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굿 이너프 딜’에 대해 설명 안해”…해리스 불만 표출?[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30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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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22일 기자간담회에서 하노이 회담에 대해 나름의 평가를 내렸는데요. 우리 정부는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트럼프 행정부와의 직접 소통을 지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경우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 범위가 궁금합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과 구분되는 권한은 무엇인가요.
-노태구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13학번(서울대한반도문제연구회)

A. 학생의 질문은 둘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직접소통을 지향하는가의 문제와 이 경우 주한 미국대사의 위상, 둘째 주한 미국대사와 주한미군사령관의 업무 분장입니다.

먼저 우리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직접 소통을 지향하는가에 대한 답을 드려야 하는데, 한미 간에는 다양한 직접적인 소통 채널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하고 있다고 봅니다. 청와대와 백악관과 소통채널이 있고, 외교부와 국무부와 소통채널도 존재합니다. 우리 국방부와 미국 국방부 사이에도 소통 채널이 있구요. 그렇다면 ‘대사관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하는 궁금증이 있으실 텐데요. 대사관의 경우 외교부의 현지 사무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양한 사안들을 모두 직접 소통하기 어려운 관계로 거의 대부분의 업무는 현지 대사관을 통해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상을 고려할 때 주한 미국대사관은 우리나라에서 한미 간 외교적 소통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주한 미국대사는 이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만일 질문의 내용이 ‘한미 간 직접 소통이라는 형식적 차원을 넘어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청와대가 백악관과 직접 소통만을 추구하다보니 주한 미국대사가 소외되고 이에 대한 불편한 발언을 한 것이 아닌가’하는 가정을 담고 있다면,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봅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22일 서울 중구 정동 미국대사관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정부의 비핵화 절충안인 ‘굿 이너프 
딜’에 대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나와 중간 단계(굿 이너프 딜)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지는 
않았다”면서 “만약 제재 완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안 될 일이다”라고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22일 서울 중구 정동 미국대사관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정부의 비핵화 절충안인 ‘굿 이너프 딜’에 대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나와 중간 단계(굿 이너프 딜)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지는 않았다”면서 “만약 제재 완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안 될 일이다”라고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외교사안들을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결국 외교 관행과 주요 언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해야 하는데요. 먼저 해리스 대사의 22일 발언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강대국과 약소국을 가리지 않고, 대사들은 주재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주로 내놓습니다. 소위 외교적 수사(rhetoric)를 사용해서 불편한 마음이 있다 해도 그 마음을 간접적으로 전하는 것이 관행입니다.

그런데 해리스 대사의 발언 중에는 한국 정부로부터 ‘굿 이너프 딜(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을 강조하는 한국의 비핵화 협상 방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외교 관행을 보면 매우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에서만 이러한 논의를 했거나,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굿 이너프 딜’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소위 ‘언론 플레이’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표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 가능한 거죠. 이러한 불만의 표현이 아니었다면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추가 설명 자료를 제공하면서 대사의 표현은 진의가 다르게 표명되었다고 설명을 했을 텐데, 아직까지 그런 이야기가 없다는 점에서는 무언가 불편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한국 정부의 반응입니다. 한국주재 외국 대사가 사실관계와 다른 부적절한 표현을 할 경우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우리 정부가 해리스 대사에게 ‘굿 이너프 딜’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충분한 설명을 했음에도 해리스 대사가 이런 발언을 했다면 우리 정부가 사실관계를 적시하고 대사 본인이나 그 아래의 부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함으로써 일종의 경고를 줄 수 있는데도 말이죠. 결국 이러한 관행들이 시사하는 바는 ‘굿 이너프 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설명이 어느 정도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만일 이러한 추정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외교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요. 우리도 마찬가지고 미국도 외교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현지 대사관에 많이 의존하게 됩니다. 제안된 내용이 어떠한 외교적 함의를 지니는지, 그리고 현지 여론은 어떠한지 대사관을 통해 자세히 파악하고 대응책을 수립합니다.

따라서 우리 청와대가 백악관에 어떠한 제안을 했다 해도 미국의 대응은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여러 상황을 파악한 후 국무부를 거쳐 다시 백악관에서 정책이 최종 결정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에서 1차적 정책기관이라 할 수 있는 주한 미국대사관에 우리 입장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면 미숙한 외교로 볼 수 있습니다. ‘굿 이너프 딜’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어떻다는 것을 떠나, 정상회담 추진과정에서 제대로 된 설득 작업을 충분히 하지 못한 거죠. 4월 11일 한미 정상회담이 ‘노 딜(no deal)’로 끝난 점을 고려할 때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달 22일 제4회 서해수호의날을 맞아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왼쪽 두번째)과 김병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왼쪽)이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대전=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지난달 22일 제4회 서해수호의날을 맞아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왼쪽 두번째)과 김병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왼쪽)이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대전=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두 번째 질문인 주한 미국대사와 주한미군사령관의 역할 분담은 의외로 답이 간단합니다.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에서 미국을 대표하며 외교업무를 담당합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에서 미군만을 대표합니다. 이러한 역할의 차이로 인해서 의전상 배려도 차이가 납니다. 미국 내 공무원 직급 체계를 고려할 때 4성장군인 주한미군사령관이 더 고위직이지만, 한국에서 개최되는 주요 행사에서는 주한 미국대사가 가장 상석에 위치합니다.

이렇게 분명한 기준이 있음에도 주한 미국대사와 주한미군사령관의 역할에 혼동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요.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의 직책을 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미연합사령관은 북한의 남침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할 경우, 한미 연합군의 작전을 통제하며 북한군과 싸우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유엔군사령관은 평시에는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을 관리하고, 혹시라도 전쟁이 재발했을 경우 유엔 관련 업무와 외국군 파견을 접수해서 전쟁에 투입하는 전력제공 기능을 맡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가적인 업무들로 인해 주한미군사령관도 한미동맹과 관련한 다양한 업무에 관여하게 되고 이와 관련한 대외 발언들이 종종 있게 됩니다. 그 결과 주한미군사령관이 마치 외교 문제도 다루는 것으로 비춰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업무 성격상 예외적인 것이고, 본질적으로 외교에 관한 사안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주한미군사령관이 기본 역할입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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