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도국 지위 포기 검토… “농업 혜택 큰 변동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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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국 유지땐 美와 갈등 우려… 트럼프 시한 내달 23일까지 결론

한국 정부가 관세와 보조금 면에서 혜택을 볼 수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내 개발도상국 지위를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 7월 경제적 발전도가 높은 국가가 WTO 내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특혜를 누리고 있다면서 지위 철회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정한 시한인 다음 달 23일까지 개도국 지위 유지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낼 예정이다.

4일 통상당국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 부처는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이 개도국으로 남는다면 자칫 미국 대 중국의 싸움이 미국 대 한국 구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면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도 농업부문에서 받는 혜택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과거 WTO 공식회의와 비공식 협의 등에서 각 국가가 현재 누리고 있는 관세 혜택 등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한국은 1994년 WTO에 가입할 당시부터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 덕분에 농업부문에서 관세와 보조금 등 특혜를 받고 있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당시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는 권고를 주변국으로부터 받았지만 “향후 협상 및 협정에서 농업 외 분야에서는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밝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선 앞으로 개도국 지위를 주장해야 하는 협상 테이블도 거의 없다. 사실상 WTO 내 마지막 농업 협상인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은 2001년 시작됐지만 19년째 표류 중이다. WTO 내에서 속도를 내고 있는 수산보조금 협상이나 전자상거래 협상은 비농업부문으로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지 않아도 불이익을 보지는 않는다.

앞서 중국과 인도가 WTO 개도국 지위를 누리면서 급성장하자 미국은 지속적으로 개도국 지위 인정에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요구해왔다. 특히 올 2월에는 △OECD 회원국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세계은행에서 분류한 고소득 국가 △세계 전체 무역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등 4개 기준을 새로 제시하면서 WTO를 압박했다. 한국은 유일하게 미국이 제시한 4개 기준을 모두 충족해 화살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7월 26일(현지 시간) “90일 이내에 WTO가 중국 등 20여 개국의 개도국 혜택을 철회하지 않으면 미국이 일방적으로라도 개도국 대우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대만과 브라질은 이미 개도국 지위 배제를 선언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 이후 아랍에미리트(UAE)와 싱가포르도 개도국 지위를 내놓았다.

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 / 주애진 기자
#한국#개도국 지위철회#wto#미국#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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