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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입맛 맞춰 기관 이름 바꿔…과거 태만 가리고 국민 혼란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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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입맛 맞춰 기관 이름 바꿔…과거 태만 가리고 국민 혼란 가중

강지남 기자 입력 2019-11-30 12:17수정 2019-11-30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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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는 매년 연구개발(R&D)에 조 단위 예산을 집행한다. 올해는 7조 원을 지출했고, 내년에는 8조 원 가까운 예산을 R&D에 들일 예정. 이러한 노력 끝에 거둔 성과가 산업현장에서 활용되도록 돕는 곳이 과기부 산하 공공기관인 연구성과실용화진흥원이다. 과기부 ‘연구’개발 사업의 ‘성과’가 ‘실용화’되도록 지원함으로써 과학기술 ‘진흥’과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한다는 설립 목적을 기관명에 드러냈다. 그런데 지난해 2월 이곳은 기관명을 과학기술일자리진흥원으로 바꿨다.

설립 목적이나 주요 업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과학기술 일자리 창출’이 과기부의 주요 과제가 되면서 실험실 창업, 연구개발 서비스업 육성 등을 새로 시도하게 되자 기관명까지 변경한 것이다. 과학기술일자리진흥원 관계자는 “우리 진흥원이 직접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일자리 창출의 매개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과거와 업무가 달라졌다기보다 사업비가 조금 늘어 기존에 하던 일을 더 세밀하고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관명 변경 이후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일자리 창출 효과를 얼마나 거뒀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아직 밝히기 어렵다”고 답했다.


#2 ‘국립공원 등 자연생태계, 자연·문화경관 및 지형·지질 자원을 체계적으로 보전·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1987년 설립된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올해 1월 국립공원공단으로 기관명을 바꿨다. ‘관리’를 떼어내느라 소요된 비용은 6억4300만 원. 간판을 바꿔달고 명함을 교체하는 데 5억8900만 원이 들었고, 새 기관명을 외부에 알리는 홍보비 등으로 5300만 원을 지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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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공단이 기관명에서 ‘관리’를 삭제하기로 한 것은 이 단어가 소극적·규제적 의미기 때문.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의 대표 발의로 국회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을 국립공원공단으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립공원관리공단법’이 개정됐는데(개정법명은 ‘국립공원공단법’), 송 의원은 법 개정 취지를 ‘(국립공원관리공단이라는 명칭이) 우리나라 자연생태계의 마지막 보루인 국립공원의 보전보다 관리를 중시한다는 오해를 줄 수 있으므로 명칭에서 ’관리‘를 삭제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국립공원공단 출범에 대해 “‘관리’라는 단어를 삭제함으로써 종전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공단의 업무 수행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업무가 달라진 건 아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에 분석을 의뢰한 바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09년~2019년 6월) 71개 공공기관이 기관명을 변경한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조). 현재 공공기관은 총 339개로, 5개 기관 가운데 1개꼴로 개명한 셈이다. 명칭 변경에 소요된 예산도 14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이후 명칭을 바꾼 공공기관은 총 15개, 소요 예산은 12억9500만 원으로 나타났다.

기관명을 바꾸는 데 가장 많은 돈을 쓴 곳은 한국콘텐츠진흥원. 2009년 6개 기관(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한국게임산업진흥원,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문화콘텐츠센터,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디지털콘텐츠사업단)을 통합해 새롭게 출범하면서 총 23억7000만 원을 지출했는데, 그중 조직 재구성을 위한 사업 계획, 외부 타당성 용역 등에만 22억7000만 원을 썼다. 간판 변경, 조직 명칭 변경, 명함 교체 등에 가장 많은 비용을 들인 곳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10억9200만 원), 새 기관명을 선포하는 출범식이나 기념식 같은 행사에 가장 큰돈을 쓴 곳은 한국국토정보공사(2억9500만 원)다. aT는 2012년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한국국토정보공사는 2015년 대한지적공사에서 기관명이 바뀌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명칭 변경에 가장 많은 예산을 소요한 곳은 국립공원공단(6억4300만 원)이며,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전 중소기업진흥공단)이 그 뒤를 이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올해 4월 기관명에 ‘벤처’를 추가하면서 간판과 명함 등을 바꾸는 데 3억4500만 원을 지출했다.

“‘데이터 산업 진흥’은 굉장히 다른 느낌”

2018년 2월 연구성과실용화진흥원이 과학기술일자리진흥원으로 명칭을 바꾸고 현판식을 가졌다. [사진 제공 · 과학기술일자리진흥원]
71개 공공기관 가운데 △기관이 통폐합되거나 △기능이 분리돼 별도 법인이 설립된 경우 △법적 지위가 달라졌거나 △상위기관 명칭 변경에 따른 영향으로 기관명을 바꿀 필요가 발생한 곳은 20여 개에 불과했다. 60~70%에 달하는 나머지 기관은 과학기술일자리진흥원과 같이 새롭게 부여받은 ‘임무’를 기관명에 담기 위해, 또는 국립공원공단처럼 ‘쇄신’ 차원에서 기관명을 새로 지었다. 과거 정부의 색(色)을 지우거나 신임 기관장 취임 후 치적을 쌓으려 한 의도가 엿보이는 개명 사례도 있다.

기관 설립 이래 명칭을 두 번 이상 바꾼 기관도 여럿인데, 대표적인 예가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이 기관은 1993년 (재)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센터로 설립돼 2009년 (재)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으로, 2016년 (재)한국데이터진흥원으로 개명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업무혁신비서관을 지낸 민기영 원장이 기관장으로 취임하고 5개월이 지난 2018년 12월 (재)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으로 한 번 더 간판을 바꿔달았다.

기관명에서 ‘베이스’를 삭제한 지 2년 반 만에 이번에는 ‘산업’을 추가하게 된 취지에 대해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전환에 발맞춰 데이터 산업 진흥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지난해 5월 과기부 산하 정보통신기술(ICT) 공공기관이 역할과 책임을 재정립했는데,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은 4대 핵심 과제(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정보보호) 중 데이터 분야 협력기관으로 선정됐다. 이 관계자는 “‘데이터 진흥’과 ‘데이터 산업 진흥’은 굉장히 다른 느낌”이라며 “이번 기관명 변경으로 우리 기관의 역할과 임무가 확실하게 드러나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공공기관이 ‘관리’라는 단어를 기피하는 것은 일종의 추세다. 국립공원공단 외에도 한국에너지공단(2015년·전 한국에너지관리공단), 한국원자력환경공단(2013년·전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공무원연금공단(2009년·전 공무원연금관리공단), 한국환경공단(2009년·전 환경관리공단), 국민연금공단(2007년·전 국민연금관리공단), 도로교통공단(2007년·전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등이 기관명에서 ‘관리’를 삭제했다. 한국에너지공단은 명칭 변경 당시 그 취지에 대해 “에너지는 더 이상 단순한 관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에너지 효율 향상, 에너지 신시장 창출 등 미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공공기관은 ‘센터’도 싫어한다. 최근 10년간 한국문화정보원(2015년·전 한국문화정보센터), 항공안전기술원(2014년·전 항공안전기술센터), 한국나노기술원(2012년·전 나노소자특화팹센터), 식품안전정보원(2012년·전 식품안전정보센터)이 기관명에서 ‘센터’를 버리고 ‘원(院)’을 택했다. ‘센터’라는 단어에 ‘정부 일’을 하는 공공기관으로서의 위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주된 이유다. 한국문화정보원은 2015년 한국문화정보센터에서 기관명을 변경하면서 그 배경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임에도 지방자치단체 및 민간에서 사용하는 문화센터로 오인하는 등 문화정보화 전담기관의 명칭으로서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반년 만에 바꾸고, 옛날 이름으로 회귀하기도

4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창립 40주년 비전 및 CI 선포식(왼쪽). 2015년 6월 한국국토정보공사(전 대한지적공사) 출범식 모습. [사진 제공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한국국토정보공사]
뚜렷한 이유 없이 단지 이웃 공공기관과 ‘차별화’를 위해 기관명을 바꾼 곳도 있다. 2017년 9월 한국지식재산전략원이 한국특허전략개발원으로 개명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이 기관은 ‘지식재산’ 또는 ‘특허’로 불리는 IP(Intellectual Property) 관련 정책 개발을 담당하는 특허청 산하 공공기관이다. 이곳 관계자는 “한국지식재산전략원이라는 이름이 다른 특허청 산하기관들과 유사해 구분이 안 된다는 지적이 있어 기관명을 새로 지은 것”이라며 “사업 내용이나 범위가 바뀐 것은 없다”고 말했다. 특허청 산하 공공기관으로는 이곳 외에 한국발명진흥회, 한국지식재산보호원, 한국지식재산연구원, 한국특허정보원, 특허정보진흥센터가 있다.

한편 수서발(發) 고속철도(SRT)를 운영하기 위해 2013년 12월 설립된 ㈜수서고속철도는 반년 만인 이듬해 6월 사명을 주식회사 에스알(SR)로 바꿨다. 주식회사 에스알은 “‘수서고속철도’를 영문으로 옮긴 것 외에 만족(Satisfying), 신뢰(Reliable), 최고의 철도기업(Supreme Railways)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만 설명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필요 때문에 사명을 바꾼 것인지, 애초에 주식회사 에스알로 시작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사명을 바꿨다 다시 옛 사명으로 되돌아간 경우도 있다. 한국전력이 세운 서울 도봉구 소재 한전의료재단 한일병원은 2012년 한전병원으로 개명했다 4년 뒤인 2016년 다시 한일병원으로 회귀했다. 이 두 차례 ‘소모전’에 지출된 비용은 6400만 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설립을 주도한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산하 (재)한식재단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재)한식진흥원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농식품부는 명칭 변경 배경에 대해 “직접 사업을 지양하고 민간의 한식 진흥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조치는 한식재단에 대해 방만 경영, 이권 개입 의혹이 제기된 점을 의식한 동시에 전(前) 정권의 색을 지우려는 의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공공기관의 잦은 개명을 오직 공공기관 탓으로만 볼 수는 없다. 공공기관 설립 근거 법이 개정되는 바람에 기관명이 바뀌는 경우도 적잖다. 1979년 중소기업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은 올해 4월 창사 40년 만에 기관명에 ‘벤처’를 추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으로 재출범했다. 주무기관이 공업진흥청에서 1996년 중소기업청으로 개명됐을 때도 중진공 명칭을 유지했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중소기업청이 중소벤처기업부로 격상되면서 중진공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으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한 ‘중소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올해 4월 18일 ‘창립 40주년 비전 및 CI 선포식’을 열고 새로운 슬로건으로 ‘혁신성장을 선도하는 중소벤처기업의 성공 파트너’를 선포했다.

100억 원짜리 ‘감정’ 논란

수서발 고속철도(SRT) 운영을 위해 설립된 수서고속철도㈜는 반년 만에 사명을 주식회사 에스알로 변경했다. [뉴시스]
한편 1987년 한국전산원에서 2006년 한국정보사회진흥원으로, 그리고 2009년 한국정보화진흥원(National Information Society Agency·NIA)으로 개명한 NIA는 10년 만에 또 간판을 바꿔달 운명에 처했다. NIA는 국가 정보화 정책을 수립하고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기관으로, 지난해 과기부 산하 ICT 공공기관 역할 재정립에서 데이터 및 네트워크 분야 주관기관, 인공지능 분야 협력기관으로 선정된 바 있다.

NIA의 설립 근거는 ‘국가정보화 기본법’에 마련돼 있는데,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의 대표 발의로 이 법안의 전부 개정안이 제출된 상태다. 전부 개정안은 법안 이름을 ‘지능정보사회 기본법’으로 바꾸고, NIA 명칭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으로 변경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초연결·초지능 기반의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사회·경제적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는 취지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NIA 기관명에서 ‘정보’가 ‘지능정보’로 바뀌고, 10년 전 떼어냈던 ‘사회’가 다시 붙게 된다.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감정원은 사명 변경을 둘러싼 내홍에 휩싸인 상태다. 2016년부터 민간 부동산에 대한 감정 업무를 중단한 한국감정원이 기관명에 더는 ‘감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한국감정평가사협회(감정협회) 측 요구에 국회에서 한국감정원 명칭을 ‘한국부동산원’ ‘부동산감독원’ 등으로 바꾸는 ‘한국감정원법’ 개정 논의가 이뤄지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동의 의사를 밝힌 게 발단이 됐다. 6월까지만 해도 “한국감정원은 민간의 감정 평가 적정성을 검토하는 공공기관”이라며 기관명에 ‘감정’을 사용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던 한국감정원 측이 “국회 결정을 따르겠다”고 하자, 노동조합이 이에 반발하며 한 달째 대구 동구 본사 1층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국에 30개 지사를 둔 한국감정원은 기관명을 변경할 경우 100억 원가량 관련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2015년 대한주택보증주식회사가 주택도시보증공사로 재출범하면서 기업 로고(CI) 교체 및 TV 광고 등으로 그만큼 예산을 지출했다는 것이 근거다. 감정협회는 “한국감정원이 더는 감정 업무를 진행하지 않음에도 기관명을 종전과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어 국민에게 혼란을 준다”고 주장한다. 이에 양홍석 한국감정원 노조위원장은 “일반 국민이 부동산 감정을 필요로 하는 것은 부동산 담보 대출 때문이며, 이 경우 은행이 감정을 의뢰하기 때문에 국민이 혼란을 겪을 일은 없다”면서 “50년간 유지해 국민에게 친숙한 기관명을 함부로 바꿔서는 안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공공기관의 잦은 개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타당성 조사와 간판 및 명함 교체, 행사·홍보비 지출은 차치하더라도 이들 기관을 이용하는 국민에게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진종순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관명에 해당 기관의 설립 목적이 드러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목적이 추가될 때마다 기관명을 바꾼다면 국민에게 혼란을 주게 된다”고 지적했다. 조성한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하는 일이 딱히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기관명을 바꾸는 것은 그간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기관명을 바꾸고, 그에 따라 각 부서 명칭도 바꾸면 조직 구성원들이 조직의 목적이 불분명해졌다고 느껴 오히려 업무에 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1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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