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창의적 해법’ 정부 고심…남북미 입장 얽혀 ‘고차방정식’

  • 뉴시스
  • 입력 2019년 10월 28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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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北에 실무회담 제의…호응 여부 미지수
北, 금강산관광사업에서 南 배제 구상 언급
낡은 시설 철거엔 공감대…대화 테이블 견인
기존 관광 방식 대북공조 이완 우려로 고심
민간기업 '독점사업권' 유지 문제 등 쟁점 산적

금강산관광 중단 11년. 북한이 금강산관광지구 내 남측 자산을 철거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정부는 ‘창의적 해법’을 모색하겠다며 당국 간 실무회담을 제의했다.

북한이 철거를 요구한 것은 그간 남측 기업을 내세워 진행했던 금강산관광사업을 독자적 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시사항인 만큼 북한 당국은 강경한 태도로 ‘철거’ 논의에 임할 전망이다.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금강산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기업과 정부의 재산권, 비핵화 협상에서 대북제재를 지렛대로 삼고 있는 미국의 입장, 금강산관광사업을 경제발전의 또 다른 기회로 삼고 싶어하는 북한의 구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충하는 지점들이 적지 않아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통일부는 28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금강산국제관광국 앞으로 금강산에서 당국 간 실무회담을 개최하자는 내용의 통지문을 보냈다. 철거를 기정사실로 하고 서면협의를 하자고 한 북한에 역제안한 것이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금강산관광 문제와 관련해 우리 기업의 재산권에 대한 일방적인 조치는 국민 정서에 배치되고 남북관계를 훼손할 수 있는 만큼 남북 간에 충분한 협의를 거쳐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다”라며 북한의 호응을 촉구했다.

그러나 북한이 정부의 당국 실무회담 제의를 받아들일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 매체의 지난 23일자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금강산관광지구 시찰에서 남측 시설 철거 문제를 남측 관계부문과의 ‘합의’하에 추진하라고 했으나, “우리(북한)의 명산인 금강산에 대한 관광사업을 남측을 내세워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선을 그었다. 사업 방식 변경 구상을 밝힌 것이다.

이어 지난 25일 북한은 대남통지문에 “합의되는 날짜에 금강산지구에 들어와 당국과 민간기업이 설치한 시설을 철거해 가기 바람”이라고 명시했다. 남측과의 협의 범위를 ‘철거 일정’에만 한정한 것이다. 금강산관광사업 문제 전반에 관한 포괄적 논의를 목적으로 하는 당국 간 실무회담 제의를 받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철거 문제에 관해서는 다소 유연하게 접근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금강산관광이 11년째 중단되면서 낡은 시설들이 적지 않다는 점, 특히 가건물 형태로 지은 숙소 등의 시설을 현재의 모습으로 고집할 수만은 없다는 점에는 공감대를 표하고 있다. 낡은 시설에 대한 철거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견인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정부는 남북협력기금 550억원을 투입해 2008년 완공한 이산가족면회소 건물 등에 대한 철거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전망이다. 남북 인도지원 협력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설 철거 문제에 대한 이견이 좁혀진다고 끝이 아니다. 관광 재개 방식에 관한 문제도 난제 중의 하나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철거 공세에는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를 북미 비핵화 협상과 연계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강하게 깔려 있다.

김 위원장은 금강산 시찰에서 “지금 금강산이 북과 남의 공유물처럼,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처럼 되어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잘못된 인식”이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그리고 이러한 불만은 김 위원장이 금강산국제관광특구지도국을 금강산국제관광국으로 바꾸고, 새로운 국제관광문화지구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내놓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정부가 금강산관광지구가 가지는 상징성을 지키기 위해 관광 사업을 재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기술적으로는 국제사회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지만, 북한에 지급하는 관광 대금이 ‘벌크캐쉬’(대량현금)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있어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대북제재를 지렛대로 삼고 있어, 당장 재개할 경우 한미 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5일 “관광 자체는 유엔 안보리 제재에 해당되는 게 아니다. 그러나 관광의 대가를 북한에 지급하는 것은 제재 위반이 될 수 있다”며 “기존의 관광 방식은 안보리 제재 때문에 계속 그대로 되풀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남북관계와 대북공조 이완 우려를 놓고 고심이 깊음을 알 수 있다.

금강산관광사업을 주도해온 민간기업, 현대아산의 사업권 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다. 해금강호텔과 온정각 동관 면세점 등 금강산관광지구 내 민간 소유 시설이 대거 철거되고 그 자리에 북한이 건설한 시설이 들어설 경우 민간기업이 가지고 있던 ‘독점사업권’의 유지를 주장할 명분이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금강산국제관광특구지도국을 금강산국제관광국으로 개편한 것도 이러한 사업권의 변화를 염두에 둔 사전 조치로 봐야 한다는 관측이다.

금강산 개별관광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으나 이에 대해 정부는 당국 간 합의를 통한 신변안전보장, 그리고 교류협력법에 따른 방북승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향후 논의가 구체화되더라도 기존에 사업을 진행했던 민간기업과의 협의도 있어야 한다는 관측이다. 금강산관광이 시작된 이래 남측 인원의 개별관광은 단 한 차례도 검토되지 않았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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