 분류하였다. 최고지도자인 김정은도 국제 교섭의 장에서 북한의 입장을 자의적(despotic)으로 대변할 수 없고 국내 지배엘리트의 지지와 후견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여름 김정은은 ‘북한 내에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기 때문에 내부 입장을 정리하는 데도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과 미국은 독재국가인 북한의 엘리트들이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촉진할 의무도 있다.

나는 대한민국 국적의 청년으로서 한반도의 평화를 간절히 원한다.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란 좁게 보면 남북미 등 관계국과 국제사회가 짊어질 책임이지만 넓게 보면 한반도 주민 모두가 동참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가 비핵화 협상에서 자신의 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해 국내정치의 역학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율하길 희망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협의’와 ‘합의’로 요약되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구현해야 할 책무가 또한 모든 개개인에게 있음을 지적한다. 민주주의에서 외교협상은 최고지도자가 자의적으로 합의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일궈내는 과실이기 때문이다.

노태구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13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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