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사업에 급급한 文 정부, 예타 피하기 ‘신공’ 발휘

  • 주간동아
  • 입력 2019년 11월 9일 11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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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신규 사업을 ‘하위 항목’에 끼워 넣고 ‘계속 사업’이라 우기고
●고용노동부 “목적 및 대상이 동일하니까 예타 조사 대상 아니다”
●자유한국당 “내년 총선 앞두고 현금 살포”
●바른미래당 채이배 “취지 공감하지만 예타 요구할 것”

10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2020년 예산안에 대해 설명 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10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2020년 예산안에 대해 설명 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정부가 내년도 ‘슈퍼 예산안’을 짜면서 일자리 예산과 관련해 일부 사업에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피하려 꼼수를 부리고 있다. 정부는 내년에 새로 추진하는 ‘고용위기 선제대응 패키지 지원사업’(선제대응 패키지)과 ‘국민취업지원제도’(국민취업지원) 예산안을 예타 조사를 거치지 않고 국회에 제출했다. 이 두 사업의 예산 규모는 각각 660억 원과 2700억 원. 예타 조사 기준은 ‘500억 이상 신규 사업’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실상 신규 사업을 ‘계속 사업’으로 무리하게 분류해 예타조사를 피해가려 한다”고 지적했다.

선제대응 패키지는 향후 고용 위기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선정해 일자리 지원 정책을 펼치는 사업이다. 고용노동부(고용부)는 내년 지방자치단체(지자체) 공모를 통해 5개 지역을 선정, 최장 5년간 매년 30억~200억 원을 각 지역에 지원할 계획이다. 그간 정부가 경남 거제·창원, 전북 군산 등을 고용 위기 지역으로 지정해 별도 일자리 지원 사업을 펼친 전례가 있으나, 고용 위기가 ‘예상’되는 지역에 ‘선제적’ 지원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력 사업 홍보할 땐 언제고…

그런데 고용부는 이 사업을 신규 사업이 아닌, 기존 ‘지역·산업맞춤형 일자리창출 지원사업’(맞춤형 일자리 사업)의 하위 항목으로 끼워 넣었다(사진1 참조). 맞춤형 일자리 사업은 지자체 및 지역 내 고용 관련 기관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제안한 일자리 사업을 고용부가 선정해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내년 맞춤형 일자리 사업의 전체 예산은 1790억 원. 그중 40%에 가까운 660억 원이 선제대응 패키지다.

정부는 이 패키지를 내년 주력 사업으로 거론해왔다. 9월 3일 일자리위원회는 ‘지역고용정책 개선방안’을 의결하면서 선제대응 패키지를 주요 정책 과제 가운데 하나로 신설했음을 강조했다. 이날 선제대응 패키지의 상위 사업인 맞춤형 일자리 사업은 거론되지 않았다. 정부가 선제대응 패키지를 사실상 새로 신설된 별개 사업으로 간주한 셈이다.

국민취업지원은 18~64세 구직자에게 소득보조금 및 구직 활동비, 취업지원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3월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채택한 ‘고용안전망 강화를 위한 합의문’에 담긴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의 조속한 도입’을 위해 마련됐다.

‘한국형 실업부조’를 지향하는 국민취업지원은 국민을 2개 유형으로 나눠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Ⅰ유형(중위소득 50% 이하)은 6개월간 매월 50만 원의 구직촉진수당과 150만 원의 취업성공수당을 받는다. Ⅱ유형(중위소득 50% 초과 100% 이하)은 구직 활동에 필요한 비용 일부를 국가로부터 보조받는다. 고용부는 내년도 국민취업지원 전체 예산(2771억 원)의 90%에 가까운 2494억 원이 Ⅰ유형에 해당하는 20만 구직자의 구직촉진수당으로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런데 고용부는 이 같은 대규모 사업을 예산안에 ‘계속 사업’으로 표기해 예타 조사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계속 사업이라면 과거 사업 집행 실적이 있어야 하지만, 2018년과 2019년 예산 항목은 공란이다(사진2 참조). 한편 국회예산정책처는 국민취업지원을 신규 사업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예산정책처가 10월 펴낸 ‘2020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 보고서에는 국민취업지원이 ‘2020년도 신규 사업’으로 표기돼 있다(사진3 참조).

벌써 ‘53조 원’ 예타 면제

고용부는 새롭게 추진되는 2개의 일자리 사업에 대해 예타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고용부 지역산업고용정책과 관계자는 “선제대응 패키지는 ‘지역 일자리 활성화’라는 지원 목적 및 대상이 맞춤형 일자리 사업과 동일하므로 맞춤형 일자리 사업의 하위 항목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국민취업지원은 기존 청년구직 활동 지원금과 취업성공 패키지가 통폐합돼 확대·운영되는 것으로 계속 사업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부와 협의한 기획재정부(기재부) 관계자 역시 “두 사업 모두 기존 정책과 대상, 목표, 내용이 거의 비슷하기에 예타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은 “선제대응 패키지 예산은 예타 조사 기준인 500억 원을 훌쩍 넘는다”며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은 예타 조사 대상인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야당의 한 예산·정책 전문가는 “재정 팽창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논란을 피하려고 애초부터 예타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은 듯한 인상”이라고 평가했다.

회계사 출신으로 바른미래당에서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채이배 의원은 “예산안을 살펴본 결과 두 사업 모두 기존 사업과 독립된 신규 사업으로 판단되며, 따라서 명확한 예타 대상”이라고 말했다. 채 의원은 “선제대응 패키지를 심사·운영하기 위해 새로운 심사·평가위원회와 지역일자리지원센터를 구성하겠다는 고용부 계획도 이 사업이 별도 사업이라는 방증이다. 국민취업지원 역시 예산안에 기존 사업의 과거 예산이나 평가가 없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별도의 신규 사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의 ‘예타 기피증’은 이미 경고음을 내고 있다. 1월 정부는 경북 김천-경남 거제 간 남부내륙고속철도 건설 사업을 비롯해 23개 사업(24조1000억 원)에 대해 예타 조사를 면제했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예타 조사가 면제된 사업은 총 61건, 총예산은 53조6927억 원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가 3년 차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무현 정부(10건·1조9075억 원), 이명박 정부(88건·60조3109억 원), 박근혜 정부(85건·23조6169억 원)보다 예타 조사 회피 성향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예타 면제 놓고 국회 심의 ‘격돌’ 예고

9월 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이목희(오른쪽에서 네 번째) 부위원장 주재로 열린 제12차 일자리위원회. [뉴시스]
9월 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이목희(오른쪽에서 네 번째) 부위원장 주재로 열린 제12차 일자리위원회. [뉴시스]
예타 조사 제도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도입됐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 국고지원금 300억 원 이상 신규 사업의 경제성 및 정책성을 평가해 불필요한 지출을 막자는 취지였다. 단, 국가 안보나 지역 균형 발전, 긴급한 사회·경제적 상황 대응에 필요한 사업은 국무회의를 거쳐 예타 조사를 면제받을 수 있다. 기재부의 ‘예비타당성조사 운용지침’에 따르면 예타 대상 사업 단위는 ‘세부사업’(일례로 맞춤형 일자리 사업). 세부사업보다 하위 항목인 ‘내역사업’(일례로 선제대응 패키지)도 독립적으로 구성되는 등 요건에 부합할 경우 예타 조사 대상이 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예타 조사 면제 사업의 규모가 늘어난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홍남기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도 1월 일괄 예타 조사 면제에 대해 “통상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정창수 소장은 “최근 예타 조사 면제 대상이 늘면서 자칫 ‘사업 쪼개 늘리기’ 같은 편법이 우려된다”며 “현 여당은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의 대규모 예타 조사 면제를 비판한 바 있다. 초심을 잃지 말고 예산의 원칙과 신뢰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 한 관계자는 “예타 제도는 혈세 낭비를 막자는 취지인데,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 정부가 예타 조사 면제를 늘린다면 어떻게든 현금을 뿌리려는 의도라고 오해받을 수 있다. 정부의 예타 조사 면제 시도에 맞서 사업의 경제성을 더 엄격하게 따지는 것이 야당의 역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채이배 의원은 “일자리 확충이라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예타 조사 회피 꼼수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국회 예산 심의에서 예타 조사 요구 및 예산 삭감 등으로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 예산도 빨아들이는 일자리 사업 확대,열악한 지역 재정도 멍들 우려
국민취업지원 예산, 2021년 1조 원 넘어 건전성 비상
세수 감소하는데 복지 부담 느는 지자체 ‘이중고’


10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앞줄 오른쪽) 등 국무위원들이 출석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10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앞줄 오른쪽) 등 국무위원들이 출석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일자리 사업 예산은 25조8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는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15조8000억 원에서 4년 만에 74.3%나 증가한 수치다. 그런데 내년부터 새롭게 추진하는 일자리 사업이 자칫 ‘돈 먹는 하마’가 돼 국가 및 지방 재정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우선 ‘고용위기 선제대응 패키지 지원사업’(선제대응 패키지)은 재정자립도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지자체) 부담률이 10~40%로, 이것이 자칫 지자체 재정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지자체 평균 재정자립도는 51.4%. 2008년 53.9%를 기록한 이래 10년 동안 답보 상태다. 시(31.1%)나 군(18.3%)의 재정자립도는 더 취약하다. 그사이 전국 지자체의 사회복지 부문 지출은 2010년 26조5342억 원에서 올해 57조1293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여기에 더해 일자리 사업에 드는 예산이 커질 경우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더욱 낮아질 수 있다. 특히 고용 위기가 예상되는 지자체는 기업의 추가 고용 여지가 적어 세수는 줄어드는데 지출은 늘어나는 상황이 우려된다.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최근 열린 한 토론회에서 “세입 증가율이 둔화될 경우 지방 공공서비스 제공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므로, 지방정부의 선제적 지출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취업지원제도’(국민취업지원)는 사업 실시 이후 필요 예산이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국회에 국민취업지원의 근거 법령이 되는 ‘구직자 취업촉진 및 생활안정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계류 중이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내년 20만 명 규모인 지원 대상자가 2021년 35만 명, 2022년 60만 명으로 늘어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민취업지원에 투입될 예산은 2020년 5200억 원, 2021년 1조1900억 원, 2022년 1조3500억 원으로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은 “기존 구직 활동 지원금이나 취업성공 패키지는 취업훈련 및 직업알선이 아닌 현금 살포성 지원으로 문제가 적잖았다”며 “국민취업지원이 이러한 한계를 개선하지 않고 예타 관련 절차까지 생략한다면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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