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세 종목-세율 지방이 정하자”… 부익부 빈익빈 우려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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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이런 개헌을 원한다]<2> ‘지방분권 개헌’ 지자체 목소리

“지금의 지방행정 체계는 옛날 군복과 같다. 사람마다 체형이 다른데 똑같은 군복을 입혀놓으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개헌 중 지방분권에 대한 의견을 묻자 손철웅 대전시 정책기획관은 최근 시가 추진한 ‘청년취업 희망카드’ 사업을 예로 들었다. 청년실업 대책 차원에서 1인당 최대 180만 원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인데 중앙정부와 협의하느라 정책 타이밍을 번번이 놓치고 있다는 것. 손 기획관은 “시 예산으로 추진하는 사업인데도 현행법상 사회보장제도를 신설, 변경하면 보건복지부 장관과 일일이 협의토록 돼 있다. 지자체별 여건이나 특성을 반영한 자치분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검토하고 있는 지방분권 개헌의 골자는 크게 △자치입법권 강화 △행정수도 헌법 명기 △지방세 조례주의 △메가시티(Mega City) 육성 등이다. 지자체들은 자치입법권 외에는 조금씩 의견이 갈렸다.

○ 자치입법권 강화엔 한목소리

특정 분야에 한해 법률의 위임 없이도 지자체 조례로 규정할 수 있는 자치입법권 강화에 대해 대부분의 지자체는 찬성하고 있다. 복지, 주택, 교육, 환경 등 주민들의 일상과 밀착된 분야는 일선 지자체 공무원들이 중앙부처에 비해 현장을 더 잘 안다는 논리다. 자치입법권이 강화되면 중앙정부에 일일이 보고하는 시간을 아낄 수 있어 정책 타이밍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2015년 메르스 사태는 중앙의 지침을 기다리며 허송세월하는 것보다 지자체가 현장에서 지휘력을 발휘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역시 “‘대한민국은 분권국가다’라는 선언적인 내용이 개헌에 담겨야 한다. 자치입법권을 헌법에 명시해 연방제 수준의 자치분권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지방세 조례주의는 ‘재정 격차’ 우려

조례를 근거로 지방세를 부과할 수 있는 ‘지방세 조례주의’에 대해선 지자체 간 의견이 엇갈린다. 현행 헌법은 제59조에서 조세 종목과 세율을 법률로 정하는 ‘조세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지방세 조례주의 도입을 주장하는 지자체는 지방분권 취지에 맞고 지역 실정에 맞게 세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걸 내세운다.

예컨대 인천시의 경우 수도권 매립지와 화력발전소, 송도국제도시 액화천연가스(LNG)인수기지 같은 혐오시설이 적지 않아 환경이나 산업안전 분야 예산이 증가하고 있지만 국비 지원은 부족한 편이다. 박찬훈 인천시 정책기획관은 “지역자원시설세 과세 대상을 법률이 아닌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홍태 부산시 기획행정관도 “지방세 종목과 세율, 징수 방법에 대해 지방정부가 정할 수 있도록 해줘야 진정한 재정분권이 확립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제력이나 인구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지자체들은 지방세 조례주의가 오히려 지자체 사이에 재정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남도청 관계자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재정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보완 대책을 마련하고 난 뒤에야 재정분권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서울과 경기, 인천 세 곳이 지방세 총액의 55%를 차지하고 있다. 지방소비세나 지방소득세 세율을 올리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재정 격차가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행정수도 명기, 찬반 갈려

헌법에 행정수도 조항을 명기하는 방안에 대해선 충청권과 수도권 광역지자체들 사이에 의견이 갈렸다. 세종시와 충남도청 등 충청권 지자체들은 일제히 환영했다. 이춘희 세종특별자치시장은 “세종시는 애초 수도권 문제를 해소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수도였으나 위헌 결정에 따라 도시로 축소됐다. 행정수도 지정을 위한 개헌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행정수도에 힘이 실리는 걸 견제하는 수도권 지자체들은 이에 부정적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자칫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행정수도 헌법 명시는 불필요하다. 행정수도 규정은 헌법이 아닌 법률로 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울산시 관계자도 “지역 갈등과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며 경계했다.

○ 수도권 지자체들 ‘메가시티’ 기대

여권은 지방분권 차원에서 파격적인 규제 완화를 통한 메가시티 육성을 개헌안에 넣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메가시티란 핵심 도시를 중심으로 일일생활이 가능하고 기능적으로 연결된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광역경제권을 말한다. 고령화에 따른 지방경제 쇠락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거론된다. 지난해 7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인 메가시티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메가시티 육성안에 대해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경기와 서울을 하나로 합치고 수도권 규제를 철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경남도청 관계자는 “자칫 수도권 규제 폐지를 통한 수도권 중심의 발전으로 이어져 나머지 지자체들이 소외될 수 있다”고 했다.

김상운 sukim@donga.com / 대전=이기진 / 인천=박희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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