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공천 新풍속도]공천심사위 상종가

  • 입력 2004년 1월 14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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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서 옆에 앉지도 못하겠어.”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현역 의원들은 외부 영입 공천심사위원인 강혜련(姜惠蓮) 이화여대 교수에게 종종 이런 농담을 건넨다. 공천기준 원칙을 엄격히 지키려는 강 교수의 단호한 자세를 빗댄 농담이다.

그는 최근 현역 의원인 심사위원들과의 설전 끝에 공천의 핵심기준이었던 ‘당에 대한 기여도’ 항목을 참고조항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에 앞서 강 교수는 지난해 12월 “만약 원칙 없는 공천에 들러리를 세우면 ‘한나라당의 공천은 엉터리’라고 양심선언을 하겠다”고 못을 박은 뒤 심사위원직 제의를 수락했다.

각 당이 공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겠다며 외부 인사들을 대거 영입한 결과 나타나고 있는 새 공천풍속도의 단면이다.

16대 총선 때까지만 해도 각 당에서 공천 심사를 맡은 외부 인사는 기껏해야 1, 2명에 불과했고 역할도 구색 갖추기에 머물렀다.

그러나 외부 인사의 수가 심사위원 전체의 절반가량으로 크게 늘고 자율성과 독립성도 보장돼 예전엔 찾아볼 수 없었던 양상이 속출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선 최근 외부에서 영입된 총선 출마 후보 자격심사위원 10명 가운데 5명이 사퇴했다. 후보들의 집중적인 로비 공세를 견뎌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직을 사퇴한 인하대 김대환(金大煥) 교수는 “후보들이 수시로 학교나 집으로 전화를 걸어 ‘꼭 한번 만나자’ ‘지금 집 앞에 있다’ ‘평소부터 존경해왔다’는 등의 공세를 펴는 통에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외부에서 영입된 여성 심사위원들은 특히 여성 후보들의 주 타깃이 되고 있다. 각 당이 비례대표 후보의 절반을 여성에게 배정하기로 하자 실질적 공천 권한을 가진 여성 심사위원들에 대한 여성 후보들의 ‘줄 대기’ 노력이 경쟁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열린우리당 심사위원인 전현희(全賢姬) 변호사는 여성 신인 후보들의 만나자는 제의를 완곡하게 거절하면 “당신이 이럴 수 있느냐” “나이도 어린 사람이 왜 그리 뻣뻣하냐”고 항의하기 일쑤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심지어 일부 여성 심사위원들은 다른 경쟁 여성 후보를 음해하는 내용의 e메일도 하루에 수십건씩 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물론 각 당의 여성 심사위원들은 공통적으로 여성 후보의 비례대표 상위 순번을 지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도 기울인다.

16대 총선 때만 해도 ‘전국구 상위권’을 약속받고 영입됐던 여성들이 당내 계파간 세력 싸움에 밀려 당선권 밖으로 밀려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

아무튼 공천과정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외부인사로 충원된 공천심사위원들은 최근 상한가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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