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워지는 주민 조례 발안… ‘풀뿌리 민주주의’ 뿌리 내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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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바꾸는 지방자치]<하> 지방자치법 개정안 눈길

지난해 10월 경북 경주시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6회 대한민국 지방자치박람회’에서 강원도 전시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 
정부는 지방자치박람회 등을 통해 지방분권과 주민자치의 의미를 알리는 한편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통해 국민의 참여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지난해 10월 경북 경주시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6회 대한민국 지방자치박람회’에서 강원도 전시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 정부는 지방자치박람회 등을 통해 지방분권과 주민자치의 의미를 알리는 한편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통해 국민의 참여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직접 조례를 만들어 발안한다고 했을 때 삐딱하게 보는 시선도 분명히 있었어요. 유난 떤다느니 정치하려고 그러느냐는 둥…. 그런데 누구나 부모라면 내 자녀가 커갈 세상이 좀더 좋아지길 바라잖아요. 저희는 그걸 실천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또 해보면 재미있거든요.”

이운기 씨(46)는 3년 전 광주 북구에서 제정한 ‘광주광역시 북구 어린이·청소년 친화도시 조성에 관한 조례’의 주민 발안을 주도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2015년 광주에서 어린이·청소년친화도시협의회가 꾸려지자 북구에서는 주민이 직접 조례를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조례 제정을 위해 이 씨를 비롯한 약 100명이 모였다.

이 중 서명운동팀 약 30명은 2016년 6월부터 9월까지 조례 발안에 필요한 만 19세 이상 주민의 50분의 1인 7139명의 서명을 받기 위해 그야말로 온 동네를 뒤졌다. 서명 용지를 들고 마을공동체 대표들을 만나 협력을 구했다. 각급 학교를 돌며 학생들에게 부모의 서명 참여를 부탁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9963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았고 조례는 최종 의결됐다.

○ 알수록 생활 속 조례의 힘 커져


북구에서 조례가 만들어진 후 광주의 나머지 자치구에서는 구의회 의원 발의로 비슷한 조례가 만들어졌다. 내용이 비슷해 일부에서는 굳이 힘들게 주민 발안으로 조례를 제정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구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조례 제정을 요청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으냐는 것이다.

이 씨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과정의 의미를 말했다. 사실 대다수 주민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 최근 어떤 조례가 생겼는지 모른다. 주민 스스로 조례의 문구를 다듬고 서명을 한다면 이 조례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은 높아질 수 있다. 많이 알면 알수록 해당 조례는 생활 속에서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된다. 행정관청이 조례의 내용에 따른 무언가를 실행할 가능성도 커진다. 북구에 따르면 어린이·청소년 친화도시 조성에 관한 조례가 생기자 문인 북구청장은 최근 내년까지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또 북구에는 청소년문화의집 2곳이 시 예산으로 세워졌다.

물론 전국적으로 주민이 직접 조례를 발안하고 제정까지 이른 경우는 극소수다. 지난해 주민 발안으로 3건의 조례 제정이 청구됐지만 의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 2017년에는 16건이 청구돼 2건이 의결됐다. 의결된 조례도 적지만 청구되는 조례 자체도 적다. 전국에 226개 시군구가 있는 걸 감안하면 주민이 조례를 내놓는 지역 자체가 극히 드물다는 얘기다.

정부는 주민 조례 발안이 활성화되면 국민 실생활 밀착형 정책이 만들어지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행정안전부가 마련한 지방자치법 개정안 및 주민조례발안법 제정안도 주민 조례 발안을 독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주민들이 조례안을 만들어도 해당 지자체장의 승인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주민들이 직접 지방의회에 조례안을 제출할 수 있도록 했다. 주민 조례 발안에 참여하고 서명할 수 있는 연령도 만 19세에서 18세로 낮췄다. 고등학생도 조례안을 만들 수 있게 한 것이다. 개정안과는 별개로 지난해 1월부터 조례 발안에 온라인 서명이 가능해져 주민 조례 발안이 더 쉬워졌다. 이전에는 일일이 돌아다니며 서명을 받아야 했다.

○ 주민 투표·소환·감사 청구 활성화도 관심

정부는 주민투표, 주민소환, 주민감사 청구도 활성화되도록 관련 법 개정안을 올 3월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현재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안건은 조례에서 규정하지만 해당 규정을 삭제해 투표 대상 안건의 범위를 확대한다. 주민감사와 주민소환 청구 요건은 완화했고 투표권을 가진 주민의 3분의 1이 주민투표에 참여해야 개표할 수 있도록 한 요건은 폐지된다.

지방자치법 개정안에는 지방의원의 정책 수립을 돕는 보좌진을 둘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도 담겼다. 북구 주민들이 조례를 제정할 당시 구의원으로서 협력했던 신수정 광주시의원은 “지방의원의 전문성을 높이고 주민들의 기대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지방의원에 대한 보좌인력 지원은 논쟁이 예상된다. 애초 봉사 개념으로 탄생했던 지방의원에게 세금으로 보좌진을 지원하는 게 맞느냐는 의견이 적지 않다. 보좌인력이 생기면 정책업무는 이들에게 맡기고 지방의원은 자기 정치에 몰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광주=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조례 발안#풀뿌리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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