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의 패션 談談]〈12〉제복, 패션에 상징을 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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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수은주가 뚝 떨어지니 제복 입은 이들이 안쓰러워 보입니다. ‘좀 춥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들에게는 제복이 주는, 추위도 녹일 듯한 위엄과 권위가 있습니다.

제복을 뜻하는 영어 ‘유니폼(uniform)’은 ‘하나’라는 의미의 라틴어 ‘우누스(unus)’와 ‘형태’를 뜻하는 ‘포르마(forma)’가 합쳐진 말입니다. 제복의 매력은 특별한 의식이나 행사에서 입는 정복(正服)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의장대가 사열을 받거나 군악대가 행진할 때 입는 제복들을 떠올리면 됩니다. 어깨에는 커다란 술 장식이 있고 가슴에는 반짝이는 금장 단추들이 달려 있으며 허리에는 화려한 직물 밴드가 둘러져 있습니다.

‘생 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이란 초상화가 이런 제복을 보여주는 대표적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1800년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하려고 알프스산맥을 넘을 때를 담고 있습니다.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한 손으로는 저 높은 곳을 가리키며 병사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영웅 나폴레옹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쉬운 길을 버리고 적이 예상하지 못한 알프스산맥을 넘어 승리했고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란 명언을 남겼죠.

순정만화의 대명사 ‘베르사유의 장미’를 보고 많은 여성은 제복에 매료됩니다. 프랑스혁명기, 딸을 아들처럼 키우기로 결심한 귀족 아버지 때문에 오스칼은 남자로 자랍니다. 오스칼은 루이 16세와 결혼한 왕후 마리 앙투아네트의 호위를 맡죠. 파란만장한 사건과 로맨스가 펼쳐지지만 극중의 대표적 판타지는 남장을 하고 멋진 제복을 입은 오스칼에게 쏠립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저런 옷을 입고 전투했을까’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시 문화 양식은 매우 권위적이었습니다. 많은 여성이 꿈꾸는 ‘백마 탄 왕자님’의 상징은 그 당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죠.

청춘의 전유물인 교복은 다양한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시대 상황과 아주 밀접하죠.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 입었던 남학생의 검은색 교복과 여학생의 흰색 ‘세일러 칼라’. 이는 경제적으로 궁핍했지만 낭만이 있었고 거칠었지만 의리가 있었던 시대를 대변합니다. 단팥빵과 우유, 만원버스와 버스회수권, 양은도시락과 두툼한 영어사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친구’ 등은 모두 이런 교복의 상징성에서 탄생한 작품들입니다. 반면 서양의 교복은 특권 의식을 담고 있죠. 공립학교에서는 교복을 입지 않아 명문 사립학교의 교복은 바로 그 학교의 상징입니다. 짙은 네이비 블레이저 재킷에는 학교의 교표가 큼지막하게 수놓아져 있습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보듯이 그 특권 의식은 청춘에게는 짐이자 방황이며 거쳐야만 하는 인생의 시련기를 상징합니다. 반면 소설로 시작해서 영화로 만들어진 ‘해리 포터’의 마법학교 교복은 이제 어린이들이 핼러윈데이에 입고 싶은 1순위 옷이 됐지요.

누구든 인생에 한 번쯤은 제복을 입어 봤을 겁니다. 유치원에서 원아복을 처음 입었을 수도 있고, 군복이나 동아리 단체복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느끼셨으리라. 제복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상기시켜 주죠. 제복은 상징의 다른 말입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제복#유니폼#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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