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장외 샅바싸움만…내달 실무협상 가능성은

  • 뉴시스
  • 입력 2019년 8월 31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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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담화
폼페이오 '제재' '불량행동' 발언에 "도 넘어" 발끈
물밑접촉 '셈법' 이견 좁혀지지 않는 듯
"北은 美의 '제재 지렛대' 전략 바꾸고 싶어해"
"리용호 유엔총회 참석 여부, 물밑접촉 결과달려"

북한과 미국이 한미 연합훈련 종료 이후에도 장외 여론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내달 유엔 총회 등의 정치 행사들이 예정된 가운데 북미가 실무협상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공방을 이어갈지, ‘셈법’의 이견을 좁혀 마주 앉게 될지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북한이 31일 또다시 대미 비난 메시지를 냈다. 지난 23일 리용호 외무상 명의 담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미국 외교의 독초’라고 힐난하며 “제재 따위로 맞서려 한다면 오산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의 가장 큰 위협으로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지 9일 만이다.

북한은 이날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명의 담화에서 폼페이오 장관의 ‘불량행동’ 발언을 문제 삼으며 “이번 발언은 도를 넘었으며, 예정되어 있는 조미 실무협상 개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책임을 전가했다. 나아가 “미국과의 대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다”며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모든 조치들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로 떠밀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은 지난 21일 한국을 방문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북측 카운터파트로부터 소식을 듣는 대로 협상에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호응을 촉구하자, 곧바로 다음날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내며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이라면서도 “군사적 위협을 동반한 대화에는 흥미가 없다”고 거리를 뒀다.

한미 연합훈련과 한국 정부의 F-35A 스텔스 전투기 추가 반입 등을 문제시하며 실무협상 재개 지연의 책임을 미국 측에 전가한 것이다. 나아가 ‘포괄적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의 ‘계산법’에 상응하는 ‘포괄적 안전보장’ 조치를 향후 실무협상에서 본격 요구하기 위한 명분 쌓기의 일환이라는 관측이다.

그리고 다음날인 23일에는 리 외무상 명의의 담화를 통해 폼페이오 장관을 직격했다. 북한은 폼페이오 장관이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의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 완화’ 전략을 재확인하는 발언을 문제시했다.

미국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대북제재를 가장 큰 지렛대로 삼고 협상에 임해왔다. 그럼에도 북한이 ‘외무상 담화’로 비난 수위를 높인 것은 실무협상 재개에 앞서 힘겨루기를 하는 것 이상으로 볼 여지는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그러자 폼페이오 장관이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난 27일 미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재향군인회 행사에 참석해 미국의 비핵화 의지가 ‘희망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미국은 북한의 불량행동이 좌시될 수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현장에서 지도하고, 체제 우수성을 선전하는 데 사용한 미사일 시험발사를 ‘불량행동’으로 규정한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무조건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지난해부터 평양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와 베트남 하노이, 그리고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을 수차례 만나온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 ‘1호’와 연계된 발언을 했을 때 북한 관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를리 없다.

이에 북한은 또다시 최 제1부상 명의의 담화로 “도를 넘었다”고 규탄하며 “인내심을 더 이상 시험하려 들이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맞받은 것이다.

북미 양측은 기본적으로 대화 재개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으나 상대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들의 입장만을 전면에 내세우며 팽팽히 맞서는 모습이다. 지난 2월 ‘하노이 노딜’로 양측 모두 내부적으로 체면을 구긴 탓에 최대한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한 치의 양보 없이 상대방에 대한 압박 전술을 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무협상 재개를 위한 물밑 접촉도 진전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리 외무상이 이번 유엔 총회에 참석하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재기되는 것도 실무협상 재개 전에 이어지고 있는 기싸움의 연장선이라는 분석이다. 참석 여부를 밝히지 않아 이같은 전망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리 외무상이 참석하지 않을 거로 판단할만한 움직임도 포착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실무협상을 위한 물밑 접촉이 얼마나 진전되는지 지켜보며 막판까지 유엔 총회 불참 카드를 아껴둘 거라는 전망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실무협상에 앞서 미국의 태도, 제재 문제와 인권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내세우는 태도를 바꿔보고 싶은 것”이라며 “하노이 결렬 자체가 모욕적이었고, 전략적 실패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지도자에게 또 다시 그런 수모를 안겨주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 실장은 이어 “북한은 올해까지로 시한을 정했기 때문에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미국이 자신들의 아킬레스건을 지렛대로 삼고 협상에 임하는 기존의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으니 조바심을 느끼는 것이고, 때문에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며 “나아가 ‘1호’ 행사를 ‘불량행동’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반응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홍 실장은 그러면서 “북한은 미국과의 물밑 접촉에서 유연하고 전향적인 신호가 감지되면 실무협상에 응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리 외무상의 유엔 총회 참석 여부도 실무협상을 위한 물밑 접촉이 진전되느냐, 아니면 계속 공전을 거듭하느냐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리 외무상의 유엔 총회 참석 여부도 실무협상 재개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한 장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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