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 인&아웃]“브리핑 잘해봐야 본전”

  • 입력 2004년 8월 1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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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국장급 이상 당국자들에겐 언론브리핑이 최대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공식브리핑에 나서면 신문과 방송에 자신의 얼굴과 이름, 설명 내용이 고스란히 공개되는 데다 때로는 브리핑 내용이 파문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한 당국자는 1일 “브리핑을 앞두면 긴장하게 된다”며 “원고에서 호흡 조절상 끊어 읽어야 할 부분을 볼펜으로 표시해 두고 몇 번씩 읽어 본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당국자들은 PR(Public Relations)를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린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또 언론 보도시 브리핑하는 사람의 신원을 밝히지 않는 백그라운드 브리핑(배경 설명)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지난달 29일 탈북자 468명의 대거 입국에 관한 브리핑 때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기자들에게 요청했다. 발언 내용이 공개될 경우 북한의 반발로 남북 장관급회담의 무산 가능성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당국자의 사진을 찍지 않고,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다.

교육부의 한 당국자는 지난해 신도시 교육타운 건설 문제에 관한 질문에 “신문에 실명이 인용되는 공식 브리핑에선 한마디도 안 하겠다”고 버틴 일이 있다. 그래도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그는 5m떨어진 출입문을 가리키며 “(비공식적으로) 브리핑룸 밖에 나간다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묘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특히 TV의 방송카메라는 공포의 대상이다. 실제로 당국자들은 껄끄러운 사안에 관한 브리핑 때는 카메라를 치워줄 것을 요구하는 일이 잦다. 카메라 기피 현상은 최근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기자회견장 안팎의 장면을 ‘무삭제 버전’으로 공개하면서 두드러지고 있다.

한 당국자는 종전엔 논평을 외워서 읽다가 발음이 꼬이면 “영 안 되네. 다시 합시다”라고 방송기자에게 요청했으나 최근엔 이 같은 장면이 방송의 ‘노컷 뉴스’에 나올 것을 우려해 자제한다고 전했다.

1990년대 말 서울지검 간부를 지낸 한 인사는 수사 결과 브리핑 때 카메라를 의식해 가벼운 ‘메이크업’을 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그렇지만 정부 당국자들은 “행정공무원은 그런 ‘간 큰 행동’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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