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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주성하]‘김정은 동지가 만져 본 문어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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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주성하]‘김정은 동지가 만져 본 문어다리’

동아일보입력 2012-09-11 03:00수정 2012-09-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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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국제부 기자
김정은 부부가 평양 중심부 창전거리 새 아파트를 방문한 사진이 며칠 전 한국 언론에 실렸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들이 대학 교원, 노동자, 신혼부부 가정 등을 찾아 생활 애로를 들었고 각종 선물도 전달했다고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김정은 부부가 전달한 선물은 42인치 LCD 텔레비전, 그릇세트, 성냥, 술, 음식, 세계명작동화세트 등 다양했다. 교원 가정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은 방석을 깔려는 집주인에게 나이 많은 할머니에게 깔아 주라며 제지했다고 한다. 조선중앙통신은 이설주가 부엌 싱크대에서 컵을 직접 물로 닦는 사진도 공개하면서 그가 집주인들에게 음료수도 직접 따라 주었다고 보도했다. 친근하고 인민적인 지도자 부부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역력히 드러나긴 했어도 어쨌든 오케이. 내가 보기엔 그 나름대로 연출은 괜찮았다.

하지만 김정은은 자기가 떠난 뒤 벌어질 일들에 대해선 과연 알고 있을까. 수십 년 동안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전통’처럼 이어져 내려온, 북한 주민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을 말이다.

북한 전통에 따르면 김정은과 만난 사람들에겐 ‘접견자’라는 ‘성은(聖恩)’이 하사된다. 아무나 접견자가 되는 것은 아니고 김정은과 악수를 했거나 5분 이상 대화한 자만 인정한다는 식의 내부 규정이 있다. 일단 접견자가 되면 승진에서 파격적 대우를 받고 웬만한 죄를 저질러도 무마가 된다. 거기까진 가문의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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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통에 따르면 다음 날 저 집 출입문 위에는 ‘위대한 김정은 원수님이 다녀가신 집. 주체 101(2012)년 9월 5일’이라고 적힌 간판이 내걸린다. 붉은 바탕에 금색 글씨로.

그때부터 집주인은 자기 집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혁명 사적지’에서 사는 것이다. 선물 받은 TV에도 역시 ‘위대한 김정은 원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그러면 저 TV는 이제부터 고장 나면 안 되는 성물(聖物)이 되는 것이다. 그릇도 금조차 가면 안 된다.

소파 방석 식탁 컵 등 수많은 성물을 보관하게 된 저 집 주인은 이제부터 혁명 사적지에서 조심조심 살아야 하는 운명이다. 100권이 넘는 명작 동화 세트를 받고 즐거워하는 사진 속 아이는 어린 나이에 이미 혁명사적 관리인으로 당첨된 것이다. 원수님이 하사한 선물이니 분실은커녕 낙서나 훼손도 절대 안 되게 관리해야 한다.

흔히 남쪽 사람들은 북한은 김일성 부자 동상이나 혁명사적지, 영생탑 같은 우상화물에만 돈을 쏟는 줄 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앉으셨던 의자’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보아 주신 기계’ 등의 간판이 걸려 있는 소위 ‘혁명 사적물’은 그보다 몇십 배 더 많고 전국 어딜 가나 흔하다.

김정은이 공원에서 문어 조형물의 다리를 만지며 웃는 사진이 나오면 나는 궁금해진다. 저 문어다리에는 ‘김정은 동지께서 만져 보신 문어다리’라는 간판이 걸릴까. 그렇다면 저 문어다리는 유리박스에 들어갈까, 울타리 안에 들어갈까. 김정은이 놀이기구를 타고 즐거워하는 사진을 보면 “저 자리는 영영 공석이 됐군” 하는 생각이 들고 그가 탱크를 모는 사진을 보면 “앞으로 탱크 번쩍번쩍 닦느라 군인들이 고생하겠군” 하는 생각이 든다.

김정은이 진정으로 인민의 지도자로 인정받는 간단한 길 중 하나는 수많은 사람을 성물 관리인에서 면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이젠 하지 마라’라는 한마디면 된다. 그 한마디엔 나도 서울에서 진심으로 박수를 칠 것 같다.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뉴스룸#주성하#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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