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지도자 만들기 舊蘇군정 치밀한 작전”

  • 입력 2004년 7월 23일 00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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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후 북한 지도자로 급부상한 김일성(金日成)의 뒤에는 소련 군정의 치밀한 이미지 메이킹 작업이 있었다.”

1945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 25군 정치장교였던 그리고리 메클레르 예비역 대령(95·사진)이 22일 러시아 일간 모스코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자신이 김일성의 이미지 메이커 역할을 맡았다며 당시의 비화를 공개했다.

메클레르씨는 1945년 9월 평양에 파견돼 1년여 동안 근무했다. 다음은 그의 주요 증언.

나는 1944년 하바로프스크에서 김일성을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소련군의 지원을 받아 항일 투쟁을 벌이던 빨치산 부대 88저격여단의 장교였다.

광복 후 김일성을 다시 만나게 됐다. 내게 맡겨진 임무는 빨치산 지도자였던 김일성이 대중성 있는 정치 지도자로 변신하도록 조련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김일성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있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먼저 북한으로 돌아온 김일성이 고향인 만경대를 방문하도록 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 방문 사실을 널리 선전했고 인파가 김일성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김일성의 생가와 친척들이 일반에 공개됐다.

나는 김일성이 북한 곳곳을 방문하도록 했고 그때마다 대규모 대중 집회를 조직했다. 한 대중 집회에서 김일성은 익사한 소녀의 부모를 만났다. 슬픔에 빠진 부모에게 김일성은 따뜻한 위로를 보여 줬다. 그는 군중에게 “나는 스탈린 대원수처럼 모든 근로 대중의 개인적인 일까지도 보살피겠다”고 연설했다.

김일성은 소녀의 부모가 슬픔에서 회복되도록 소련의 요양소로 보내 줬다. 이 제스처는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모든 것은 내 각본대로 이뤄진 것이었다. 나는 김일성에게 ‘토지개혁’을 지지하는 한 시인을 지원하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역사학자들은 믿지 않지만 김일성은 1945년 모스크바를 비밀 방문해 스탈린을 만났다. 면담 후 소련 당국은 그를 특별상점으로 안내했고 무엇이든지 갖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겸손한’ 김일성은 세 살 된 아들(김정일)의 장난감을 골랐다. 나는 김일성과 공식적인 관계였을 뿐 친구 사이는 아니었다. 1946년 시베리아 군관구로 전보되면서 그와 헤어졌다. 다시 만난 것은 그가 스탈린에게 남침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한 1950년이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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