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 “외교는 선과 악으로 도덕화해선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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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국가대전략 월례강좌 강연



“‘국가적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시켰다면 그건 미숙한 결정이다. 외교에는 포퓰리즘이 있어서는 안 된다.”

김대중 정부 시절 주일 대사를 지내며 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도출한 주역인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사진)는 2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가 개최한 제26회 화정국가대전략 월례강좌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어려운 협상에 임할 때 큰 지도자는 모욕을 삼키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향후 더 큰 주도권을 잡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지난주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비판했다. 정부가 일본의 홀대에 감정적으로 대응한 끝에 이 같은 결정이 내려진 것이라면 국익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단 점을 꼬집은 것이다.

최 교수는 무엇보다 미일 관계가 돈독한 상황에서 한국이 지소미아 파기로 미국과 얼굴을 붉히게 된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현재의 미일 관계는 단순히 (서로를 이용하는) 차원을 넘어선 견고한 동맹 관계다. (밀월 관계를 자랑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때보다 지금이 (미일 관계가) 더 깊다고 본다”며 “결국 우리는 한미 관계를 주축으로 봐야 하는데,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 후) ‘다른 차원의 한미관계 전망’을 얘기하는 것은 공허한 얘기”라고 지적했다. 미일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운 상황에서 한미가 불신의 늪에 빠지는 것은 위태롭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현재는 실무자들이 외교를 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한일 정상 간 신뢰가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듯, 일본도 1965년 체제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합리적인 선에서 이 차이점을 인정하고 테이블에 앉는다는 자세가 돼야 외교로 풀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분노는 판단을 흐리게 하는데, 양국 지도자가 계속 분노하게 되면 오판이 벌어질까 두렵다”고도 했다.

그는 “역지사지하려 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됐다. ‘아름다운 평화’라는 뜻을 가진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令和)’와도 반대된다. 단기적으로 일본이 규제를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를 향해서는 “‘나는 선, 당신은 악’이란 식으로 외교를 도덕화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일본 경제보복#수출 규제#지소미아 파기#한일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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